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영⁄ 2015.01.24 08:09:45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인터넷 검색창에 치니 연관 검색어로 ‘바다’와 ‘실망’이 떴다. 이는 현재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처한 상황을 보여준다. 바다의 열연은 극찬을 받고 있지만, 반대로 작품에 관해선 실망을 했다는 반응들이 많다.
실망하는 부분이 스토리 라인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본래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 소설가 마거릿 미첼의 소설과 배우 비비안 리, 클라크 게이블이 주연을 맡은 동명 고전영화(1939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미국 남북전쟁 속에서 계속되는 고난과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고 일어서는 스칼렛 오하라의 파란만장한 삶과 사랑을 그린다.
이리 보면 단순해보이지만 장장 4시간에 이르는 영화의 이야기를 2시간짜리 뮤지컬에 집어넣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압축과 생략이 될 수밖에 없어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갑자기 전체 이야기 중 몇 군데가 퉁 날아간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스토리 라인을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스칼렛의 이야기가 이어지던 중 갑자기 왜 흑인 노예들이 나와서 춤을 추는지, 2막에서 스칼렛의 두 번째 남편은 어떻게 죽었고, 스칼렛과 애슐리가 왜 껴안고 있었는지 등 도통 이해하기 힘든 구성이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선 프랑스 라이선스 작품을 한국 버전으로 각색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 뮤지컬은 노래를 부르는 가수와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역할을 더 확실히 구분 짓는 편이다. 즉 각 분야를 모두 예술로 보고 존중하는 것인데, 이 조화가 잘 이뤄지지 못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한 예로 극 중 스칼렛의 하녀가 레트 버틀러를 부르러 가는 장면이 있다. 하녀는 단순히 달려가는 게 아니라 전위예술과도 같은 춤을 추는데 이 과정 또한 그리 짧지 않다. 무용수의 특징을 살리고자 한 것이겠지만 스토리에 집중하는 관객의 경우, 도대체 저 장면이 왜 필요한 건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또 지적받고 있는 부분이 쇼걸들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술파는 여자’라고 등장하는 벨과 앙상블은 극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애슐리와 멜라니보다도 많이 등장하는 느낌이다. 갑자기 지나치게 화려한 퍼포먼스를 하는 데 시간도 많이 잡아먹는다.
왜 이 장면이 부각되는지 궁금해서 프랑스 원작 뮤지컬을 찾아봤더니 원작에선 더 화려하고 큰 스케일로 무대에 올랐다. 시각적 요소 또한 중요한 뮤지컬의 특성을 살리고자 한 것이겠지만, 주로 스토리에 집중하는 한국 관객들을 위해서 이 장면의 비중을 줄이고 차라리 스토리의 개연성을 높여주는 장면을 넣는 각색 과정이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 칭찬받고 있는 부분은 의상과 음악, 바다의 열연이다. 스칼렛이 처음 등장할 때 입은 드레스는 영화 속 의상과 똑 닮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옷들도 원작 영화와의 싱크로율이 높다. 이 부분은 프랑스 원작 뮤지컬보다 높게 살 수 있을 듯하다.
뮤지컬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는 음악도 독특해 귀를 사로잡는다. 극의 초반에 등장하는 스칼렛의 ‘그런 여자 아니야’의 멜로디도 좋고, 멜라니가 자신의 아이와 사랑을 지킬 수 있게 해 달라며 기도하는 ‘죽어도’도 매력 있다. 이밖에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음악이 흥미를 돋군다.
스칼렛 역의 바다도 농익은 연기와 가창력을 보여준다. 1막 마지막에서 ‘위키드’의 초록 마녀처럼 부상하는 오글오글한 장면도, 원작과 달리 강인한 여성이 아니라 여기저기 남자에게 빌붙는 것 같이 변해 아쉬운 스칼렛의 캐릭터도 열심히 연기해 관객들의 박수를 받는다. 서현과 주진모의 연기와 가창력엔 쓴 소리도 이어지고 있지만, 이들을 포함한 배우들의 열연엔 정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 가운데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제작사 쇼미디어그룹은 극에 수정을 거칠 예정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유희성 연출이 앞서 1월 13일 열린 미디어콜에서 계속 관객들의 의견을 수렴해 수정을 거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스토리가 단절되는 부분을 보완할 것으로 알려졌다. 부디 배우들의 열연이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길 기대한다.
한편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2월 15일까지 공연된다. 배우 김법래, 주진모, 임태경, 바다, 서현, 마이클리, 정상윤, 김보경, 유리아, 정영주, 박송권, 한동근 등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