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고윤기 변호사의 만화 법률]17년 준비한 도로명 주소, 경제효과 있을지 지켜봐야

변호사 입장에서 ‘토지 사기꾼’, ‘부동산 분쟁’ 많아질 지 걱정

  •  

cnbnews 제373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2014.04.07 13:54:21

제가 작년에 미국 서부 여행을 했는데, 차를 빌려서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녔습니다. 내비게이션 단말기가 없었기 때문에 핸드폰에 내장된 내비게이션 프로그램과 지도를 가지고 길을 물어가며 목적지에 도달했습니다. 특히 밤에 길을 잘못 들어서 가로등도 없는 낯선 곳에서 매우 무서웠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미국의 주소 체계는 번지, 도로, 도시, 주, 우편번호의 다섯 개의 결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미국 백악관의 주소는 1600 Pennsylvania Ave., Washington D.C.입니다. 워싱턴 DC에 있는 펜실배니아 길의 1600번지에 백악관이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에는 도로의 명칭도 여러 가지를 사용하는데, 위에서 말한 avenue(ave.)는 남북으로 달리는 도로를 뜻하고, street(st.)는 동서로 달리는 도로를 뜻하며, boulevard(blvd.)는 도시 내부를 가로 질러가는 넓은 도로를 말합니다. 미국은 이 도로명 주소의 구성만 잘 알면 주소만 가지고도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부동산은 우리나라의 부동산 개념과 전혀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은 토지와 건물이 별도의 객체로 이뤄지지만, 미국법은 건물은 별도의 독립된 ‘부동산’이 아니고 단지 토지에 부착된 물건에 불과합니다. 부동산은 별도의 소유권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개념이 전혀 다른 한국과 미국의 부동산

즉 임차한 토지에 임차인이 건물을 지었다고 해서, 그 건물이 임차인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한인 교민들은 이러한 법률적 차이를 잘 몰라서 피해를 입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요즘 ‘도로명 주소’와 관련해 각 기관에서 많은 이메일이 오고 있습니다. 정부의 시책에 따라 기존의 지번 주소 대신에 도로명 주소가 전면 시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원에 내는 각종 소장과 서류에도 이제는 도로명 주소를 기재해야 합니다. 도로명 주소는 기존의 지번을 대신해서 도로명과 건물 번호만으로 주소를 알기 쉽게 표기하는 제도라고 합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국민의 편리성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건물과 땅의 부동산이 미국과 달리 별도의 등기로 관리되고 있다는 점도 도로명 주소가 불편한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사실 기존의 지번주소가 일본 강점기의 잔재라는 것은 맞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세종대로가 육조거리이고 통·반이라는 것이 사실상 도로명 주소입니다. 이를 일본 강점기 때 토지 수탈들의 목적으로 지번주소를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급격한 도시화·산업화가 되면서 지번이 수차례 분할·합병돼 배열이 불규칙해 진 것이 문제였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 지번만으로는 위치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부동산에 가면 큰 지도에 지번이 오밀 조밀하게 표시돼 있는 것을 보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과거에는 그만큼 지도 없이 지번만으로는 정확한 주소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도로명 주소가 도입되기로 한 것이 17년 전입니다. 전면시행까지 17년 동안 준비를 했는데, 이런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예측 못했다는 것은 GPS 기술이 이렇게 빨리 발전할지 몰랐다는 점도 큰 몫을 합니다.


일본 강점기 잔재…GPS 대중화로 불편함 없어

과거 군사 목적으로만 쓰이던 GPS 기술이 대중에 공개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GPS를 활용한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등장한 것도 사실 최근의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의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에는 이러한 GPS가 장착돼 있고,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에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내비게이션이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핸드폰만 가지면 대한민국 어디라도 정확한 위치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과거에 불편했던 지번 주소는 핸드폰 GPS가 대중화 된 시점에서 그 불편함은 거의 없어 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외에도 오랫동안 써 왔던 동네 이름이 사라지는 문제라든지, 택배나 배달하시는 분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도로명 주소가 너무 어려워서 현재는 도로명 주소 말미에 참고사항으로 동 이름과 건물명도 표기하게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변호사로서 이 도로명 주소를 바라보는 관점은 ‘토지 사기꾼이 많아지겠구나.’, ‘부동산 분쟁이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도로명 주소가 제도 초기인지라 과연 이것이 정부의 발표대로 경제적으로 큰 효과가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정리 = 이성호 기자)

관련태그
CNB  씨앤비  시앤비  CNB뉴스  씨앤비뉴스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