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단지 읽지 않는 행위, 잘라내는 행위 그럼으로써 맥락을 제거하고 사진만 남기는 행위로 권력의 신화를 넘어설 수 있을까. 성능경은 대표 퍼포먼스 ‘신문 읽기’(1976)를 시작으로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와 연결한 ‘신문 읽기 12·3’(2025)를 통해 다시 이 질문을 던진다. ‘사진들을 어디에 놓을지 결정했을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영혼의 기술’전에서 만날 수 있는 안리 살라의 ‘생각의 과잉(Overthinking)’ 비디오 작품은 기록이 지닌 불완전성과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사진’을 둘러싼 이미지의 미스터리함에 대해 온전히 사유하게 만든다.
성능경, ‘쌩~ 휙!’
백아트에서는 8월 27일부터 10월 18일까지 개념미술가 성능경의 개인전 ‘쌩~ 휙!’을 통해 이 담론에 대해 다시 논의해볼 것을 권한다. 이번 전시에는 1980년대 초창기 작업부터 2025년 신작까지 사진, 드로잉, 퍼포먼스 등 약 8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명은 작가가 직접 깎은 싸리나무 회초리를 휘두를 때 나는 의성어이자 신작 ‘싸리 회초리질’ 퍼포먼스명(나이트가운, 평상복, 흔들림 각 12장)이다.
싸리 회초리질 퍼포먼스를 보면 조선시대 김홍도의 풍속화 그림 ‘서당’ 속에서 회초리를 휘두르는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다. 작가는 이 장면을 불러와 2025년 비상계엄 사태와 함께 새로운 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서울 한폭판 장소에 여기저기 싸리나무 회초리를 놓아두었다(물론 백아트 갤러리 안에 있지만 이 장소는 한국을 넘어 세계로 확장된다.) 작가는 “신문 읽기 시리즈를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는 12.3 계엄사태에 예술가로서 침묵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아버지 때부터 읽어온 동아일보와 여타 신문을 읽는 대신 오려내는 행위 등을 통해 사건의 맥락을 제거하고 파괴함으로써, 신문이 구성하는 지식-권력의 구조에 저항해왔다. 작가의 대표적인 퍼포먼스는 사진이 지시하는 현실이 권력에 의해 조작될 수 있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백아트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2층에 설치된 ‘현장 “잘〜살아보세”, 2025’ 등의 작품엔 70년대 군부독재의 그늘을 볼 수 있다. 기사는 오려졌고, 그 시대를 풍미했던 권력자의 이미지만 남았다. 잘 살아보자는 구호(작품명)만이 남아, 잘 살지 못했던 그 시절을 소환한다.
롤랑 바르트(1915~1980. 프랑스)는 그의 저서 ‘신화론(Mythologies)’에서 대중매체가 어떻게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전파하는지 보여준다. 바르트는 사진을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로 이루어진 기호로 봤다.
사진이 묘사하는 현실 너머에 숨겨진 신화(Myth)를 분석했듯이 성능경도 ‘신문 읽기’에서 신문 사진 그 자체는 잉크로 인쇄된 이미지인 기표이고, 사진이 지시하는 현실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는 특정한 사건이나, 정치인, 전쟁 등의 기의는 사라진다. 정치인의 사진은 ‘지도자’로서의 신화로만 남는다. 성능경은 신문을 오리거나, 찢거나 불태운다. 이 행위는 현실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신문 사진이 담고 있는 신화를 해체하고 권력에 의해 조작된 진실을 쫒도록 유도한다.
2001년 아르코미술관에서 발표한 어록을 사진 형식으로 풀어낸 ‘일행십자총백자예술론’(2025)도 이번 전시에 새롭게 선보인다. 1970년대부터 지속해온 신문 읽기처럼 익숙한 매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방식을 따른다. 미용실에서 사용하는 파마보와 후드, 선글래스를 쓴 채 얼굴을 가리거나 양쪽 손을 펼쳐 보이는 손바닥에는 대략 이런 문구를 적었다. ‘예술은 비싼 싸구려이다. 예술은 소통의 불통이다, 예술은 쉽고 삶은 어렵다, 예술은 직관의 폭력이다. 예술은 망해야 망하지 않는다. 예술은 죽고 작가는 없다’.
이 작업은 일종의 선언서처럼 보인다. 50년 넘게 천착해 온 예술에 대한 태도를 10가지 항목으로 정리함으로써 평소 자신의 예술관을 피력하고 있다. 특히 ‘망친 예술’은 예술의 상업화와 권력과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핵심어로 ‘아직 예술이 아닌 것’을 불러내고 이를 예술의 옷을 입히는 행위를 통해 성능경 특유의 풍자와 해학을 완성하고 있다.
전시장 안에는 특정한 구조와 권력 관계 속에서 의미를 생산하는 기호들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걷다가” 외 9점’(1998)은 생활 속 단상을 드로잉과 내면 언어로 기록하고, 1998년 군산국제드로잉전에 출품된 이후 약 27년 만에 다시 공개되는 ‘커피드로잉’(2025)은 드립커피 후 자국이 남은 종이수건을 수집해 매일 반복했던 행위를 보여준다. ‘세계전도’(1974)로 시작된 지도 연작은 이번 전시에서 2023~24년 미국 전시 활동 중 수집한 지도에서 각 주(state)를 오려내어 해체한 뒤 그 조각을 또 다른 판형에 재배치한 신작 ‘USA 전도’(2025)로 이어진다.
롤랑 바르트에게 신화는 특정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마치 보편적인 진리인 양 포장해 대중에게 확산하는 장치를 일컫는다. 사진 속에 숨겨진 신화는 그 사진을 통해 재생산되는 권력 관계를 뜻한다. 성능경의 작품 안에서는 바르트가 신화를 찾았듯이 숨겨진 ‘기의’를 찾아내야만 한다. 하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미끄러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에게 회초리를 맞아야 할 수도 있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안리 살라 ‘생각의 과잉’
안리 살라의 비디오 작품 ‘생각의 과잉(Overthinking)’(2007)은 화가 다비드 알파로 시케로스(1896~1974)가 생전에 잡지에서 오려 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얻은 사진과 자신이 직접 촬영한 사진을 포함한 수천 장의 이미지 아카이브에 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이 작업은 이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서 ‘강령:영혼의 기술’에서 선보인다. 생각의 과잉은 성처럼 거대한 건물에서 뛰어내리려고 서 있는 장면과 마치 새처럼 뛰어내리는 한 남자의 흑백 사진 두 장에서 출발한다.
멕시코의 위대한 화가 다비드 알파로 시케로스는 수집한 이미지에 건축, 인물, 조각, 회화 노동자와 산업, 고통 등의 범주로 분류했다. 시케로스는 1974년 사망 후 예술가들에게 이 아카이브를 공개했다. 아카이브는 멕시코시티 폴랑코지역의 시케이로스 공공미술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곳은 시케이로스가 생전에 살고 작업했던 스튜디오와 집을 개조한 곳이다. 그는 죽기 전 이 공간과 그의 작품, 그리고 문서들을 멕시코 국민에게 기증했다.
이 밖에도 말년에 벽화제작을 위해 지은 스튜디오 겸 거주지였던 곳인 라 타예라 시케이로스 미술관에서 벽화 제작 과정에 대한 자료들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이 방대한 아카이브들은 작가이자 혁명가이자 공산주의자로서의 삶의 총합체다. 시케로스는 사진을 단순히 시대의 기록용으로 보관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 제작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자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의 아카이브에는 직접 찍거나, 잡지에서 오려 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수천 장의 사진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이미지에는 혁명, 노동자의 삶, 역사적 인물, 그리고 다양한 일상의 이미지들이 혼재돼 있다. 아카이브에는 벽화 작업을 위한 초기 구상들이 포함된 드로잉, 그의 정치적, 예술적 신념을 담은 논문과 글을 포함해 동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사건들을 기록한 신문 스크랩이 포함돼 있다.
살라는 이 아카이브를 탐색하던 중, 매우 특별한 흑백 사진 두 장을 발견하게 된다. 두 장의 흑백 사진은 미스터리하다. 첫 번째 사진은 남자가 건물 옥상에서 막 몸을 던지려는 것처럼 느껴지는 한 순간, 두 번째 사진은 남자가 땅 가까이 추락하는 순간, 혹은 이미 땅에 쓰러진 후의 모습을 보여준다. 연속적인 동작을 포착한 스틸컷처럼 보이는 이 사진은 마치 자살의 순간이 아닐까 상상상하지만, 남자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 ‘단지 퍼포먼스인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지금도 시케로스가 이 사진을 어떻게 소장하게 됐는지, 사진 속 장소와 인물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살라는 왜 이 사진들이 시케로스의 아카이브에서 고통이 아닌 ‘건축’이라는 범주로 분류됐는지 궁금해 한다. 이 사진은 인물이나 사건으로 분류할 것 같은데 예상 밖의 분류에 의문을 품는다.
사진 속 남자는 누구이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타로점를 치는 여인(영매)을 통해 죽은 시케로스에게 가상으로 질문을 던진다. 이 두 장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 이미지가 아니라, 기호(Sign)이자, 시케로스와 자신을 잇는 매개체로 활용한다.
생각의 과잉은 바로 이 사진들에서 촉발된 예술가의 사유 과정을 영상과 사운드로 시각화한 작품이다. 흥미롭게도 사진의 본질은 어쩌면 이 미스터리함과 언캐니함(묘함)을 태생적으로 품고 있는지 모른다. 영상 속 여인과 남자는 어째서 ‘인물’이 건축이 될 수 있는지 대화를 나누며 진행된다. 시케로스에게 아카이브는 시각적 언어와 정치적 이념이 교차하는 거대한 실험실이자 사고의 장이었다.
앙리 살라는 생각의 과잉에서 사진의 물리적 속성과 시케로스의 주관적인 분류(건축으로 분류된 추락 사진) 사이의 간극을 통해 예술가의 생각과 기록의 불완정성에 대해 질문한다. 시케로스는 생전 사진 속 특정 자세를 취한 인물을 찍어 벽화 속 인물을 구상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어쩌면 이 인물도 그렇게 활용된 것일까. 이 작품을 보는 관람객은 시케로스와 살라를 넘어 자신만의 생각으로 이 장면을 추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품의 후반부에는 한 여자가 카드를 섞고 펼쳐놓는 타로카드 점괘 장면이 등장한다. 타로카드는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사진을 해석하는 과정과 흡사한다. 살라는 이미 존재하는 기록(사진)을 두고, 마치 타로점을 보듯 그 의미를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질문을 던지는 중이다.
<작가 소개>
성능경(SungNeungKyung. b. 1944)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했고, 1973년 전위미술 단체 ST(Space & Time 조형미술학회)의 초기 멤버로 활동을 시작해 신문·사진·행위를 결합한 다양한 개념미술 작업으로 1970년대 이후 한국 실험미술의 흐름을 선도해왔다. 최근 주요 작품인 ‘그날그날 영어’와 ‘현장’이 각각 LA 해머 뮤지엄과 시카고 미술관에 소장됐다. 뿐만 아니라, 구겐하임 미술관(뉴욕), MoMA(뉴욕) 등 국내외 유수기관에 소장되며,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안리 살라(Anri Sala b. 1974. 베를린에서 활동)는 비디오 사진, 설치 등의 매체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소리, 움직임, 서사를 통해 우리 문화의 역사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질문하고, 세상을 보는 대안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파리 피노컬렉션, 토리노 카스텔로디리볼리, 멕시코시티 타마요미술관, 뮌헨 하우스데어쿤스트, 런던 서펜타인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그 밖의 세계 유수기관에서 작품이 소개됐다. 제49회 베니스비엔날레 젊은작가상을 수상했고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을 대표한 작가다.
글: 천수림 사진비평
이미지 제공: 백아트,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