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호⁄ 2025.08.27 19:52:13
‘강령: 영혼의 기술’은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의 발전에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경험은 어떤 역할을 해 왔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애니 베전트와 C. W. 리드비터, 조지아나 하우튼, 힐마 아프 클린트, 데구치 오니사부로, 백남준, 이승택의 역사적, 혁명적인 실천부터 히와 케이, 아노차 수위차콘퐁, 키부 루호라호자와 크리스티안 니암페타의 커미션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을 잇는 영적 실험의 역사를 영화,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드로잉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통해 조명한다.
할리 에어스, 루카스 브시스키스와 함께 제 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예술감독팀을 이끌고 있는 안톤 비도클 예술감독은 기획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전시회의 기획은 이미 역사상 일어난 일들에서 출발합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던 무렵, 당시 사회 격변기로 인해 사람들이 겪었던 방향 감각 상실로 인해 일반 대중들이 영적인 실천에 대해서 급격하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많은 예술가들 또한 이러한 움직임에 영향을 받았고, 지금까지는 사실 그러한 것들이 미친 영향이 대체로 간과되어 왔지만 이것이 현대 미술의 탄생에도 밑거름이 되어 왔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 일어났던 영적인 혁명 이 남긴 영향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느껴지고 있고, 이번 전시는 그 시기에 남겨진 유산들을 동시대의 문화와 연결해 보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오늘날 혼란스러운 변화의 시기를 살아가면서 예술가들이 지금까지 잊혀져 있던 여러 전통들을 다시 발견하고 있다. 이를테면 헬레나 브라바츠키, 애니 베전트, 조지아나 하우튼, 힐마 아프 클린트와 같은 신비주의자였던 작가들은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추상미술의 역사에서 새로운 예언자적 존재로 다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이 실천해 왔던 작업은 단지 외부 세계를 재현하거나 비평적인 성격을 가진 예술이라기보다는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어떠한 현실과 연결되기 위한 예술적인 비전이다. 이번 전시는 이 해방적인 실천들을 동시대의 순간들과 연결 짓고자 한다.
서구적인 헤게모니가 의존해 왔던 소위 계몽적인 합리주의에 저항하는 이런 작품들은 기존의 틀을 벗어나거나 그것들을 뒤흔든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문화적인 실천들과 공명한다. 이를테면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반자본주의와 같은 것들이다. 이번 전시가 소개하는 예술가, 작가들은 이성만으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다중적인 세계와 공존하기를 제안한다.
이번 전시가 다루는 이른바 ‘세앙스 강령’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영매가 그곳에서 청중을 영적인 세계와 연결하는 이 강령의 확산이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당대의 영적인 혁명을 설명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이 있은 후 수십 년에 걸쳐 영화 상영 그리고 정신 분석 세션, 실험, 연극이나 퍼포먼스와 같은 의례들도 세앙스 강령이라는 동일한 용어로 일컬어지게 된다. 이런 점에 비추어 이번 비엔날레는 세앙스 강령이라는 것을 전시의 은유이자 모델로 삼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 세계에 넘어와 접속되는 매개적인 경험을 제안한다. 이번 전시는 영적인 만남, 지각의 확장, 마치 꿈과 같은 교감을 위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일반적인 뮤지엄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전시장 입구가 미로처럼 구성 되었고 2층,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역시 터널처럼 만들었다. 이렇게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일상적 영역에서 다른 세계, 영혼의 영역 혹은 신비주의적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먼저 전시장 초입에 들어서면 루돌프트 스타이너의 칠판 드로잉이 보인다. 그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인지학을 창시한 철학자로,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생애 많은 부분을 교육 활동에 할애했으며 6천 회 이상 강연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힐마 아프 클린트, 요셉 보이스와 같은 이번 전시의 예술가들에게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조지아나 하우튼은 1861년에 추상미술이라는 것이 장르가 되기 50~60년 전 추상적인 작품을 선보인작가이다. 그리고 그의 작업은 세앙스 강령 혹은 영혼과의 연결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엠마 쿤츠는 본인을 예술가로 여기지 않았고 치유가로 활동했다. 그의 작품은 미적 오브제가 아니라 치료의 수단이었다. 데구치 오니사부로의 도자기 작업들 역시 영적인 실천과 연관되어 있다.
애니 베전트와 C.W. 리드비터의 책 도판들은 색상 이론을 제시하는 책으로 칸딘드키나 몬드리안과 같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트랜스 섹션에서는 트랜스 상태라는 것이 움직임을 동반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다른 영역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지를 다룬다. 테이블 위의 비올렛 e a의 작품은 리지아 클라크라는 작가가 만든 비초 조각을 종이로 그리고 다른 소재로 재현한 것이다. 클라크 작가는 이 작업을 처음 만들었을 때 이것을 이용해 스스로를 치유하는 도구로서 만들었던 것인데, 비올렛 e a 작가가 이것을 다시 만들어 실제로 치유에 쓸 수 있도록 했다. 작가는 이 작엄들을 정신병원이나 치유소 같은 곳에 가지고 가서 사람들과 함께 이것을 만지는 힐링 워크숍 같은 것을 진행하기도 했다.
다음 챕터는 실천적 우주론이다. 작가들이 어떻게 우주론을 활용해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지 작품으로 다루는 모습을 소개한다. 인주 첸 작가의 작품은 외계인들이 지구에 와 있다는 상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는데 벽에 보이는 행성들의 그래프를 통해 세계관을 표현한다. 콜렉티브 로스 잉그라비도스의 영상 작업은 서구 중심적 영상 미학이 아니라 본인들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스스로의 우주관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윙 포 소 작가는 멕시코 토착 미학의 상징 즉, 물과 같은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이승택 작가의 ‘분신행위예술전’ 재연(1985/2025)은 한국은 물론 세계 미술사에서 주요한 행위적 실천으로, 예술을 물질적 지지체로부터 분리해 예술의 영적 가능성과 해방을 꿈꿨던 작품이다.
2층에서 보는 섹션은 치유 힐링에 관련된 섹션이다. 섹션의 제목이 ‘아픔을 치유하고 망자를 일으키며 환자를 씻기고 귀신을 쫓아내라’이다. 좌대 위에 있는 콜렉티브 주역과 예술품의 작품은 주역과 뉴에이지 사상에 기반해 사람들이 스스로 에너지의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만든 카드이다. 이들은 이를 치유 도구로 판매하다가 고소 당하기도 했다.
과달루페 마라비야 작가는 엘살바도르 출신으로 어린시절 내전을 피해 홀로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뉴욕에서 예술학교를 다니다가 어린 나이에 암 진단을 받고 서구식 치료와 전통식 치료를 동시에 받아 치유된 작이다. 작가는 스스로 본인의 암을 낫게 해준 것은 서양식 의료보다는 전통적인 치유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작품들은 치유의 도구이기도 한다.
기술, 예술을 의미하는 테크네 세션에는 하룬 미르자, 크레이 첸의 작품을 만난다. 대만작가 슈 챠웨이의 작업은 대만 한 섬의 주민들이 개구리 신을 믿고 중요한 결정을 신탁해 결정을 내리는 영상이 담겨 있다. 반대편 화면에는 동시에 사당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짓는 디지털화된 모습이 담겨 있다.
호주의 토작민 카라빙 필름 콜렉티브의 작업은 물을 다룬다는 것은 식민 역사를 다루는 동시에, 실제로 그들의 삶에서 물이라는 것이 중요한 부분, 상징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건너편의 두 영상 작업은 한국계 덴마크 작가인 제인 진 카이젠의 작품으로 제주도의 버려진 공간에서 지금까지 무시되었던 역사를 다루는 행위로서 촬영된 것이다. 샤먼의 의식을 치르는 모습이 작품에서 묘사되고 있다.
키브 루모라 카와 크리스티안 아카 작가의 작업을 이번 비엔날레에서 첫 번째로 제작 의뢰를 커미션한 작업이다. 조상들의 숨결이라는 것이 주의 깊게 살펴보면 결코 없어진 적 없이 주변에 있다라는 세네갈 시인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작품은 세네갈의 한 비엔날레에 전시될 예정이었지만 전시 개최가 연기되면서 서울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여덟 번째 전시장의 색상은 분홍색으로 ‘적들이 승리한 세상에 망자의 안식은 없다’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세앙스 강령 개념이 구현된 것으로 우리 선조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지난 몇 세기 동안의 트라우마를 다루고 그것을 통해 현재와 과거의 틈을 메꾸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어니스트 A.브라운 3세의 작품은 조끼와 함께 조끼가 만들어진 과정을 영상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주를 해야하는 상황에서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동료들과 공동의 의식을 치르기로 했다. 작가와 친구들은 치킨 파티를 열었다. 작가는 친구들에게 닭 요리를 해주고 요리를 먹은 친구들은 닭고기의 뼈를 다시 돌려줘야 했다. 그렇게 받은 뼈로 조끼를 만들었고, 이 조끼가 일종의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부적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블랙박스 안에 있는 작업은 아노차 수위차콘퐁이라는 태국 영화감독의 작품이다. 이 작업은 2010년 태국에서 일어난 비극적 정치적 사건에 관한 것이다. 당시 10명의 젊은이들이 왕권에 반대하는 시위 중 사망하게 된다. 작가는 큰 충격을 받고 수년에 걸쳐 목숨을 잃은 학생들을 생각하고 연구를 이어나갔다. 화면엔 그 사건에 대해 이 영화감독이 만들게 될 또 다른 장편영화의 리허설 모습이 담겨 있다. 세앙스 강령이라는 측면에서 흥미로운 작업니다. 우리가 어떻게 정의를 구현하고 어떻게 트라우마를 치유할 것인지 생각하는 동시에 작품 자체가 영화로 구현하게 될 또 다른 장면을 이곳에 불러오기 때문이다. 즉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어떻게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이를 통해 어떻게 현재를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지 제안한다.
마지막 작품은 ORTA라는 카자흐스탄 알마타를 기반으로 연극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다. 이들은 퍼포먼스나 영상작업을 하기도 하는데 소비에트 시기 수많은 핵실험이 벌어진 카차흐스탄을 연극적인 제의를 통해 보여준다. 제의를 통해 정신을 통해 핵 위기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을 제안한다. 이 작업은 청년예술청에서 퍼포먼스로 구현될 예정이다.
이번 비엔날레의 배경이 되는 서울은 풍부한 영적 전통, 급격한 근대화를 거치며 형성된 역사, 동시대의 전 지구적 문화 현상이 혼재하는 곳으로,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의 존재에 관한 질문을 나누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플랫폼이다.
이번 전시는 죽음과 상실, 영성과 의례, 기억과 치유, 구상과 추상 등 비엔날레의 주요 질문을 대입하고, 관련된 여러 현상을 관통하는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맥락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서사를 발견하게 한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