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영⁄ 2025.07.02 09:19:30
어디선가 본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이질적인 도시 풍경들이 눈길을 끌었다. 또 이 풍경들은 과거부터 현재, 미래를 넘나들듯 시간도 가늠할 수 없어 더 오묘했다. 그 반복되는 잔상들이 전시를 보는 내내 긴 여운을 만들었다. 이 가운데 작가가 던진 질문. “과연 어디까지가 사진 예술의 영역일까?”
국내 재능 있는 사진가 발굴하는 ‘SKOPF’
‘제15회 KT&G SKOPF’에 선정된 성의석 작가의 개인전 ‘음악은 어린이를 취할 권리가 있다(Music has the right to children)’ 현장을 찾았다.
‘SKOPF(Sangsangmadang Korean Photographer’s Fellowship, 이하 스코프)’는 KT&G 상상마당이 2008년부터 국내 사진가 발굴 및 지원을 위해 운영해 온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총 51명의 작가를 배출했으며, 스코프 출신 작가들은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과 일우사진상을 수상하는 등 사진계에서 활약을 이어 나가고 있다.
성의석 작가는 지난해 진행된 제15회 KT&G SKOPF에서 ‘올해의 최종 사진가’로 뽑혀 이번 개인전 혜택을 제공받았다. KT&G 상상마당 시각예술사업부 최다혜 큐레이터는 “2008년 시작된 스코프는 당시 비주류 문화였던 사진 분야를 키우고, 함께 성장해왔다”며 “실험적이면서도 신선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성의석 작가의 인상적인 작업을 이번에 소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꾸준히 사진 작업을 이어온 작가는 자신이 살아가는 도시 생태계에 관심을 갖고 이를 포착해왔다. 특히 빠른 도시 생태계 속 변화를 세심하게 발견한다. 실제로 어느 영화에서 본 듯한 건물의 고요한 풍경, 오래돼 보이는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녹물, 물때가 끼어 녹슨 타일, 말라비틀어진 사과 등 빠른 시간의 흐름 속 금방 사라질 풍경들은 작가의 화면에 포착, 현재의 전시장에 보관됐다.
현실이지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풍경도 있다. 예컨대 한 화면을 채운 푸른 빛깔은 밤하늘 또는 우주를 바라보듯 공상적인 분위기를 내뿜는데 실체는 청바지에 핀 곰팡이다. 작가가 과거 원룸에서 생활할 당시 습한 환경에서 아끼던 청바지에 핀 곰팡이를 사진으로 포착한 것이다.
최다혜 큐레이터는 “생성부터 소멸까지, 도시의 변화 속도는 유독 빠르다. 너무 빠르게 변화하다보니 과거의 잔상이 마치 유령처럼 현재와 공존하기도 하는데, 이는 현실이면서도 가상인 것 같은 독특한 풍경을 만든다”며 “작가는 이런 흔적들을 찾아 사람들에게 선보인다. 특히 빠르게 변하는 도시와 달리 자신은 한 발짝 앞으로 내딛기도 힘든 사람들이 느끼는 쓸쓸함도 화면에서 느껴진다”고 말했다.
필름 사진부터 재가공, AI 활용까지
그런데 작가는 단순히 현실을 그대로 포착한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특히 한 영역에 서 있는 게 아니라 경계에 머무르며 크게 세 가지 작업을 아울렀다. 첫 번째는 앞서 언급된 전통적 필름 사진, 두 번째는 재가공된 사진, 세 번째는 AI(인공지능)가 창작한 사진이다.
재가공된 사진은 우표를 활용했다. 최다혜 큐레이터는 “우표는 올림픽, 우주 비행선 등 과거 우리가 꿈꾸던 희망찬 미래의 청사진을 담은 독특한 매체다. 작가는 이 우표 이미지를 디지털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해 재조합했다”며 “이를 통해 사람들이 과거에 바랐던 미래의 이미지를 현재의 시선에서 바라보게 하는 독창적인 경험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해당 이미지들에선 이미 현실로 실현된 것들도 있고, 미처 실현되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것들도 있다. 그렇기에 현실인 듯 비현실인 듯 애매한 경계의 풍경은 관람객의 시선을 더 잡아끈다.
여기에 작가는 AI도 활용하며 경계 이야기를 더 깊게 파고 들어간다. 그림이 위주이던 예술 영역에서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과연 이를 예술로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치열했다. 현재는 AI가 이 논쟁의 중심에 있다. AI를 활용한 결과물을 예술로 볼 수 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작가는 전통 필름, 재가공한 사진들의 수많은 이미지들을 AI에 입력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명령어를 입력하지 않고, 순순히 AI 프로그램에만 합성을 맡겼다. AI가 만든 이미지들은 앞선 두 가지 스타일의 이미지들이 혼합됐기에 본 것 같으면서도 또 새로 보는 듯한 기이한 풍경을 전시장에 만들어냈다. 예컨대 필름 사진 속 평범했던 건물 풍경이 AI 이미지에서는 폭죽이 터지는 풍경으로 재창조됐고, 독특한 외관을 지닌 노래방은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우주선 입구처럼 비현실적으로 뒤바뀌었다.
최다혜 큐레이터는 “AI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생각과 노동력은 개입되지 않았다. 하지만 AI는 명령어를 따르는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며 “그렇다면 이것을 과연 창조의 영역으로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작가 또한 의문을 갖고,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 세 가지 작업들을 전시장 안에 뒤섞어 놨다. 전시장 4~5층에 가벽을 세워 똑같은 구조를 만들어 놨는데 이미지는 뒤섞여 있어 어느 풍경이 현실이고, 각각의 이미지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번 전시 관람의 묘미다.
“어디까지가 사진의 영역인가?”
작가의 이 모든 작업들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가다가 주장한 ‘혼톨로지(Hauntology)’라는 개념 아래 출발했다. 혼톨로지는 이미 지나버린 과거가 마치 유령처럼 존재하며 현재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거나, 이미 실현되지 못한 미래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도는 상태를 뜻한다. 이 개념은 예술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영향을 미쳐왔다.
작가가 다루는 사진이라는 매체 또한 과거엔 단순 아날로그 방식을 사용했고, 현실의 한 장면을 그대로 기록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현재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 합성, 변형 등을 가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해당 이미지가 진짜인지, 허구인지 모호함을 느끼게 하는 지점이 만들어졌다. 이 지점에서 새로우면서도 과거와도 연결되는 미학이 이번 전시의 핵심을 이뤘다.
이번 전시명 ‘음악은 어린이를 취할 권리가 있다’ 또한 이 개념을 담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전자음악 듀오 ‘보즈 오브 캐나다’의 1998년 음반을 차용한 것으로, 이들은 혼톨로지적 감성을 담은 음악을 만들어 왔다. 이번 전시장에서도 작가가 뮤지션과 협업해 각각의 특징적인 음색을 띤 소리들을 뒤섞어 오히려 정체성을 하나라고 단정짓기는 모호해진 음악을 틀어놓았다.
음악뿐 아니라 작품이 배열된 방식 또한 경계에 있다. 이미지들을 노출하는 라이트 박스엔 라벨이 붙어 있어 설치된 이미지들이 과연 작품인지, 상품인지 애매모호하게 보이도록 한다. 또 다른 한편엔 바깥이 투사되는 유리에 이미지를 부착해 바깥의 풍경과 작가가 포착한 비현실의 이미지가 한데 뒤섞이도록 했다.
또 이번 전시에선 이미지 캡션과 관련 설명이 최대한 배제돼 있다. 정보를 주입하지 않고, 스스로 보는 그대로 느끼고 상상하기를 바란 작가의 의도다. 최다혜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에 따로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최대한 작품 이미지에 집중해 각자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즐기면 된다”며 “스코프는 앞으로도 더 많은 재능 있는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KT&G 상상마당 홍대 갤러리에서 7월 6일까지 열린다.
한편 KT&G는 매년 상반기 스코프 공모를 진행한다. 지원 자격은 스코프의 ‘메니페스토’에 부합하고, 1회 이상의 그룹전을 진행한 경력이 있는 대한민국 국적의 사진가이며, 연령 제한은 따로 없다. 스코프 심사위원들의 합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메니페스토에는 ‘시각성에 대한 고민’, ‘차별화의 태도’, ‘탐험하는 사진’ 등 사진에 대한 고찰과 탐구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심사 과정을 거쳐 선정된 ‘올해의 사진가’ 3명에겐 활동 지원금, 작품 제작비와 그룹 전시회 기회 등 약 700만원 상당의 혜택을 지원한다. 포트폴리오 리뷰 과정을 거쳐 선정된 ‘올해의 최종 사진가’ 1명에겐 작품 제작, 출판 등 약 4000만원 상당의 추가 혜택을 제공한다.
KT&G 상상마당은 신진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대중에게 폭넓은 문화 경험을 제공하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2007년 ‘상상마당 홍대’를 시작으로 논산·춘천·대치·부산까지 총 5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상상마당의 연간 방문객은 약 300만명에 달하며, 매년 3000여개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