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0호 윤지원⁄ 2022.03.23 09:35:42
17일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가 60만 명대를 기록했지만, 치명률은 계절 독감 수준보다 낮게 유지되면서 ‘엔데믹’(풍토병) 단계 전환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고, 해외여행을 꿈꾸기 시작했으며, BTS의 대면 콘서트를 찾았고, 영업시간 늘어난 식당에서는 다시 술잔을 기울인다. 코로나19의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가 드디어 ‘터널의 끝’을 보게 된 주요 산업의 ‘리오프닝’(활동 재개) 전망을 살펴봤다.
‘팔걸이 공유’ 당연했던 영화관,
감염병에 치명타 맞았다
2020년 2월 9일, 한국 영화관련 업계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포함 4관왕에 오르는 대이변을 목격했고, 이제부터 전 세계 영화 팬의 관심과 글로벌 거대 자본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전에 없는 호황을 누릴 것으로 기대했다.
그로부터 31일 뒤인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에 대해 세계적 대유행, 즉 팬데믹을 선언했다. 이후 영화 관객 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급감했다.
코로나19의 중요한 방역 원칙은 ‘3밀(密)’의 타파다. 그래서 수백~수천 명이 한두 시간 넘게 밀폐된 공간에서 어깨를 맞대고 밀집하는 영화관은 팬데믹 초기부터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멀티플렉스 업계는 2년 이상 장기화된 감염병 사태에서 한 번도 ‘정상화’의 기미를 찾을 수 없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2020년 5월 총 153만 명이 전국의 영화관을 찾았다. 153만 명은 전국 모든 영화관들이 공동 프로모션을 집중적으로 펼친 결과 4월보다 55만 명 늘어난 수치였다. 그럼에도 전년 5월과 비교하면 91.6%(1654만 명)나 줄어든 비참한 성적표였다.
2019년 연간 2억 2670만 명으로 역대 최다 관객을 끌어 모았던 한국 영화관 업계는 2020년 5952만 명을, 지난해 6053만 명을 겨우 모으는 데 그쳤다.
멀티플렉스가 코로나19를 버티는 방법
그 와중에 최근 약 740만 명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봤고,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에 361만 명, ‘이터널스’에 303만 명이 모였다. 코로나19 방역이 어느 정도 안정된 이후였긴 하지만 ‘영화관에서 볼 영화는 영화관 가서 본다’는 관객들이 적지 않다는 증거는 뚜렷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OTT만이 살아남고 영화관은 몰락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비관론을 반박할 수 있는 현상으로, 희망의 불씨가 된 것은 사실이다.
영화관 업계는 생존을 위해 변화를 시도하며 버틴 끝에 드디어 터널 끝 희미한 빛을 보게 됐다.
CJ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국내 3대 멀티플렉스는 그동안 예정됐던 신규 지점의 출점을 미루고, 제휴 기간이 끝난 지점을 폐점하는 등 구조조정으로 덩치를 줄이면서 버텼다. 그리고 기존 극장 운영 방식을 크게 바꾸면서 코로나19 감염병 시대에 맞는 상영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한 좌석 띄어 앉기, 상영관 내 취식 금지, 다양한 할인 프로모션 운영 등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인 가운데, 가장 눈에 띈 변화는 특별 상영관의 적극적인 운영이다. 그중 ‘실내에 많은 사람이 밀집하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프라이빗하고 쾌적한 관람 환경을 보장하는 프라이빗 상영관이 새롭게 부상했다.
CGV는 프리미엄 침대 매트리스 브랜드 ‘템퍼’와 협업한 ‘템퍼시네마’ 상영관을 최근 CGV 판교와 CGV 여의도에 추가로 선보였다. 이 상영관은 평범한 좌석 대신 템퍼 오리지널 슈프림 매트리스, 라이프스타일 모션베드, 트래디셔널 베개 등으로 만든 침대가 마련되어 있고, 관객은 편안하게 누워서 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다. 본래 CGV 템퍼시네마 상영관은 2015년 서울 압구정점, 부산 센텀시티점, 2017년 용산아이파크몰점에 선보인 바 있는데, 이번에 코로나19로 프라이빗 상영관의 수요가 늘어난 것을 계기로 5년 만에 두 곳에 새로 문을 연 것이다.
특히 이번에 새로 오픈한 두 상영관은 각각 좌석 수가 34개, 48개에 불과해 코로나19 감염 걱정 없는 프라이빗한 영화 관람을 원하는 관객에게 어필한다.
롯데시네마는 월드타워점의 ‘씨네패밀리’관을 최근 리뉴얼했는데, 역시 대표적인 프리미엄 프라이빗 상영관이다. 이곳은 4명~6명의 가족 단위 관람객이 상영관 내에 독립적으로 마련된 부스(booth) 형태의 별도 공간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구조다. 각 부스는 방음시설과 별도 볼륨 조절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독립적이고, LG오브제 컬렉션 스타일러와 공기청정기 등이 설치되어 있어 더욱 쾌적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BTS 콘서트를 영화관에서 보다
아무리 뛰어난 상영관 시설과 감상 환경을 갖춰도, 틀 영화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관객을 끌어들여야 하는 주요 대작들이 극장 개봉을 꺼리는 상황이야말로 멀티플렉스로서는 감염병 자체보다 더 곤란한 상황이었을 것.
이에 멀티플렉스들은 대형 스크린과 음향시설 등이 갖춰진 상영관에서 개봉영화만이 아닌 다른 콘텐츠를 상영하는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기 시작했고, 이는 영화관의 새로운 수익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강력한 글로벌 팬덤을 거느리고 세계적인 산업으로 발전한 K팝 아이돌과 관련한 콘텐츠가 공연계 뿐 아니라 영화관 업계에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당장 지난 12일 방탄소년단(BTS)이 서울에서 약 2년 반 만에 연 대면 콘서트인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서울’ 2회차 공연의 ‘라이브 뷰잉’(Live Viewing) 이벤트가 전국 극장에서 열렸다.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콘서트를 위성 생중계한 이벤트다.
이 이벤트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주요 멀티플렉스의 전국 상영관 등 125개 영화관에서 열렸는데, 지난달 24일 열린 1차 예매 오픈 15분 만에 전 좌석이 매진되는 등 대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안방 1열’이라는 온라인 콘서트보다 훨씬 큰 화면과 압도적인 사운드 시스템, 그리고 다른 팬들과 함께 떼창하며 응원하는 극장 콘서트 관람 경험에 만족했다는 ‘직관 후기’가 계속 이어지면서 앞으로의 전망도 밝게 했다.
CGV는 20일에도 레드벨벳의 스페셜 라이브 ‘2022 더 리브 페스티벌: 프롤로그’의 극장 생중계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레드벨벳 멤버들이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오면서 공연 일정이 잠정 연기되기도 했다.
또 CGV는 ‘아이스콘’(ICECON: Interactive, Colorful, Exciting Contents)이라는 얼터너티브 콘텐츠 브랜드를 선보이고 영화 외에 콘서트, 뮤지컬, 오페라, 게임 중계, 북토크, 디지털 뮤지엄 등 새로운 콘텐츠들을 극장에서 선보이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최근에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고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공연됐던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공연 실황을 개봉하기도 했다.
메가박스도 개봉영화 뿐 아니라 명작 클래식 공연 등 다양한 기획프로그램을 상영관에서 선보이는 ‘큐레이션’ 브랜드를 운영한다. 3월에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공연한 매튜 어코인의 오페라 ‘에우리디체’의 공연 실황을 개봉했으며, 오는 6월엔 볼쇼이 발레단의 ‘파라오의 달’ 공연 실황이 예정되어 있다.
“대형스크린, 보지 말고 오르세요”
클라이밍 짐으로 개조 ‘신사업’ 진출
그밖에도 영화관 업계는 사업 다각화를 통해 활로를 찾는 차원에서 상영관을 상영 이외의 용도로 개조하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실행하기도 했다. CGV는 CGV피카디리1958점의 상영관 두 곳을 개조해 스포츠 클라이밍 짐 ‘피커스’(Peakers)를 만들어 지난 1월 오픈했다. 영화 대형 스크린이 있던 자리의 층고가 높고, 멀티플렉스가 주차 편의 등이 잘 갖춰졌다는 점을 응용한 것으로, 동호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노력 덕에 멀티플렉스 업계는 최근 매출이 조금씩 회복되는 추세다. CGV는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 대비 26.2% 오른 7363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손실은 2020년의 3887억 원보다 38% 줄어든 2411억 원으로 방어했다.
여기에 최근 들어 영업시간 제한 완화, 방역패스 의무 적용 해제 등 사업 여건이 크게 개선됐다. 가장 반가운 것은 코로나19가 물러남에 따라 국내외 기대작들도 다수 공개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외화로는 이달 말 개봉 예정인 스파이더맨 스핀오프 ‘모비우스’를 비롯해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액션 블록버스터 ‘앰뷸런스’, 해리포터 세계관의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토이 스토리 스핀오프 ‘버즈 라이트이어’,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와 ‘토르: 러브 앤 썬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미션 임파서블 7’, 그리고 전세계 박스오피스 1위 영화 ‘아바타’의 속편인 ‘아바타 2’ 등이 코로나19에서 해방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다만, 전통적으로 국내 극장가 관객몰이의 주역인 한국영화 대작들이 여전히 개봉일을 정하지 못하는 점이 다소 아쉽다. 특히 천만 영화를 만들어온 스타 감독들의 신작들조차 쉽게 관객과의 약속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촬영을 마치고도 개봉일이 미정인 영화 중에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김한민 감독(‘명량’)의 ‘한산: 용의 출현’, 류승완 감독의 ‘밀수’, 윤제균 감독의 ‘영웅’, 강제규 감독의 ‘보스턴 1947’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한국영화가 극장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쉽지 않아졌기 때문에 다들 극장 개봉을 망설이고 있다. 천만 관객을 염두하고 수백억 제작비를 들였는데, 지금 극장가는 300만 명도 기적으로 여겨지는 상황이다. ‘스파이더맨’, ‘더 배트맨’ 같은 할리우드 대작이 만들어 가는 흥행 분위기에 편승하려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허민회 CJ CGV 대표는 다소 실적을 회복한 지난해에 관해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만 있다면 언제든지 극장을 찾는다는 것을 확인한 시기였다”며 “올해는 안정적인 영화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극장 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도 확장할 것”이라고 전했다.
< 문화경제 윤지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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