제717호 안용호⁄ 2022.02.04 10:40:01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변화는 없다. 그리고 책 속에는 이러한 변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진다. 책은 개인이 얻을 수 있는 차원 높은 지식과 경험의 경로이다. 2022년 경제경영서 4권을 통해 그 길을 먼저 걸어가 본다.
‘데자뷔’는 본적 없지만 본 것 같다고 착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최초의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본 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이다. 처음 가본 곳인데 이전에 와본 적이 있다고 느끼거나 처음 하는 일을 전에 똑같은 일을 한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기시감이라는 단어도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상황이나 장면이 언제, 어디에선가 이미 경험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을 말한다.
'그냥 하지 말라'(북스톤)의 저자 송길영 씨는 데이터 분석 전문가이다. 그가 부사장으로 있는 ‘바이브’는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빅데이터를 더욱 쉽고 편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케팅, 자산관리, 신제품 개발, 위험관리 등 기업과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기업이다.
철저한 데이터 신봉주의자여야 할 저자가 책 속에서 ‘기시감’, ‘데자뷔’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기시감’을 본적이 없거나 경험한 적 없는 것을 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미리 본 것이라고 말한다. 즉 예전에 흥미롭게 했던 관찰과 측정, 추론이 몇 년 만에 현실화한 것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코로나19 이후 찾아온 우리 삶의 변화를 보자. 저자는 데이터 분석을 하면서 통상 1만2000~1만 8000개 이상의 분류된 정보를 보는데 그중에서 말의 의미가 크게 달라진 키워드들은 따로 추려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관측한다. 그런데 2020년 1~6월에 2150건이 그런 변화를 보였고 이 변화는 평상시보다 3배 정도 많은 양이었다. 말의 맥락을 단기간에 바꿔놓을 정도로 코로나19 팬더믹이 우리 사회를 마구 흔들어 놓은 셈이다.
그런데 저자는 코로나가 일으킨 변화가 역설적이게도 처음 튀어나온 게 아니라고 말한다. 가사노동, 무한경쟁, 저성장과 고용불안 등 우리 사회의 오래된 문제들이 이번에 격정적으로 노출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기시감이 들 정도로 ‘이미 본 미래’라는 것이다.
저자는 지난 16년간 데이터를 다시 살펴보면서 주목해야할 변화상을 3가지 화두로 정리했다. 그것은 분화하는 사회, 장수하는 인간, 비대면의 확산이다. 그리고 이 3가지를 변화의 상수로 놓고 개인, 기업, 사회, 국가 등 각각의 입장에서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하고, 무엇을 할지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냥 하지 말라’는 책 제목처럼 그냥 하는 것(Just do it)이 아닌, 생각을 먼저 하라(Think first)는 메시지는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동시에 ‘어떻게’, ‘무엇을’이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생각을 먼저 하라’며 막연한 숙제를 불쑥 내놓은 저자는 이번에는 친절하게 가이드를 제시한다.
‘출근을 꼭 해야 하나요?’. ‘학교에 꼭 가야 하나요?’ 몇 년 전이었다면 황당한 생각이었겠지만 코로나19 팬더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이상 엉뚱한 질문이나 생각이 아니다. 즉 기저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전제가 흔들리는 시대가 왔다.
따라서 생각의 출발점은 이러한 변화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측정하는 일이다. 여기서 데이터를 해석하는 능력은 개인과 기업의 장점이 될 수 있다. 환자 동향이 어떤지, 주식 현황이 어떤지 정보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가치관을 의심하고 관행적으로 해왔던 것을 다 지켜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는 일은 생각의 전제조건이 된다. 생각을 먼저 하라는 말을 달리하면 변화의 방향을 먼저 정확히 파악하고 그 다음에 행동하라는 의미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변화가 있을지 생각하고 예측한 다음에는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적응을 다른 말로 하면 현행화이다. 변화된 상황에 대한 현행화. 이는 누적된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특히 중요하고 기존의 규칙에 잘 적응했던 이들에게 새로운 규칙을 재설정하는 데 꼭 필요하다.
변화를 관찰하고 적응했다면 이제 새로운 시도를 꿈꿀 차례다. 코로나 위기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이 있다면 재택근무, 드라이빙 스루와 같은 혁신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입증된 것이라면 다행히도 혁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보상받을 기회는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방향을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 '진짜로' 해라!
저자는 수용성이 높아진 사회에서 개인과 기업의 새로운 시도는 무엇보다 투명하고 ‘착해야’ 한다고 말한다. SNS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개인의 행동은 오픈될 수밖에 없다. 기업이나 국가가 하는 모든 행동도 과정별 데이터가 나온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데이터를 개방하면 누구든 검증할 수 있어서 숨을 수가 없다. ‘자기검열, 타인검열의 시대’가 온 것이다. 최근 대선판에서 벌어지는 ‘여야 녹취록 이슈’가 그 증거이다.
특히 기업은 더 투명하고 착해야 한다. CSR을 넘어 ESG 세상이 된 지금 환경을 파괴하거나 사회적 책무를 함부로 하는 기업은 존재 의미를 증명할 수 없다.
이렇게 단계별로 증거가 남기 시작하면 과정의 충실함을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 부하 직원이나 동료의 성과에 숟가락을 얹는 행동, 무임승차자는 사리지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도태를 면하려면 개인과 기업 모두 자신이 삶의 주도권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자는 변화와 자동화의 격랑 속에서, 개인이 밀려나지 않으려면 프로바이더가 되거나 크리에이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주도권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남이 아닌 내가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내가 원하는 일을 내가 직접 한다는 것이야말로 전문성과 주체성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상세한 가이드에도 불구하고 ‘무얼 할까“라는 질문은 여전히 독자의 머릿속을 맴돈다. 이때 저자는 흔한 사례 하나를 툭 던진다. 5년 전 손꼽히는 유튜브 고양이 채널의 구독자는 5만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10등도 구독자가 20만을 넘는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 적어도 10년은 하겠다는 각오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위해 데이터를 먼저 챙기는 이성적 사고, 업에 대한 진정성, 그리고 타인과의 성숙한 공존이 이어진다면 누구든 20만, 100만 고양이 채널 운영자처럼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10여 년 전 데이터 분석자료를 다시 보며 변화의 기시감에 놀랐다고 고백한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변화의 징후들을 확인하고 내 삶의 정체성, 기업의 방향을 다시 생각해본다면 미래에, 아니 2022년 연말 우리는 타인의 삶에 숟갈 얹는 비참한 존재가 아니라 주체적 삶의 주인이 되는 ‘진짜’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 없는 근면이 아닌 궁리하는 성실함이 필요한 세상을 맞이한 올해, ‘그냥 하지 말라(Don't just Do it)’라고 외치는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이다.
(안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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