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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만화 법률]우리나라서 정당방위가 인정받기 힘든 이유는?

미국 짐머만 사건으로 본 우리 법의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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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92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2014.08.21 09:17:13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작년(2013년) 이 맘 때는 ‘짐머만 사건’이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지역 자율방법대원인 조지 짐머만은 플로리다 주 샌퍼드에서 편의점에 들렀다 귀가하던 트레이번 마틴을 범죄자로 의심해 뒤를 쫓았고 다툼 끝에 그를 총으로 쏴 숨지게 했습니다. 회색 후드 차림이던 마틴은 한 손엔 편의점에서 산 사탕과 음료를, 다른 한 손으론 휴대전화를 들고 여자 친구와 통화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망 당시 17세였던 마틴은 총기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약물이나 음주를 한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근처에 있던 짐머만은 마틴을 보고 ‘마약과 관련된 듯 한 수상한 흑인’이라고 생각해 뒤를 쫓았다고, 다툼 끝에 짐머만은 마틴에게 총을 쏴 사망하게 했습니다. 짐머만은 법원에서 마틴이 먼저 자신의 얼굴을 때리고 자신을 바닥에 눕힌 뒤 머리를 계속 가격하고, 콘크리트 조각을 손에 들고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즉, 생명에 위협을 느껴 ‘정당방위’ 차원에서 총을 쐈다고 주장했습니다. 플로리다 주 법원 배심원단은 이러한 짐머만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 평결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정당방위를 인정할 사안이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배심원단 6명 중 5명이 백인인 것으로 알려져, 미국 전역을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이게 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과 언론이 인종차별 문제, 총기규제, 정당방위의 법적 범위, 미국의 사법제도 등에 관한 논쟁으로 번졌습니다.


정당방위 요건 복잡…무죄 판결 어려워

오늘은 이 정당방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정당방위에 대해 쉽게 접해볼 수 있는 곳은 외국 드라마나 영화입니다. 외국 영화에서는 상대방을 죽이고 나서 “정당방위”라고 언급하거나, 무죄로 풀려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물론 우리나라의 실정과는 다릅니다.

우리 형법 제21조 제1항에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정당방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요건이 복잡합니다.

한 가지 고백하자면, 저는 정당방위와 관련된 상담을 받는 경우나 형사사건에서 정당방위를 주장해 달라는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걸로 무죄 안 나옵니다.”라고 단호히 말한 후, “다만, 이런 정황이 형량에는 반영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의뢰인이 수긍하지 못하면 그 사건은 맡지 않습니다.

제가 이런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의 경찰 수사 관행, 재판 관행과 대법원의 태도 때문입니다. 경찰 수사는 기본적으로 쌍방 입건입니다. 누가 먼저 때렸건, 한 편은 일방적으로 맞고 있기 전에는 (그것도 목격자나 CCTV 등이 있어야) 서로 고소를 하면 쌍방 폭행 또는 상해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일방 폭행이 쌍방 폭행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심지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재판 단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당방위를 법정에서 주장하면 (특히 형량이 가벼운 벌금 사건 같은 경우에는) 재판장이 매우 난감해 하거나, 주장을 철회하라는 뉘앙스의 언급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경우에 정당방위 주장을 철회하고, 형량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과 의뢰인의 무죄를 끝까지 다투는 것 중 무엇이 더 의뢰인에게 이익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경찰과 법원의 이러한 태도는 우리 대법원이 정당방위 인정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경찰과 법원도 소극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최근에 이러한 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경찰청에서 있었습니다. 경찰청에서 올해 초에 경찰청에서 인정되기 위한 8가지 조건을 지침으로 제시했습니다.

이 지침은 대법원 판례에 나와 있던 내용들을 정리해 요건으로 만든 것인데, ‘다툼의 시시비비를 가려 가급적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라고 언론의 보도 자료는 말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경찰청에서 나온 8가지 지침입니다.

정당방위 요건 판례

1. 침해행위에 대해 방어하기 위한 행위일 것
2. 침해행위를 도발하지 않았을 것
3. 먼저 폭력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
4. 폭력행위의 정도가 침해행위의 수준보다 중하지 않을 것
5.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
6. 침해행위가 저지, 종료된 후에는 폭력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
7. 상대방의 피해정도가 본인보다 중하지 않을 것
8. 치료에 3주 이상을 요하는 상해를 입히지 않았을 것 

솔직히 이러한 경찰청 지침에 실제로 수사를 하는 일선 경찰서에서 얼마나 따라 줄지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사실 지침의 7항과 8항은 수긍할 수 없습니다. 매우 소극적인 행위가 아니면 정당방위의 인정을 안 해주겠다는 취지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경찰청의 개선 노력을 계기로 좀 더 억울한 피해자가 없어졌으면 합니다.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kohyg75@hanmail.net  (정리 = 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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