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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독립출판 ② - 더북소사이어티] 담론을 이끄는 책방, 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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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0호 윤하나⁄ 2016.04.22 16:23:46

▲더북소사이어티의 내부. (사진 = EH)

서울 경복궁의 양 옆 마을엔 각종 현대미술 전시공간이 곳곳에 숨어있어 예술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경복궁 왼편의 자하문로10(창성동 골목)에 흥미로운 공간들이 숨어있다. 신선한 전시로 유리창 너머 행인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갤러리 팩토리, 디자인적 감성과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 mk2, 최근 주목받는 문학 총서 제안들을 출간한 출판사 워크룸프레스가 모두 이 길에 있다. 현재 일민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그래픽 디자인전의 기획자와 참여 작가로, 그리고 전시 전체 맥락을 형성하는 시간을 이 거리가 함께 했다. 여기에 또 하나, 붉은 벽돌 건물 2층에 자리한 독립출판 서점 더북소사이어티도 빼놓을 수 없다.

 

예술인과 디자이너를 위한 서점, 더북소사이어티 

자하문로10길에서 검은 입간판에 흰색 삼각형 로고를 발견하거든, 그 건물 2층에서 더북소사이어티를 만날 수 있다. 이 흑백의 삼각형은 더북소사이어티의 오래된 로고다. 2층에 오르면 서점 입구 밖에서부터 시선을 끄는 다양한 유인물과 무료배포 잡지 등이 포착된다. 서점의 내부는 그리 크게도 작게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공간이 쾌적하게 설계됐다. 많은 책들이 나름의 분류를 통해 섹션이 구분돼있어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쉽게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잠시 서가를 둘러보더라도 이곳이 타 독립서점과 비교해 문화예술, 특히 그래픽 디자인과 현대미술 분야에 더욱 특화됐다는 점을 눈치 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디자인과 미술 계열 종사자 및 전공 학생들이 특히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일반 대형 서점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예술전문 서적들이 이곳에 모여 있고, 더불어 실험적인 개인출판물들도 그 곁을 지킨다. 이곳을 들러 천천히 이 방대한 흥미로운 서가를 접하게 되면, 쉽게 이곳을 나서기가 힘들어진다.


 

▲더북소사이어티의 임경용 대표. (사진 = 윤하나 기자)


구정연, 임경용 씨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더북소사이어티는 출판사를 겸한 서점이다. 두 대표는 진(zine)과 아티스트 북을 출판 및 유통하고, 전시, 행사, 워크숍 등도 기획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들의 활동이 곧 더북소사이어티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4월의 어느 날 이곳을 방문해 임경용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더북소사이어티의 전신, 미디어버스

두 대표는 2004년 아르코미술관의 큐레토리얼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이 시기는 웹상에서 발간되는 잡지인 웹진(webzine)이 유행하던 때다. 이들은 웹진에 물성이 추가된 진(zine, 특정 팬 층을 위한 잡지)을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고, 즉흥실험 음악씬이 주축이던 진 출판사 매뉴얼등과 활동하며 진을 제작했다. 당시엔 아직까지 진 같은 독립출판물을 팔 수 있는 일반 서점은 찾기 힘들었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을 통해, 그리고 공연 및 행사 현장에서 진의 소비자를 만났는데, 미디어버스는 이렇게 진을 만들고 판매하는 창구로서 처음 시작됐다.


이후 함께 활동하는 동료의 이야기를 듣거나, 작은 페어를 하고, 관련 인사를 해외에서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등 여러 행사를 더북소사이어티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다. 당시 행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책 판매뿐만 아니라 이런 이벤트가 열리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낀 이들은 20103월 상수동에 처음 더북소사이어티를 열었다. 이후 합정동을 거쳐 현재 통의동에 자리잡은지 3년이 됐다.   


▲가방, 포스터, 작가들의 작은 책이 놓인 코너. (사진 = 윤하나 기자)


활발한 전시 참여와 기획 

최근 더북소사이어티가 기획 또는 참여한 전시를 통해 이들은 처음 접한 사람들도 많아졌다. 본 기자 또한 평소 자주 들르던 이 서점을 '그래픽 디자인'전시 취재를 계기로 인터뷰를 결심하게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임 대표는 어디까지나 외부 의뢰로 참여하는 형식일 뿐, 전시가 더북소사이어티의 주요 활동은 아니라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만큼 앞으로도 전시와 관련된 일정이 많아보였다. 임대표에게 앞으로의 전시 일정에 대해 물었다. 


우선 올 5월 말로 예정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디지털정보실 3층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로마 퍼블리케이션스의 책을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출판사인 로마 퍼블리케이션스의 책은 더북소사이어티가 처음 서점을 연 당시부터 꾸준히 취급해왔다더북소사이어티는 초기부터 아티스트 북과 아트북 등 '예술가의 책'을 만드는 출판사를 주목해왔다. 특히 로마 퍼블리케이션스는 실험적인 부분도 있으면서 책 본연의 정체성도 강하다고 설명했다. 전시를 위해 현지의 대표 및 기획자와 디자이너들이 전시 일정에 맞춰 방문하고 토크도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최근 참여한 그래픽 디자인전에 선보인 아카이브 작업 불완전한 리스트도 베이징에서 전시가 예정됐다고 한다.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 작업에 관심이 많은 뤼징런 칭화대 교수 겸 디자이너가 불완전한 리스트를 초청한 것. 그가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불완전한 리스트의 아카이브를 전시한다.


   

▲서점의 내부. (사진 = 더북소사이어티)


출판

이런 활발한 전시 참여 및 기획 활동에도 불구하고, 더북소사이어티는 작년 말부터 전시보다 출판에 더 주력하고 있다. 초기 미디어버스의 활동부터 시작해 이들의 중심축은 바로 출판이다. 서점만으로 계속 활동을 지속하기 쉽지 않음을 절감하며 출판에 더 매진하게 됐다고 한다. 현재 한국현대미술총서 책 사회 총서 오큘로(okulo)와 오큘로 총서 총 3분류의 출판기획물이 준비 중이다.

  

1. '한국현대미술총서'(가제)는 한국의 현대미술계 2~30대 젊은 작가 및 필자에 관한 총서다. 시리즈의 첫 책인 메타유니버스는 지난해 말 발간된 바 있다. 이 책의 부제 ‘2000년대 한국미술의 세대, 지역, 공간, 매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한국미술의 배경이 된 여러 예술사회적 조건들을 다차원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동시대 한국미술은 어떤 조건을 통해 형성됐는지 작가 및 필자들이 공통적인 감각으로 경험해 온 사회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단서를 찾는다 


2. '책 사회' 총서는 서점을 운영하는 출판사로서 미디어버스의 책에 대한 관심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낸다. 책 사회 총서는 모두 책에 대한 책으로 현재 3권의 책을 준비 중이다. 각각 책 디자이너에 관한 책과 디지털 시대의 책에 관한 책 포스트-디지털 프린트’, 그리고 프랑스 작가들이 쓴 애서광의 이야기다. 특히 포스트 디지털 프린트는 이북(eBook)과 인터넷 읽을거리에 대항하는 가치로서의 종이책에 관한 책이다. ‘책은 죽었다라는 대제 위에서 책이 어떻게 계속 살아남는지에 관해 다루면서, 책이란 미디어가 기술 발전에 어떻게 반응해왔는가를 짚어나간다. 현재의 독립출판 문화는 물론 앞으로의 출판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은 6월 경에 발간될 예정이다.  


3. 오큘로는 미디어버스에서 발간하는 영상비평 전문 계간지로 지난 3월 창간됐다. 잡지 뿐 아니라 오큘로를 이해하기 쉽도록 만든 작은 참조 도서(50~100쪽 분량의 한 편의 글)를 함게 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더북소사이어티가 그동안 주목해 온 책들로 가득하다. (사진 = 더북소사이어티)


서점 

방대한 서적이 눈에 띄는 더북소사이어티가 책을 선정하는 기준이 궁금했다. 특히 다른 서점에서 보기 힘든 해외 서적은 어떻게 선택되고 입고되는지 물었다. 임 대표는 해외 책의 경우, 연쇄적인 경로를 통해 접하며, 주로 기존의 관심 출판사의 새 책이 나올 경우 입고한다고 답했다. 더북소사이어티가 주목하는 20여 곳의 해외 출판사의 책들은 계간지 '그래픽'의 '퍼블리셔스' 이슈에서 언급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서점의 매니저 정아람 씨가 서점 내의 크고 작은 일들을 담당하고 있다.


출판, 너머 

앞서 말했듯이, 더북소사이어티는 소규모 출판사 미디어버스가 운영하는 서점이자 프로젝트 스페이스다때때로 리딩룸(책을 읽고 토론하는 자리)이나 워크숍과 같은 스터디 프로그램, 아티스트 및 디자이너 토크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주로 디자이너, 출판가, 예술가들의 토크가 이뤄졌다. 최근에는 퍼블리싱 클래스 워크숍을 진행 중인데, 영화평론가 유운성 씨, 사진평론가 김현호 씨 등 총 10 여 분 정도가 참가하고 있다. 이러한 행사는 한달에 3~4차례 정도 열리며, 더북소사이어티 홈페이지 및 SNS를 통해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오큘러 잡지 창간 기념하는 상영회도 성황리에 열렸다.


▲디자이너 토크: 요하네스 브레이어. (사진 = 더북소사이어티)


공간이 아닌 주체가 된 서점

현재 더북소사이어티는 서점 내의 한 코너에 새로운 문학의 경향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젊은 문학계 작가들이 독립출판 형식으로 자신들의 책을 내는 움직임을 작은 도서 코너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당장 등단이 어려운 젊은 작가나 학생, 또는 등단했지만 더욱 다양한 활동을 하고자하는 작가들의 출판물이 진열돼있다. 문학계에는 현재 이런 개인의 독립 출판물 이외에도 독립잡지 더 멀리, 문학과 죄송사의 시선집, 문학집단 후장사실주의의 책, 번역 총서 '제안들' 등 보다 대중적인 크고 작은 시도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그래픽 디자인계가 주도한 독립출판 움직임이 플랫폼을 만들어냈고, 그 플랫폼 위에 다른 영역의 작가들이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임 대표는 설명했다. 이 다양한 영역은 건축, 음악, 문학, 영화부터 인문학까지 경계가 점차 확장되고 있다.


독립출판이 이끈 여러 분야의 다양한 움직임을 더북소사이어티에서 만날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서점을 구석구석 둘러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갈취당할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서점,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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