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5호 윤지원⁄ 2022.06.08 14:18:58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이커머스 거래가 급증하며 패키지와 언박싱의 위상이 달라졌다. 구매 결정 전에 실제 제품을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오프라인 시장 거래와 달리 이커머스에서 소비자는 제한된 온라인 정보에 기반해 구매를 먼저 하고, 이후 배송받은 패키지를 풀어보고 나서야 실물을 접할 수 있다. 패키지와 언박싱 과정의 소비자 경험은 실제 제품의 첫인상과 만족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데다 최근 관련 콘텐츠 또한 급증하고 있어 기업은 패키지와 언박싱의 마케팅 효과를 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또 팬데믹을 겪으면서 친환경의 가치를 중시하는 그린슈머가 증가해 기업의 지속가능한 패키지에 관한 고민도 깊어진다.
■ 패커티브는?
아날로그 패키지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도모한다는 패키지 솔루션 스타트업. 무료 3D 디자인 에디터와 실시간 가격 산출 알고리즘 등 자체 개발한 디지털 기술로 주문 제작 패키지 시장의 혁신을 실현해 주목받고 있다.
‘언박싱 경험’이 브랜드 가치 높인다
“만약 온라인 쇼핑몰에서 어떤 제품을 구매했을 때, 하나는 일반 골판지상자에 담겨 도착했고 다른 하나는 브랜드 콘셉트에 맞춘 예쁜 박스 패키지에 담겨 도착했다면, 둘 중 어떤 제품이 소비자의 마음을 더 사로잡겠는가?” 패키지 솔루션 스타트업 ‘패커티브’(Packative)는 이커머스 거래가 주류가 된 시대에 패키지의 중요성에 관해 이렇게 질문한다.
패커티브가 주목하는 부분은 마케팅 이론에서 말하는 '고객 경험의 4단계'(인지, 탐색, 구매, 제품 개봉) 중 제품 개봉 단계의 경험, 즉 OOBE(Out-Of-Box Experience, 언박싱 경험)의 중요성이다. 이 단계는 구매 경험의 최종 단계인 동시에 제품 소비 경험의 첫 번째 단계로, 고객에게는 긍정적인 감성적 효과를 유발하는 효과가 있고, 제품을 제조, 판매하는 기업에는 불필요한 관리비용을 줄이거나 판매 후 수리비용을 줄여주는 중요한 과정이다.
OOBE의 중요성과 관련해 애플의 아이폰 패키지는 자주 거론된다. 애플, 삼성전자 등 주요 스마트폰 기업은 OOBE를 통한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해 OOBE 마케팅 전담 조직을 운영하기도 하는 등 패키지 전략을 중시하는데, 특히 애플 고객의 '충성도'는 패키지의 언박싱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애플 아이폰SE 출시 당시의 미공개 광고 중 한 편인 '언박싱' 광고. (영상 = 유튜브 채널 'The Apple Post')
예컨대 애플은 판매 중인 거의 모든 기기의 패키지 디자인을 '흰 박스에 제품 실제 사진'이라는 동일한 콘셉트로 통일하는데, 이는 애플이 중시하는 미니멀 디자인의 원칙과 이를 통해 추구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패키지에도 적용시킨 것이다. 또 애플의 아이폰 패키지는 뚜껑이 열리는 속도를 정교하게 설계해 언박싱의 기대감을 극대화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점에 대해 패커티브는 “한 번쯤 애플의 제품을 구매하고 포장 박스를 열어본 경험이 있다면, 이 브랜드가 브랜딩에 대한 많은 고민과 노력을 제품 포장에 녹여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며, “만약 아이폰을 구매했다면 소비자는 단순히 휴대전화를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박스를 오픈하는 시점부터 아이폰이 전달하는 브랜드 이미지와 가치를 누리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패커티브는 OOBE, 즉 ‘언박싱 경험’을 활용하는 마케팅에 관해 “특별한 언박싱 경험은 자기만의 브랜드 스토리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단순히 말로만 전하는 브랜드 가치가 아니라, 패키징은 언박싱 과정에서 고객이 직접 제품에 대한 궁금증과 재미를 유발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스 50개만 주문 제작은 안 된다고?”
패커티브의 CEO(대표이사)이자 창업자인 다닝거 도미닉(Dominik Daninger) 대표는 오스트리아 인이다. 해커톤 대회 수상 경력도 있는 그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및 기획자로 IT 업계에서 17년간 경력을 쌓아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유럽 국가들의 홍보관에서 일할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패키징 솔루션 스타트업 ‘패커티브’를 창업하게 됐다고 밝혔다.
당시 해당 홍보관이 주최한 한 이벤트의 게스트들을 대상으로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내의 패키징 서비스 시장에서는 맞춤형 패키지를 참가 인원 수 정도만 소량 주문 제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국내 패키지 업체는 대부분 최소 수백 개~수천 개 단위로만 주문 받는 경직된 시장 환경인데 비해 패키지 소량 주문 제작에 대한 니즈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이후 국내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사업을 준비해 지난해 2월 패커티브를 론칭했다.
패커티브의 COO(최고운영책임자)인 이명하 이사는 “패커티브의 고객은 다양하다. 특정 이벤트에만 필요한 패키지를 원하는 고객들이 있고, 이커머스 채널을 통해 다양한 제품의 판로를 확장하고자 하는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닝거 대표는 “대우건설 등 대기업들과도 온보딩 박스 등의 제작을 의뢰받은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온보딩 박스(onboarding box)란 기업 신입사원 등 새로운 구성원들이 합류할 때, 처음 업무를 개시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툴을 모아 제공하는 것으로, ‘웰컴 키트’라고도 한다. 직원 매뉴얼, 노트, 스케줄러, 펜, 머그잔 등등 기업이 제공하는 선물들의 종류와 구성에 따라 큰 박스 안에 여러 개의 작은 박스가 들어가거나 구획을 나누는 등 구조와 디자인이 단순하지 않고, 해당 기업의 개성도 디자인에 담아야 하기 때문에 패커티브 같은 소량 주문 제작/생산 업체의 서비스가 도움이 된다.
패커티브에 따르면 대우건설에서 패커티브의 온보딩 박스 디자인/솔루션 서비스를 이용한 담당자는 “보통 타 업체에서는 그냥 ‘안 된다’고 했는데, 패커티브에서는 세밀한 것부터 잘 설명해주시고 해서 제작 절차와 소재 같은 까다로운 부분들을 이해하기가 쉬웠다. 그래서인지 서로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스마트 기술로 ‘비용의 벽’ 넘는 혁신 꿈꾸다
패키징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고객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니즈가 파악되는 것은 맞지만, 기존 대량 주문 위주의 패키지 주문 제작 환경과 소규모 패키징 솔루션 서비스 사이에 비용의 불일치가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다. 패키지는 제품에 비해 원가가 매우 저렴해야하기 때문에 패키지 제작은 전형적인 박리다매형 사업이 된다. 그리고 디자인 및 솔루션에는 일정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소량 주문 제작을 원하는 고객에게는 과도하게 청구되는 경우가 많다.
패커티브는 이러한 문제들을 기술로 해결했다. 송수현 디자이너는 “소규모의 패키지 디자인 등을 하는 경쟁업체들이 있지만 패커티브만의 3D 디자인, 신속한 견적 시스템 등은 우리가 더 좋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비슷한 소량 주문 제작 서비스의 경우 가격 차이는 거의 3배다”라고 말했다.
우선 패커티브는 지난해 2월, 디자인 전문 프로그램이 없는 고객이라도 쉽게 패키지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자체 개발한 무료 3D 패키지 디자인 툴을 출시하면서 출범했다. 이에 지난해 하반기 패커티브는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으며 VNTG로부터 시드투자를 유치했다. 또 카카오가 지난해 6월 카카오커머스를 인수합병할 당시 벤처투자업계는 카카오의 이커머스 사업과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유망 기업의 하나로 패커티브를 꼽기도 했다.
또 패커티브는 직접 개발한 ‘실시간 자동견적 서비스’를 적용한다. 고객은 패커티브 웹사이트에서 패키지의 형태, 사이즈 등 간단한 정보만 입력하면 실시간으로 견적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의 패키지 견적은 기성 사이즈에 대해 고정된 가격으로만 판매하고, 맞춤 사이즈에 대해서는 별도의 문의 및 견적 산출 과정에 평균 하루 정도가 소요됐으나, 다닝거 대표의 알고리즘을 통해 사이즈에 관계없이 실시간 견적 확인이 가능하며 간편하고 그 내용도 투명하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파워는 여타 패키징 업체들과 차별화되는 패커티브만의 경쟁력인데, 이는 17년 IT 개발자 경력의 다닝거 대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닝거 대표는 “견적, 디자인 외에도 제조 단계에도 스마트 기술을 적용해 내년부터 스마크 팩토리를 시작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명하 이사는 “지난 1년 사이 패커티브의 매출이 빠르게 증가했고, 올해는 지난해의 4배 정도 성장이 예상되어, 이를 달성하는 것이 1차 목표다. 또 아직까지 아날로그적인 설비 및 업무 스타일에 머물러 있는 국내 패키지 시장의 디지털 전환을 선도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 문화경제 윤지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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