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0호 안용호⁄ 2023.06.23 17:27:48
코로나19는 모여야 살 수 있던 인간 사회를 모이면 위험한 사회로 만들었습니다. 코로나 확산 이후 건축가나 도시 전문가들이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코로나로 인해서 도시가 해체될 것인가?’였다고 합니다.
유현준 교수가 쓴 ‘공간의 미래’(을유문화사)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변화의 상황에서 우리의 공간이 어떻게 바뀌었고, 바뀌어 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단순한 공간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계층 간의 갈등을 줄일 방법을 모색합니다.
학교 건물을 이야기할 때는 더 나은 교육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주거를 이야기할 때는 더 많은 사람이 내 집을 마련할 방법까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생활 공간에 대한 얘기에 그치지 않고 그린벨트, 물류 전용 터널, 국토 균형 발전까지 광범위한 공간에 대한 건축가로서의 진단, 비판, 바람을 이야기한다.
“SF영화 ‘엘리시움’을 보면 부자들은 환경이 파괴된 지구를 탈출해서 우주 정거장 같은 인공 환경의 도시를 만들고 분리되어 생활한다. 그곳에는 완벽하게 쾌적한 자연환경이 있고 어떤 병에 걸려도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문제는 이곳엔 선택된 갑부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p.243중에서)
유현준 교수는 주거 공간이건 상업 공간이건 이런 인공의 환경에서 선택된 사람들만 지낸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구분된 공간은 계층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그러한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여러 혁명의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거죠.
유 교수가 제시한 가까운 미래의 공간은 마당 같은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 각 아이를 위한 맞춤 교육 과정이 있는 학교, 지역과 지역을 이어 주는 선형 공원, 분산된 거점 오피스로 나눠진 회사, 내 집 가까이에 있는 작은 공원과 도서관, 자율 주행 로봇 전용 지하 물류 터널, DMZ 평화 도시 등입니다. 코로나가 우리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계속 모여 살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했지만 도시 해체에 대한 유 교수의 대답은 ‘해체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유 교수의 신간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을유문화사)은 미래의 공간에 대한 저자의 희망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 30곳을 소개합니다.
건물 구조로 “국회의원은 국민보다 아랫사람”이라고 외치는 ‘독일 국회의사당’, “빛이 빛 되게 하기 위한 장치”가 무엇인지 보여 주는 ‘킴벨 미술관’, 제약을 뛰어넘어 공공 공간을 만들며 소통의 장이 된 ‘시티그룹 센터’와 ‘HSBC 빌딩’, 하나로 이어진 연속된 구조로 미술관 공간에 대한 선입관을 깬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인간과 자연을 직접 대면하게 만든 ‘아주마 하우스’ 등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담긴 건축물들입니다.
“건축가는 여러 가지 조건 속에서 최고의 경험을 줄 수 있는 공간 구축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위 건축물들의 공통점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최고의 경험을 주고 새로운 깨달음을 준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이번 호 문화경제는 기업들이 선보이는 미래형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특집기사로 다룹니다. 먼저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매장에서 첨단 스마트팜과 야구팬들을 위한 랜더스 광장, 테마파크 바운스칠드런스파크 등 체험을 강조한 미래형 매장으로 변신하고 있는 이마트의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현대차는 핵심 거점 빌딩에 로보틱스 토탈 솔루션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자동차가 스스로 주차와 충전을 하고, 로봇이 내가 일하는 자리까지 물건을 가져다주는 미래 오피스의 모습이 이미 구현되고 있습니다.
건설사들은 미래형 주거 공간을 ‘사는 공간’에서 ‘가치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중입니다.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롯데건설의 ‘VL 그웨스트’, DL이엔씨의 ‘미래형 마이스’ 공간이 그 사례입니다. 현대건설은 입주민의 유전자 분석을 바탕으로 건강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을 능동적으로 관리하는 ‘올라이프케어 하우스’ 개발을 선언해 눈길을 끕니다.
다시 미래의 공간 얘기로 돌아갑니다. 건축물은 인간의 생각과 세상의 물질이 만나 만들어진 결정체로, 건축가의 인간을 향한 마음이자 그 사회의 반영이며 단면입니다. 그렇기에 건축물을 보면 당대 사람들이 세상을 읽는 관점과 물질을 다루는 기술 수준, 사회 경제 시스템, 인간에 대한 이해, 꿈꾸는 이상향을 볼 수 있습니다.
유현준 교수가 제시한 것처럼 우리 미래의 공간·건축물이 가진 자를 위한 디스토피아가 아닌, 함께 행복한 유토피아이길 바랍니다. 그 안에서 최고의 경험과 가치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책임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