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2호 김응구⁄ 2023.07.18 08:32:19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아이로봇(I, Robot)’은 2004년 개봉했지만 요즘 것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인간이 먹을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를 돌보며, 가게 심부름도 열심이다. 이처럼 각 가정에서 인간의 조력자 역할을 해온 인공지능(AI) 로봇들이 어느 순간 반란을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20년 전인 그때보다 오히려 지금 개봉해야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올 것 같은 영화다.
로봇 기술이 날로 발전한다. 공상과학영화(SF)에서나 보던 일들은 차츰 현실이 되고, 인간은 로봇을 더 이상 영화에서나 보는 허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전 산업별로 인간을 대체하는 로봇은 나날이 늘고 있고, 여러 곳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이제 관건은 집이다. ‘아이로봇’처럼 과연 로봇은 우리 집에까지 들어올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언제쯤일까.
현실은 집 앞까지 와 있다. 적어도 서울 관악구에선 그렇다. 이 자치구는 지난해 6월 자율주행 순찰 로봇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관내에 순찰이 필요한 이곳 저곳을 구석구석 다니며 정보를 습득하고, 위험 상황과 맞닥뜨리면 이를 관악구청 통합관제센터에 알린다. 이름은 ‘골리(Goalie)’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골리 Ⅱ’다.
작년 6월 자율주행 순찰 로봇 운영 시작
앞서 ‘골리 I’이 먼저 활약했다. 2020년 7월 경기도 시흥시 배곧행명공원에서 운행을 시작했다. 물론, 이때의 ‘골리 I’은 관악구와 무관하다. ‘골리 Ⅱ’는 1세대인 ‘골리 I’에 이은 차세대 버전이다. 관악구는 이 ‘골리 Ⅱ’를 지난해 6월 관내 빌라촌에 전격 투입했다. 국내 최초 도심지 자율주행 순찰 로봇이 된 순간이다.
따지고 보면 관악구는 지역 특성상 자율주행 순찰 로봇이 가장 필요한 지역이다.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1인 가구는 물론 여성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원룸이 많은 데다 밀집해 있고, 골목길도 그 어느 지역보다 많다. 이런 상황에서 ‘골리 Ⅱ’의 활약은 안전 취약계층엔 더없이 반가운 대상이다.
심야 시간에는 서림동 주택가와 해태어린이공원 주변, 주간에는 신림동 별빛내린천변을 주로 순찰한다. 그러면서 취합한 영상은 5G(5세대 이동통신)로 관악구 스마트 통합관제센터에 전송하고, 이후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사고 발생을 사전에 방지한다. 방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경찰차 위에 달려 있는 경광등도 착용했다.
관악구에 따르면 ‘골리 Ⅱ’는 한국로봇산업진흥원(KIRIA)이 실시한 장애물 충돌, 대인(對人) 상호접촉 같은 안전성 관련 국제표준시험(ISO 13482)을 통과하며 안전 성능을 인정받았다. 순찰 역량도 도심지에 맞도록 개선했다. 앞서 밝힌 대로 5G를 통해 실시간으로 통합관제센터와 통신할 수 있고, 특히 라이다(LiDAR) 카메라를 서라운드로 장착해 인지능력이 1세대 골리보다 두 배 이상 향상됐다. 야간순찰 강화를 위해 열화상 카메라도 추가로 적용했다.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 같은 치안 취약 지대도 집중해서 감시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2일 행정안전부는 ‘2022 탄소중립 지역발전 및 지역혁신유공’ 행사를 개최했다. 관악구는 이 정부포상 가운데 ‘디지털 지역혁신’ 분야에서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전국 지자체 중에선 유일한 수상이다. 국내 최초로 도심에서 운영한 자율주행기반 안심순찰 서비스의 공을 인정받은 것이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이 수상으로 자율주행 순찰 로봇이 지속가능하고 전국으로 확산 가능한 디지털 지역혁신의 모델임을 알리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도 지역혁신을 위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스마트도시 관악’을 조성하고자 관악구민들과 늘 소통하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악구가 ‘골리 Ⅱ’를 처음 기획한 건 2020년의 일이다. 앞서 말한 대로 1인 가구 최다 등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구민 안전 사업 일환이었다. 기획부터 운영까지 모든 단계에는 지역주민이 직접 참여했다.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과학기술 전문기업(HL만도·SK텔레콤), 대학교(인천대)가 머리를 맞대 리빙랩(living-lab)을 구성했다. 관(官) 중심이 아닌 주민 관점에서 지역 문제를 제시하고 전문가 관점에서 해결 방안을 적용해, 마침내 수요자 맞춤형 순찰 로봇 개발로 이어졌다.
본격 운영에 들어간 건 지난해 6월이지만, 그에 앞서 4월부터 10월까지 총 175.58㎞를 운행했다. 시간으로 치면 8446분에 달했다. 이어 11월부터 12월까지는 반경 250m를 확장해 운영하며 100.96㎞, 4085분을 운행했다.
관악구는 특히 리빙랩의 의견을 받아들여 기존 방범 기능에 ‘관광 도우미’ 역할을 더한 ‘골리 Ⅱ’를 올해부터 운영한다. 장소는 낙성대공원. 자율주행 모드 상태의 ‘골리 Ⅱ’가 신청자들과 함께 공원을 다니며 이곳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해설해주는 식이다. 올해 운행 목표 횟수는 10회. 내년엔 30회, 내후년엔 40회로 해마다 10회씩 늘릴 계획이다.
홀몸 노인·장애인 위한 반려 로봇도 지원
노인과 장애인 중에서도 홀몸으로 사는 이들의 고독감이나 우울감은 이루 말하기 힘든 고통이다. 정서적 불안이 뒤따르고 고독사 위험에까지 내몰린다. 관악구에 따르면 관내 노인 4명 중 1명, 역시 장애인 4명 중 1명이 1인 가구다. 이에 관악구는 ‘말벗’과 ‘관심’에 집중했다. 이를 위한 도구로는 인공지능(AI) 로봇에 주목했다. 급기야 외부와의 단절로 사회적 고립감이 높은 홀몸 노인·장애인에게 AI 로봇인형을 제공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관악구는 지난 4월 관내 홀몸 노인 64가구에 AI 돌봄 로봇을 보급했다. 이 로봇은 위급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 신속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어르신 지킴이’라는 뜻을 담아 로봇 이름을 ‘키미’로 지었다.
자연재해 같은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음성과 비상벨을 통해 관제센터로 즉시 연결되고, 곧이어 로봇에 설치한 CCTV가 작동하면서 화면에 보이는 홀몸 노인의 안전을 신속히 확보한다.
보급 대상은 지난해 8월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만 80세 이상 홀몸 노인 114가구 중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한 64가구로 정했다. 관악구는 지난 4월부터 이들 가구를 직접 방문하며 순차적으로 로봇을 보급·설치하고 있다. 앞으로는 대상을 만 65세 이상으로 확대하고, 특히 반지하 거주 노인에게도 추가로 보급할 계획이다.
관악구 관계자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생활지원사는 주 5일, 하루 5시간 미만으로 근무하는데, 그 같은 시간적 아쉬움을 돌봄 로봇 키미가 보완해 노인의 돌봄 서비스 공백을 최소화하고, 무엇보다 고독감 해소에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홀몸 노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AI 돌봄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위기상황이 발생해도 신속히 대응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도 구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돌봄사업 등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관악구는 지난해 ‘키미’와 비슷한 인형 모습의 AI 반려 로봇 ‘차니봇(Channy-Bot)’을 관내 독거 노인과 독거 재가(在家) 장애인에게 보급했다. 차니봇이라는 이름은 안부를 묻는 인사말 ‘괜찮니’에서 착안했다. 1인 가구 노인·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돕고(贊) 삶을 이롭게(利) 해주는 반려자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기능은 ‘키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약 복용 시간이나 기상·취침 시간 등 개인별 맞춤형 알림부터 일상생활에서의 말동무 역할, 관악구 행정·복지 소식 알림, 안전관리 모니터링으로 비상 상황 시 응급 연계 등 AI 기반의 스마트 통합 돌봄을 지원한다.
종류는 모두 세 가지다. 단순히 말벗 기능을 선호하는 고령의 노인이나 발음이 어려운 장애인에겐 터치인식 기반의 봉제인형 로봇 ‘말벗인형’을 제공하고, 스마트기기 조작이 가능한 대상자에겐 음성인식 기반의 탁상형 ‘AI로봇’을 준다. 우울감 높은 장애인에겐 터치인식과 음성인식을 합친 ‘AI인형’을 지원한다.
관악구는 지난해까지 말벗인형 90대, AI인형 20대, AI로봇 95대를 각각 지원했다. 모두 205대로, 처음 목표인 200대를 넘겼다. 올해는 이미 보급된 205대의 유지보수에 힘쓰고, 이어 10월까지 80대를 신규로 지원할 계획이다.
관악구는 반려 로봇을 단순히 보급하는 차원에서 끝내지 않는다. 사용자 만족도 조사, 우울증 척도검사, 서버데이터 분석 등으로 홀몸 노인·장애인의 정서적 안정과 돌봄 수행 기여도 등 효과성을 조사한 후, AI 기반의 스마트 통합돌봄 모델로 구체화할 계획이다.
교육로봇 ‘리쿠’로 디지털 격차 해소까지
관악구는 아이들을 위한 독서 프로그램에까지 로봇을 끌어들였다. 교육용 AI 로봇 ‘리쿠(LiKU)’ 얘기다.
‘과학의 달’이었던 지난 4월, 관악구립도서관인 별별창작꿈터 봉현작은도서관에 ‘리쿠’를 비치해놓고 ‘도서관에 온 친구, 로봇 리쿠’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도서관을 찾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프로그램인데, 자유롭게 ‘리쿠’를 체험해보며 자연스럽게 과학과 독서에 흥미를 갖도록 하고자 준비했다.
특히, 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1~3학년)에게 ‘리쿠’를 소개하면서 서로 대화하도록 하고, 함께 추억 사진을 찍고, ‘리쿠’가 들려주는 동화를 감상하는 등의 체험기회를 제공하니 호응이 대단했다는 게 관악구 측 설명이다. 5월부터는 사전 신청한 어린이집·유치원을 대상으로 ‘로봇 리쿠와 함께하는 구연동화 및 안전교육’을 운영 중이다. 구연동화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콩쥐 팥쥐 △흥부와 놀부 △혹부리 할아버지 △해님달님 △미운 아리오기 등 여섯 가지를 선보이고 있다.
‘리쿠’는 지난해에도 활약했다. 1월 관악구청 직장어린이집과 구립문성어린이집에서 시범운영을 진행했고, 좋은 반응을 얻어 관내 어린이집으로 확대했다. 한 해 동안 어린이집과 유치원 111곳에서 1771회 교육으로 1만7896명이 ‘리쿠’를 즐겼다. 목표였던 1만3000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올해 목표 수치는 지난해와 같지만, 이용자 수는 지난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리쿠’의 시작은 2020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은 ‘로봇 활용 사회적 약자 편익 지원 공모사업’을 진행했다. 이 공모에 서울디지털재단과 서울 5개 자치구(관악·강남·강동·양천·중랑)로 구성한 컨소시엄은 ‘디지털 격차 해소 교육로봇 보급 사업’으로 도전했고, 최종 선정됐다. 이에 따라 장·노년 층에게 디지털 기기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일대일 맞춤형 교육 로봇인 ‘리쿠’를 선보였다.
이 교육용 로봇은 스마트폰이나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의 활용법을 자세히 알려주고, 실습 결과는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잘 되지 않는 부분은 반복해서 연습하도록 유도한다. 음성인식과 답변 기능도 장착해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는 쌍방향 소통 학습도 가능하다. 지난해의 경우 봉천종합사회복지관 등 4곳에서 모두 19차례에 걸쳐 111명에게 디지털 교육을 진행했다.
올해 서울디지털재단 컨소시엄은 신규 콘텐츠도 추가로 개발할 계획이다.
안전 다음은 편리? 그땐 로봇이 집안으로 들어올 지도
앞서 얘기한 대로 이제 로봇은 우리 집 대문 앞까지 와 있다. 어느 순간, 그 로봇은 사람의 형태로 집 안까지 들어올지 모른다. 아직 멀었다고? 천만에. 자율주행 순찰 로봇이 혼자서 우리 집 앞을 오가는 모습, 불과 몇 년 전엔 상상조차 못했던 일 아닌가.
SF 영화는 일종의 ‘바람’이다. 그렇게 되길 소망하는 바람이다. 거기에 재미적 요소를 가할 뿐이다. 그 바람은 언젠가 현실이 된다. 그 현실이 꽤 가까이 다가온 듯하다. 영화 속 로봇이 수년 내 우리 집 안방과 거실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 로봇은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인간의 조력자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각 기업은 좀 더 편리하고 안전하면서도 실용적인 로봇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물론 인간을 위해서다. 허나, 기업만 그런 건 아니다.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구민을 위해 로봇을 고민하고, 시도하고, 개선하고, 발전시킨다. ‘골리’는 아주 좋은 예다. 뭐든 앞서나가는 건 좋은 일이다. 관악구처럼.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