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호 김금영⁄ 2020.08.10 09:17:15
반려동물 인구 1500만 명 시대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반려동물 양육 가구는 591만 가구(26.4%)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고, 계속 증가 추세다. 업계에 따르면 2015년 1조 8000억 원 수준이었던 국내 반려동물 시장도 올해 6조원 규모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더 이상 동물은 ‘사육’하는 게 아닌 ‘공존’해야 할 생명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동물 복지와 관련된 캠페인들이 전개되고 있다. 또 동물과의 ‘건강한 공존’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들을 주요 타깃으로 한 반려동물 시장도 다양한 형태로 마케팅을 전개하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이 움직임에 주목해 본다.
[관련 기사]
[동물&기업 ①] “반려견 쇼핑 말고 입양” 외치는 유통업계
[동물&기업 ②] 코로나에 반려동물 더욱 사랑…쑥쑥 크는 펫케어 시장
[동물&기업 ③] 작가이자 멍냥집사 홍끼, 제주에서 롯데갤러리 온 사연
[동물&기업 ④] 풍성해진 ‘펫 금융’ … 적금부터 스타트업 지원까지
‘고기’ 대신 ‘대체육 시장’ 뜬다
최근 유재석(유두래곤), 비(비룡)와 혼성그룹 싹쓰리를 결성해 가요계를 휩쓴 이효리(린다G). ‘대체불가 카리스마’, ‘가요계의 여왕’, ‘예능 치트키’ 등 그를 대변하는 수식어가 많은 가운데 ‘채식주의자’ 또한 자리한다. 과거 한우 홍보대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했던 그이지만, 유기견 보호 활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동물 복지를 위해 2011년 채식을 선언하고 상업 광고를 찍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이런 이효리의 모습은 방송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JTBC ‘효리네 민박’ 출연 당시 여러 유기견들과 가족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공개됐고, 지난해 핑클 멤버들과 캠핑을 떠난 JTBC ‘캠핑클럽’에서는 여전히 채식을 고수하고 있는 이효리가 보였다. 이효리뿐만이 아니다. 동물 복지 및 보호 취지의 윤리적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 더 나아가 채소, 과일, 해초 등 식물성 음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완전한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 인구가 점점 늘고 있다.
한국채식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채식 인구는 1억 8000만 명, 이 중 비건 인구는 5400만 명으로 추산된다. 국내에서도 비건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08명 15만 명이었던 국내 채식 인구는 2018년 150만 명으로 급증했고, 이중 비건 인구는 5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점점 늘어나는 비건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한 다양한 제품들이 업계에 출시되고 있다.
롯데그룹은 식물성 제품 개발, 그 중에서도 특히 대체육 시장 공략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4월 김천공장에서 밀 단백질을 기반으로 만든 ‘제로미트 너겟’과 ‘제로미트 까스’를 생산하면서 ‘제로미트’ 브랜드를 처음으로 선보인 롯데푸드는, 최근 신제품 ‘제로미트 베지 함박스테이크’ 2종을 출시하며 식물성 대체육 라인업 확대에 나섰다. 대체육 브랜드 제로미트는 식물 유래 단백질과 원료로 만들어 자연에서 온 건강함을 전달하는 ‘베지테리언 푸드’가 주요 콘셉트다.
식물성 대체육으로 선보인 너겟과 까스 제품은 통밀에서 압출한 식물성 단백질로 고기의 근 섬유를 재현하고 닭고기의 식감을 구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여기에 이어 올해 출시된 신제품 ‘제로미트 베지 함박 오리지널’과 ‘제로미트 베지 함박 매쉬드 포테이토’는 대두 추출 단백질을 사용했다. 롯데푸드는 신제품 출시와 더불어 기존 출시했던 너겟과 까스 제품도 ‘제로미트 베지 너겟’과 ‘제로미트 베지 까스’로 리뉴얼했다. 제품의 디자인도 식물성을 상징하는 초록색을 테마색으로 적용하며 비건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했다.
롯데푸드 측은 “기존 제로미트 너겟·까스와 다른 소고기, 돼지고기와 같은 식감을 구현하기 위해 약 1년의 연구 개발을 거쳐 신제품 제로미트 베지 함박스테이크 2종을 완성했다”며 “롯데마트에서 판매를 시작했으며, 이마트 등의 오프라인 매장으로 판매를 확대 중이다. 특히 비건 푸드 수요가 높은 온라인몰에 집중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2월엔 롯데리아에 고기 없는 햄버거가 등장하기도 했다. 식물성 패티, 빵, 소스로 만든 미라클 버거를 선보인 것. 미라클 버거라는 이름 자체에도 ‘고기 없이 고기 맛이 나는 놀라운 버거(Not Beef, But veef)’라는 뜻을 담았다. 고기 대신 콩과 밀 단백질을 조합시켜 고기의 식감을 재현했고, 소스는 달걀 대신 대두를 사용했으며, 빵도 우유 성분이 아닌 식물성 재료로 만들었다. 롯데리아 측은 “국내 외식업계에 윤리적 소비에 관심을 두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는 시장 트렌드를 반영했다”며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다양한 식물성 대체 햄버거를 즐길 수 있도록 지속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원F&B도 대체육 시장에 뛰어들었다. 동원F&B는 식물성 고기를 제조하는 미국의 비욘트미트와 2018년 12월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지난해부터 식물성 고기 패티 ‘비욘드버거’를 선보이며 국내 비건 식품 시장에 진출했다. 비욘드미트는 콩과 버섯, 호박 등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만든 식물성 대체육 제품이다.
올해 4월엔 신제품 2종 ‘비욘드피브’와 ‘비욘드소시지’를 추가로 출시하며 비욘드미트 브랜드 라인업을 확대했다. 또 전국 이마트 21개점에서 운영하는 ‘채식주의존’에 8월 6일 입점 소식을 알렸다. 이마트가 운영을 시작한 채식주의존은 비욘드미트를 비롯해 식물성 원료만 사용한 냉동만두, 냉동밥, 너겟,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비건 식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전용 매대다.
동원F&B 측은 “8월 비욘드버거를 시작으로 9월 비욘드비프와 비욘드소시지까지 채식주의존에 입점에 더 많은 소비자가 제품을 만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며 “단순 구매 차원에서 더 나아가 ‘바른 소비’에 집중하는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는 비건을 하나의 음식 성향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식물성 대체육 시장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가치소비를 원하는 다양한 소비자에게 필요한 제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스크림·라면에도 부는 비건 트렌드…“비건 가치 소비 관심 높아”
비건 트렌드는 대체육 뿐 아니라 아이스크림, 라면 등 기호식품에도 영향력을 뻗쳤다. 롯데제과는 5월 나뚜루 비건 아이스크림을 출시해 눈길을 끌었다. 순식물성 원료를 사용해 한국비건인증원의 동물성 DNA 검사를 통과하며 비건 인증을 획득한 제품이다. 우유나 달걀 대신 식물성 원료인 코코넛밀크와 캐슈넛 페이스트, 천연 구아검 등을 사용했으며 ‘코코넛 파인애플’과 ‘캐슈바닐라’ 총 2종으로 구성됐다.
롯데제과 측은 “당초 국내 비건 소비자에게 아이스크림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선도적 브랜드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비건 아이스크림을 선보였다. 일반적인 수입 비건 아이스크림은 일반 아이스크림과 비교해 맛에 있어서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있는 상황을 감안, ‘맛있는 비건 아이스크림’이라는 모토 아래 1년여의 연구 기간을 두고 제품을 개발했다”며 “이 과정은 관계자들에게 국내 비건 아이스크림 시장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향후에도 다양한 비건 아이스크림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뚜기는 지난해 11월 비건족을 겨냥한 채식 라면 ‘채황’을 내놓았다. 채황 라면은 영국 비건 협회인 ‘비건 소사이어티’에서 인증을 받아 비건 제품으로 등록됐다. 오뚜기 측은 “버섯, 무, 양파, 마늘, 양배추, 청경채, 당근, 파, 고추, 생강 등 10가지 채소를 사용했고, 면은 감자전분을 사용했으며, 야채추출물을 넣었다.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아 채식주의자도 취식이 가능한 채소라면”이라고 소개했다.
오뚜기 함영준 회장의 장녀이자 뮤지컬 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함연지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오뚜기 딸 함연지가 추천하는 오뚜기 제품 1위’ 영상을 업데이트하며 비건 라면 개발 비하인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함연지는 “채소 라면을 만들게 된 계기를 아버지에게 물어봤다”며 “동남아시아는 불교 국가고, 그만큼 채식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동남아시아 라면 시장의 1/3이 채소 라면이라고 한다. 거기서 착안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함연지는 채소 라면에 누룽지를 넣어 끓여 먹는 자신의 레시피를 공유하기도 했다.
식품 업계를 넘어서 화장품 업계에도 비건 트렌드가 번졌다. 아모레퍼시픽은 6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이너프프로젝트를 정식 론칭했다. 이너프프로젝트는 남들 기준에 맞추지 않고 자신에게 충분하면 만족하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제안하는 신규 실용주의 뷰티 브랜드다. 특히 브랜드 론칭과 함께 선보인 7가지 신제품 모두 비건 프렌들리 제품으로 구성돼 눈길을 끌었다.
이어 7월엔 LF의 여성 화장품 브랜드 ‘아떼’가 비건 인증을 받은 신제품 2종 ‘클린 볼륨 비건 마스카라’와 ‘더블 엣지 비건 브로우’를 출시하며 비건 시장 공략에 나섰다. 두 제품 모두 동물성 원료를 첨가하지 않고 동물 실험을 진행하지 않은 것이 특징으로, 비건 화장품 검증 기관인 프랑스의 이브사에서 비건 인증을 획득했다.
비건 트렌드는 보다 여러 분야에서 형태를 다양화하며 범위를 넓혀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컨설팅 업체 그랜드뷰리서치는 전 세계 비건 시장 규모가 2018년 이후 매년 평균 9.6%씩 성장해 2025년에는 240억 600만 달러(약 29조 717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채식을 떠올렸을 땐 ‘고기 없이 풀만 먹는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비건을 전문으로 하는 제품들이 출시되면서 이런 인식들이 깨지고 있다”며 “고기 없이 고기 맛을 내는 콘셉트의 대체육 시장부터 식물성 원료를 사용한 식품과 화장품까지, 점차 비건 시장은 다양해지며 규모도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까지 비건 시장 진입이 긍정적인 성과를 낸 영향으로 보인다. 롯데푸드가 선보인 식물성 대체육 제로미트 너겟과 까스는 첫 출시 후 지금까지 총 6만 여개가 판매되는 성과를 이뤘다. 롯데제과의 나뚜루 비건 아이스크림은 출시 두 달 만에 연간 목표였던 6만 개 판매를 넘어서는 등 기대치를 웃도는 판매 추세를 보였다. 동원F&B가 선보이고 있는 햄버거 패티 형태의 비욘드버거는 2016년 출시돼 3년 만에 전 세계 판매량 5000만 개를 돌파했고, 국내에서도 온라인몰, 백화점, 할인마트 등을 통해 현재까지 약 10만 개가 판매됐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온라인 푸드마켓 헬로네이처는 비건 소비자들의 수요를 확인하고, 지난해 채식주의자를 위한 전문 코너인 ‘비건존’을 오픈하기도 했다. 신선식품과 간편식, 베이커리, 스낵·아이스크림, 시리얼, 조미·양념·오일, 음료, 대체식품, 생활용품 등 9가지 카테고리에서 약 200개의 비건 상품을 판매한다.
여기에 건강을 비롯해 동물 복지 취지를 지닌 비건 제품 개발을 통해 기업은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쌓는 효과도 얻고 있다. 비건 제품을 애용한다는 20대 직장인 이현경 씨는 “처음엔 좋아하는 연예인인 이효리가 채식을 선언하는 걸 보고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 점차 동물 복지와 보호에 관심을 적극적으로 갖게 됐다”며 “큰 규모의 기부를 할 여력은 안 되지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에 비건 제품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비건 제품을 주로 선보이는 기업들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비건 시장의 성장은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번진 윤리적 소비 트렌드의 영향 또한 크다. 건강한 삶 추구뿐 아니라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소비에도 표현하려는 움직임이 비건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며 “육식을 포기하지 못하는 소비자의 경우 대신 동물 복지 인증을 받은 상품을 더 비싼 가격에 구매하는 등 윤리적 소비에 과거보다 점차 적극적인 움직임이 보인다”고 짚었다. 실제로 이마트에 따르면 올해 들어 동물 복지 유정란, 동물 복지 닭 등 동물 복지 상품 매출은 작년 동기대비 45.9% 신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어 “아직 해외와 비교해 국내 비건 쇼핑 인프라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앞으로 발전 전망이 높은 분야”라며 “미래 사회에서 동물 복지는 꾸준히 이야기될 주제이자 가치 중 하나다. 이에 맞춰 비건 트렌드가 더욱 번지고 관련 시장이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