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폭우, 홍수, 산사태 등 세계 곳곳이 이상기후로 시름을 앓고 있다. 학계는 이런 이상기후를 전 세계 탄소 배출이 가속화된 결과로 보고 있다. 특히 제철공정에서 많은 탄소가 발생되는 철강업계는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국내 1위 철강기업인 포스코가 탄소중립을 목표로, 자사의 대표 사업에 친환경 방침을 확대 적용하며 새로운 생태계 조성에 나서고 있어 눈길을 끈다.
포스코 “그린스틸로 창조하는 더 나은 세계”
‘그린스틸로 창조하는 더 나은 세계(Better World with Green Steel).’ 포스코그룹의 주축인 철강사업을 영위하는 포스코가 7월 13일 포항 본사에서 비전을 선포했다. 포스코의 비전은 철강회사로서의 정체성, 미래지향, 탄소중립의 의미를 포함하며, ▲환경적 가치 측면에서 혁신기술로 탄소중립 사회를 선도하고 ▲경제적으로는 철의 새로운 가치 창조를 통해 지속 성장하며 ▲사회적으로는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기업을 지향한다.
이날 선포식에 참석한 포스코 김학동 대표이사 부회장은 “철강산업이 전통적인 굴뚝산업, 탄소 다(多)배출 산업이라는 한계를 넘어 포스코는 앞으로 다양한 첨단기술의 융합으로 업(業)의 진화를 이끌어 미래 철강산업의 블루오션을 선점할 것”이라며 “신(新) 철기시대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이자 친환경 미래소재 대표기업으로서 새로운 시대를 선도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이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그리닛’이다. 그리닛은 지난해 11월 ‘친환경 소재 포럼 2022’에서 포스코가 론칭한 탄소저감 브랜드로, 이오토포스(e Autopos), 이노빌트(INNOVILT), 그린어블(Greenable)로 대표되는 3대 친환경 철강 브랜드 제품을 비롯해 저탄소 철강 및 친환경 이차전지소재 생산을 위한 포스코그룹의 모든 노력과 제품을 포괄한다.
이후 올해 6월 포스코는 국내 최초로 탄소감축량 배분형(매스 밸런스) 제품인 ‘그리닛 서티파이드 스틸’을 출시하며 탄소중립 마스터 브랜드 그리닛의 본격 행보를 시작했다. 그리닛 서티파이드 스틸 또한 그리닛에서 착안해 명명됐다.
매스 밸런스는 탄소 배출량 감축 실적을 특정 강재에 배분하는 방식으로, 온실가스 감축량이 많아질수록 판매량도 늘어나는 구조다. 이미 유럽, 일본 등 글로벌 철강사들은 매스 밸런스 방식을 2021년부터 적극 도입해 왔으나, 국내에서는 포스코가 처음으로 해당 방식을 채택해 탄소저감 제품을 출시한 것.
그리닛 서티파이드 스틸의 탄소 배출량 및 감축량 산정은 온실가스 배출 관련 공시에서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표준인 GHG 프로토콜(Protocol)에 기반했다. 감축방법·감축량·배분방식 검증은 세계 3대 인증기관이자 글로벌 철강사 탄소저감 강재 인증 경험이 많은 DNV(Det Norske Veritas) UK가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 실사를 통해 수행했다.
그리닛 서티파이드 스틸 구매 고객사에게는 탄소 감축량 정보가 기재된 DNV의 제품보증서와 포스코의 구매인증서가 제공돼 고객사는 원재료 부문 탄소 감축량을 보증 받을 수 있다. 첫 고객사는 LG전자다. 지난해 11월 포스코와 ‘매스 밸런스 탄소저감 강재제품 공급 및 구매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LG전자는 그리닛 서티파이드 스틸 출시와 동시에 건조기 부품의 소재로 사용되는 철강 제품 200톤을 주문했으며, 향후 생활가전 제품에 탄소저감 철강재 적용 확대를 적극 검토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도 프리미엄 오븐 제품에 그리닛 서티파이드 스틸을 우선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가전용 고강도·고내식 제품 및 전기강판 제품 등에 대해 업계 최초로 3년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한 포스코와 삼성전자는 기술 협력과 탄소중립 관련해서도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이 밖에 포스코는 3월 말 이마트 연수점 매장 내 그리닛 서티파이드 스틸을 시범적으로 적용한 스마트팜 하우징 부스를 시민에게 공개하는 등 탄소저감 노력을 알리고 있다.
타기업뿐 아니라 지자체와도 손을 잡았다. 7월 12일 포스코는 서울시와 ‘철의 친환경성을 통한 순환경제사회 촉진’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포스코와 서울시는 기존 서울시 브랜드 조형물을 철거한 폐철을 친환경적으로 재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포스코의 그리닛과 그리닛 서티파이드 스틸을 공공 인프라에 우선 적용하기 위한 다양한 협력을 진행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포스코는 그리닛 서티파이드 스틸을 사용한 서울시 신규 도시브랜드 ‘서울, 마이 소울(Seoul, my soul)’ 조형물을 서울광장 등 서울시 랜드마크 3개 지역에 설치할 예정이다. 또한 그리닛 서티파이드 스틸에 포스아트 기술을 적용해 제작한 ‘서울 둘레길 2.0’ 대형 안내판 6개를 우면산과 대한민국 100대 명산인 관악산, 수락산 등 서울시 주요 둘레길에 설치한다. 포스아트 강판은 기존 대비 해상도가 최대 4배 이상 높은 고해상도 프리미엄 잉크젯 프린트 강판으로, 포스코의 표면처리 강판 전문 그룹사인 포스코스틸리온이 생산한다. 포스코는 포스아트 기술로 2019년 세계철강협회로부터 ‘올해의 혁신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밖에 포스코는 서울시와 전과정평가(Life Cycle Assessment) 관점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철의 장점을 살려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포스코는 순환경제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 서울시가 보관하고 있는 철스크랩을 제공받아 철강제품 생산 시 원료로 사용할 예정으로, 우선 중랑구 물센터 등에 보관중인 기존 서울시 도시브랜드 조형물 폐철 스크랩 14톤을 활용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공공 인프라·건축물에 포스코의 그리닛 서티파이드 스틸 및 포스코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인증 받은 GR(Good-Recycled)제품을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플라스틱 감축을 위한 친환경 스테인리스 다회용기 활성화, 폐소화기 재활용 사업 등도 실시할 계획이다.
포스코 엄기천 마케팅전략실장은 “철강업계에서 탄소저감은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포스코는 다양한 제품군 출시를 통해 적극 대응하고 있다”며 “그리닛 서티파이드 스틸 제품 론칭으로 철강시장에서 탄소중립이라는 먼 여정을 항한 발걸음을 내딛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룹ESG협의회 신설…수소환원제철로 향한다
그리닛으로 대표되는 포스코의 활동들은 중장기적으로 '2050 탄소중립'을 현실로 만들기 위함이다. 포스코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2050 탄소중립을 2020년 12월 아시아 철강사 중 최초로 선언하고, 기본 로드맵을 2021년 발표했다. 관련해 포스코그룹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는 포스코그룹의 ESG이슈를 모니터링하고, 리스크를 진단해 대응방안 도출과 그룹 ESG정책 수립을 목적으로 지난해 ‘그룹ESG협의회’를 신설했다.
지난해 3월 열린 그룹ESG협의회 첫 회의에서 포스코는 ▲탄소 포집 및 활용 ▲저장(CCUS)기술 도입 ▲수소환원제철 기술 상용화 ▲포스코형 저탄소 제품 판매전략 등 사업장 감축과 사회적 감축을 통한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공유했다. 포스코는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사업장 직접 감축 10%, 사회적 감축 10%를 달성하고, 2040년까지는 50% 감축,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포스코홀딩스는 지주사 체제 전환 이후 첫 해 ESG 성과를 담은 ‘2022 기업시민보고서’도 7월 20일 발간했다. 포스코홀딩스와 7개 주요 사업회사(포스코,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이앤씨, 포스코퓨처엠, 포스코DX, 포스코엠텍, 포스코스틸리온)의 ESG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그룹 차원에서 통합 검증해 정리했는데, 특히 이번 보고서에 신설한 스페셜 페이지엔 ‘기후변화 대응’도 포함됐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포스코는 8월 1일 강남 포스코센터에서 국내 주요 고객사를 초청해 ‘탄소저감 제품 출시계획 설명회’를 열고 글로벌 탄소저감 요구 현황 및 포스코의 2050 탄소중립 로드맵에 대해 소개하면서, 2030년까지 출시되는 탄소저감 제품 라인업을 공개했다.
포스코는 기존 고로(용광로) 기반 저탄소 조업 기술을 향상시키고, 전기로 신설을 통해 2026년부터는 용강(강철이 녹은 쇳물)을 직접 생산하거나, 고로에서 생산된 용선과 혼합하는 합탕 방식을 통해 탄소배출을 감축할 예정이다. 전기로는 전통적인 용광로와 비교해 탄소 배출량이 25% 수준에 불과하다. 포스코는 전기로를 ‘수소환원제철’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로 보고 있다.
수소환원제철은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혁신 기술이다. 화석연료는 철광석과 화학 반응하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만, 수소는 물이 발생해 수소환원제철은 철강 제조과정에서 탄소배출을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로 평가받는다. 포스코는 2026년 수소환원제철 시험설비 준공 후 2030년까지 상용화 기술 개발을 완료해 단계적으로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생산 설비를 전환해나갈 계획이다.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완성하고 탄소중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포항제철소는 하이렉스(HyREX: 포스코 고유의 파이넥스 유동환원로 기술을 기반으로 한 포스코형 수소환원제철 기술) 실증플랜트 건설과 상저취전로, 저탄소 원료 HBI(Hot Briquetted Iron) 사용 확대 등의 브릿지(Bridge) 기술 개발에 집중한다. 광양제철소는 2026년부터 본격 가동 예정인 전기로에서 저탄소 고급강 생산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포스코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고 저탄소 제품 1000만 톤 공급 체계를 완성할 계획이다.
이에 맞춰 포스코는 2026년 광양제철소 전기로 본격 가동 전까지 단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 크레딧 구매 등을 통한 ‘리뉴어블 에너지 스틸’과 탄소배분방식을 활용한 그리닛 서티파이드 스틸을 판매한다. 중장기적으로는 고로 기반 저탄소 조업과 최신식 대형 전기로 및 수소환원제철을 통해 탄소배출을 30% 이상 저감한 ‘그리닛 카본 리듀스트 스틸’을 판매해 고객사의 탄소저감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최정우 회장 “지속가능한 미래 선도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포스코의 노력은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포스코의 온실가스 직간접 배출량은 전년 대비 830만 톤 감소한 7018만 6000 톤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포스코의 2050 탄소중립 로드맵 기준연도(2017~2019년) 평균 배출량인 7880만 톤보다 10.9% 줄어든 수치다.
포스코의 탄소 감축은 지난해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7월 말 환경부 소속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철강산업 전체의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 대비 8.9% 줄어든 9300만 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포스코의 친환경 미래소재 대표기업 100년 도약을 위한 노력, 투자는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7월 3일 포스코 포항 본사에서 열린 포항제철소 1기 설비 종합 준공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포항 1기 종합준공은 한국경제사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다”며 “포스코의 지난 50년이 철강사업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견인한 위대한 도전이었듯이 포스코그룹은 앞으로 철강을 비롯한 이차전지소재, 수소 등 핵심사업 중심의 성장을 통해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선도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로 거듭날 것”이라며 2030년까지 총 121조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포스코그룹은 이번 발표한 투자계획에 따라 그룹의 근간이자 경쟁력인 철강사업뿐만 아니라 미래 신모빌리티를 견인할 이차전지소재사업과 그룹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위한 수소사업 등에 집중 투자한다. 최 회장은 “이번 투자로 미래 기술과 성장 시장을 선점해 핵심사업에서 선도적 지위를 공고히 해 친환경 미래소재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상에 가치를 더한다’는 포스코그룹의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도 8월 9일 공개했다. 여기서 특히 ‘그린스틸로 세상에 가치를 더한다. 그린 투모로우, 위드 포스코(Green Tomorrew, with POSCO)’를 강조하며 친환경 미래소재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그룹의 지향점을 소개했다.
포스코가 7월 선포한 ‘그린스틸로 창조하는 더 나은 세계’ 비전 슬로건을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광고 캠페인 ‘판타스틸-신(新)철기시대의 서막’도 8월 14일 전국 극장과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 공개했다. 게임회사 넥슨과 협업한 포스코 최초의 컬래버 광고로, 넥슨이 올해 초 출시한 ‘프라시아 전기’를 결합해 중세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판타지 프레임을 배경으로 ‘위대한 철의 기술’을 통해 평화로운 인류를 지키는 철의 가치를 임팩트 있게 그려냈다.
광고 슬로건인 ‘판타스틸(FANTASTEEL)’은 판타지(Fantasy)와 철(Steel)의 합성어로, 친환경 철강을 통해 미래세대가 꿈꾸고 바라는 판타지 같은 ‘더 좋은 세상(Better World)’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지녔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