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4호 김응구⁄ 2023.08.17 13:56:26
극한 호우가 끝나자마자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8월 6일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의 낮 기온은 39.5도를 기록했다. 2018년 여름은 기억조차 하기 싫다.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의 폭염이었다. 당시 온열질환으로 48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8월 14일까지 온열질환으로 추정되는 사망자가 29명에 달한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1년부터 2021년까지 폭염 사망자 수는 모두 522명이다. 같은 기간 태풍과 호우로 인한 인명피해를 모두 합친 수의 두 배가 넘는다.
이상기후·기후변화 탓이다. 환경도 그렇지만 사람의 건강도 치명적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상기후와 기후변화로 심뇌혈관질환, 호흡기질환, 신장질환을 앓을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후 우울증’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이상기후가 정신질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다.
보통 지구의 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하면 수증기는 7% 정도 늘어난다고 한다. 수증기가 많아지면 그만큼 더 강한 비구름이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여름철 폭염과 폭우가 겹칠 확률도 높아진다. 해마다 지구는 더 높은 온도를 기록하고, 그만큼 인명피해도 커지고 있다.
당연히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선 손 놓고 볼 수만 없다. 특히 주민과 가장 가까이 있는 자치구는 이상기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물론, 그와 관련한 여러 예방 사업도 펼친다. 작게는 일회용품 줄이기부터 대규모 범구민 탄소중립 실천에 이르기까지 넓고도 다양하다.
올해 ‘노원구민안심보험’에 온열질환 진단비 추가
서울 노원구(구청장 오승록)의 예를 들어보자. 먼저, 앞서 얘기한 온열질환 관련 사업이다.
노원구는 올해를 시작하며 ‘노원구민안심보험’의 보장 범위를 확대했다. 2019년 시작한 이 보험은 구민이 각종 재난이나 사고로 피해를 봤을 때 보험금을 구(區)가 대신 지급해주는 제도다. 예기치 못한 사고에 놀란 피해 구민을 지원해 최소한의 생활 안정을 보장해주려는 목적이다.
노원구는 올해 이 보험의 보장 항목에 ‘온열질환 진단비’를 추가했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따라 진단받은 경우 1회에 한해 10만 원을 지급한다. ‘2023년 노원구민안심보험’ 가입 기간은 내년 1월 31일까지다. 보험금은 사고 발생일로부터 3년 이내에 청구해야 한다. 노원구에 주민등록이 돼 있다면 별도의 건강진단이나 가입절차 없이 자동으로 가입된다. 외국인도 포함된다. 다만,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 자동 해지된다. 보험료는 노원구가 전액 부담하기 때문에 무료다. 개인이 별도로 가입한 보험과 관계없이 중복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 노원구 외의 지역에서 사고를 당해도 청구할 수 있다.
전국 최초로 선보인 ‘힐링 냉장고’… 여러 지자체서 벤치마킹
노원구의 온열질환 예방 사업 중 ‘힐링 냉장고’를 빼놓을 수 없다. 노원구민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올해로 4년째 여름철 산책길을 책임지고 있다.
힐링 냉장고는 노원구가 2020년 전국 최초로 선보인 사업이다. 구민들이 자주 찾는 산책로나 하천변에 생수병이 가득 들어있는 냉장고를 설치해 누구나 이용토록 하고 있다. 하루 평균 6만 개를 비치해놓는다. 지금도 전국의 지자체가 벤치마킹하는 노원의 ‘히트 사업’이다.
올해는 7월 17일 시작해 8월 20일까지 운영했다. 매년 운영 결과를 평가해 그다음 해의 운영장소와 이용시간을 일부 조정한다. 올해는 작년에 생수 소비량이 극히 적었던 영축산 순환산책로와 묵동천을 제외하고 기존에 운영하지 않았던 수락산 무장애숲길에 새로 배치했다. 물론 이 같은 변경사항은 사전 구청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자세히 알린다.
힐링 냉장고는 설치만 하고 내버려 두지 않는다. 자원봉사자 210명으로 구성한 자율방재단이 틈나는 대로 찾아 관리한다. 노원구는 지난해 8월 힐링 냉장고 이용 주민 3만7058명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99.2%가 ‘만족했다’는 답을 했다.
노원구는 폐기물 감소와 재활용 활성화를 위해 생수 전량을 라벨이 없는 페트(330㎖)로 제공한다. 힐링 냉장고 생수병 전용 분리수거함도 마련해놨다. 여기에 담긴 폐기 생수병은 생수 공급자가 하루에도 수차례에 걸쳐 직접 수거해간다. 이렇게 모은 생수병은 생수 본사를 거쳐 에코(eco) 의류로 재활용한다. 플라스틱 페트병의 주원료인 폴리에스터는 의류 제작에 필수소재다. 결국, 친환경 패션과 탈(脫) 플라스틱에 동참하면서 자원의 선순환과 재탄생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6월 ‘탄소중립 도시’ 선언… ‘탄소중립추진단’도 신설
이상기후,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등의 문제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탄소중립(炭素中立)’이다. 우리나라만이 아닌 전 세계의 공통 관심사이자 대규모 환경사업이다. 탄소중립은 기업이나 개인이 발생시킨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만큼 이의 흡수량도 늘려 실질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든다는 의미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지구온난화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줄이려는 노력에 한창이다. 우리나라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설정한 목표에 따라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 이에 노원구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40% 감축에 이어 2050년에는 탄소중립을 이뤄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노원구는 지난 6월 ‘탄소중립 도시’를 선언했다. 그에 앞서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2050 탄소중립도시 추진계획’도 수립했다. 핵심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노원 탄소중립 2050 구민회의’를 중심으로 한 구민 참여사업과 ‘탄소중립형 재개발·재건축 추진’ 등의 지역 특화 감축사업이다.
언뜻 이해가 쉽지 않지만, 차근차근 풀어 설명해본다. 먼저, 노원구는 탄소중립 실천을 이끌어갈 ‘탄소중립 리더’ 100명으로 구성한 구민회의를 구성한다. 탄소중립 이행 주체인 구민의 역할을 강화하고 자발적 감축 효과를 확대하려는 목적이다. 구민회의는 시민사회단체, 종교·교육기관, 지역상공인단체, 주민자치기구 등의 주체들을 모아 능동적으로 실천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발족식은 올 하반기에 열리며, 필요하다면 구는 이에 필요한 예산도 지원할 계획이다.
아울러 지역 특성에 맞는 특화사업도 발굴한다. 관내에는 30년 넘은 아파트가 수도 없이 많다. 올해로 55개 단지, 7만4000여 세대에 이른다.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선 가장 많다. 이는 곧 재개발·재건축 수요가 많다는 의미다. 그런 만큼 선도적으로 탄소중립형 재건축 추진 모델을 제시하고, 특히 제로에너지건물(ZEB) 인증 설계와 컨설팅을 지원해 탄소중립형 주거단지를 조성할 방침이다.
이번 추진계획은 지난 6월 8일 출범한 ‘노원구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심의·의결했다. 이 위원회는 탄소중립 전문가와 구민 대표 등 총 30명으로 구성됐다. 오승록 노원구청장과 서왕진 전(前) 서울연구원장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탄소중립 도시와 녹색성장의 추진을 위한 주요 정책 계획과 그 시행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한다.
앞서 노원구는 지난해 12월 탄소중립 컨트롤타워인 ‘탄소중립추진단’을 신설했다. 노원구 조직도를 보면 부구청장 직속 부서로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기존 녹색환경과를 추진단으로 편입하고, 탄소중립 정책을 총괄할 탄소중립정책팀을 제1팀으로 해 그와 함께 지속가능팀, 환경관리팀, 생활환경팀, 에너지관리팀 등으로 조직했다.
지난해 4월에는 ‘노원구 탄소중립도시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이를 통해 △녹지 △폐기물 △모빌리티 △건물 △공공부문 △민관협력 등 6대 부문 26개 핵심 정책과제를 선정했다. 이에 따라 친환경 노원형 도시숲 조성, 노원 새활용센터 건립, 자전거 친화도시 추진, 공공건축물 제로에너지건축 시행 등을 순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이뤄내기 위한 이 같은 체계적인 이행과정은 도시형 탄소중립 정책의 선도적인 모델이 될 것”이라며 “구민과 함께 노원의 특색에 맞는 정책을 발굴하고 추진해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청사 내 일회용 컵 사용 금지… 다회용·개인 컵만 가능
노원구는 지난 2월부터 청사 내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반입도 안 된다.
청사 1층에는 노원구어르신행복주식회사가 운영하는 카페가 넓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커피 등 음료를 주문할 땐 다회용 컵이나 개인 컵만 사용해야 한다. 다회용 컵으로 주문하면 보증금 1000원을 음료값과 함께 결재해야 한다. 다 사용한 컵은 뚜껑을 제거한 뒤 청사 본관과 별관, 노원구보건소 1층에 있는 무인반납기에 반납하면 된다. 그 즉시 보증금을 현금 또는 포인트로 돌려받는다.
반납한 컵은 관련 업체가 일주일에 다섯 차례 정도 방문해 수거한 다음 전문 세척장으로 보낸다. 이후 세척장에서 초음파 세척, 고온·고압 세척, UV 살균건조 등 모두 일곱 단계에 걸쳐 세척한 후 다시 카페에 공급해 재사용토록 한다.
개인 컵이나 텀블러 이용자들을 위한 자동 세척기도 구청 본관 2~6층과 별관 2~3층 세면대 옆에 설치해놨다. 이를 이용하면 안이 깊은 텀블러나 입구가 좁은 컵에 손을 넣지 않고도 쉽게 씻을 수 있다.
노원구 관계자는 “다회용 컵과 개인 컵 사용을 유도함으로써 구청 카페에서만 하루 평균 300개, 1년이면 7만2000개가량의 플라스틱 또는 종이컵 사용을 줄이고, 연간 0.361t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자체 모두 탄소중립 실천에 열심… 개인도 적극 행동해야
사실, 탄소중립은 전 지구적 ‘사명’인 만큼 나라마다 또는 도시별로 앞다퉈 추진해야 한다. 누가 더 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나라면 나라, 도시면 도시, 각자의 목표와 계획에 충실하면 그뿐이다. 노원구만 눈에 띌 정도로 열심인 것도 아니다. 알고 보면 서울 25개 자치구, 더 나아가 광역지방자치단체 모두 나름의 노력을 하루하루 이어간다.
문제는 개인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어도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무소용이다. 이들의 마음과 행동이 움직이도록 지자체가 나서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마트나 시장에 갈 때 일회용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이용하면 된다. 집안에서 사용하지 않는 전자제품은 콘센트를 뽑아놓으면 된다. 사용하지 않는 중고제품은 이웃에게 나눠주면 된다.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타면 된다. 귀찮아서 그렇지, 모두 어렵지 않은 일이다.
구청사 내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때 사람들은 비로소 깨닫는다. “조금 불편해도 환경을 위해 다회용 컵을 사용해야 하는구나.” 온열질환으로 고생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구민안심보험 혜택을 받을 때도 깨닫는다. “이상기후라는 건 나에게도 영향을 미치는구나.” 생각하면 바뀐다. 행동으로 옮겨진다. 지자체의 노력은 이럴 때 빛을 발한다. ‘2050 탄소중립’ 같은 ‘큰 그림’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한 사업이다. 그와 함께 작은 실천에 동참토록 하는 구정(區政)도 더없이 중요한 사업이다. 두 가지 모두 게으르지 않은 노원이 좋은 모델이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