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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운 물살 머리카락 풀어 적셨네

[서평] 우리말의 연금술사, 시인 곽재구의 <포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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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9호 ⁄ 2007.07.03 09:10:35

“삶이란 때론 상상력의 허름한 그물보다 훨씬 파릇한 그물을 펼 때가 있다. (중략) 나는 사람 틈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멸치배의 그물 터는 풍경 속에 내가 지닌 가장 따분하고 어리석었던 시간들을 날려 보냈다.” - 동해바다 정자항에서 포구(浦口). 그 이름을 혀끝에 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설렌다. 우리 주위를 채우고 있는 회색빛의 우울한 풍경이 아닌, 쪽빛이거나 검푸른 빛의 물결과 코끝을 싸하게 덮어오는 짠물의 내음. ‘포구’라는 말에서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는 대개 그러하다. 동해안이나 남해안, 그리고 서해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 이름 끝에 ‘포(浦)’라는 지명을 가진 무수한 곳들과 마주하게 된다. 예를 들어 화진포라든가, 법성포라든가, 구포 등의 지명이 그것이다. 이런 곳들의 특징은 말할 것도 없이 예전이나 혹은 지금까지도 고기잡이배들이 드나드는 작은 포구가 있다는 것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로 소위 ‘피서’라는 것을 간다. 그러나 그 피서라는 것들은 대부분의 경우, 해수욕장에 가서 살갗을 거무튀튀하게 태우고, 밤새 진탕 술을 마시는 행위로 귀착되는 것이 보통이다. ■ 참 맑은 물살 발가락 새 헤적이네 지난 1980년대를 우리는 ‘詩의 시대’라고 불렀다. 거짓이 진실을 구타하고, 어둠이 밝음을 가리며, 절망이 희망보다 앞섰던 그 시절을 왜 우리는 하필 ‘詩의 시대’라고 불렀던 것일까. 그것은 그 엄중했던 시기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의 서정적 정통성에다 ‘건강한 민중성’을 가미한 시인들이 속속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산문(소설·평론 등)보다는 보다 압축된 언어를 사용하는 시라는 분야가 그 시절의 어둠과 슬픔을 노래하기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었기도 하다. 곽재구는 그런 ‘80년대 시인’ 중, 단연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명시(名詩), ‘사평역에서’를 잠시 감상해보자.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 ‘사평역에서’, 전문 이 작품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무엇인지 실체는 확실하지 않지만 당대의 어둠 속으로 피어나는 한 줄기 담배연기 같은 막막함이 느껴진다. 그것은 곽재구가 노래했던 그 시간대가 아직 우리의 영혼에 짙은 회색빛 하늘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시편들은 빛나는 상처와 빛나는 한국어의 연속적인 조합들로 가득 차 있다. 80년 광주, ‘오월시’동인, 전교조, 그리고 그는 길을 떠났다.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가로등 기둥에 등대고 앉아 ‘한데 잠’을 자고, 어스름 선창의 한 식당에서 혼자 저녁을 먹었으며, “시집을 읽다가 바닷가 바위틈에서 아주 포근하게 한 시간쯤 잠이 들기도” 했다. 포구(浦口)란 육지가 거기서 끝나는 길이다. 바다라는 새로운 시간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배를 타면 우리는 새로운 시간으로 나아간다. 80~90년대를 급박하게 살아오면서 우리 영혼이 많이 지쳤다. 포구에서 밤새 파도소리를 듣고 별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는 사람은 비단 곽재구뿐만이 아닐 것이다. 개펄이 온갖 쓰레기를 품어 생명을 키우듯, 상처 입은 영혼도 이곳에서 다시 소생한다. ■ 사랑해야 할 날들 지천으로 솟았네 이 책, <포구기행>에 나온 항구와 포구들을 다 다녀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단 한 곳도 다녀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에 그리 중요한가. 우리는 어차피 이 생(生)의 여정에서 떠도는 여행자가 아닌가.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느냐고? 그것 역시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바닷가에 홀로 서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무엇이 우리의 영혼을 근원부터 흔들리게 하는 것인지를. 그리고 또 안다. 멀리서부터 부서지는 파도는 결코 내 발치까지 오지 못한다는 것을. 지난 1980~90년대를 관통해 오는 동안, 그리고 21세기라는 전혀 새로운 세기와 마주하며 그 세월을 견디어 오는 동안, 우리는 참 지난하고도 고단했다. 패러다임이 변했다고도 하고, 시대정신이 변화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 무엇이 변화하고 변질되었더라도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헌신’이다. 곽재구를 비롯한 많은 시인들이 그토록 힘들여 건설한 저 위대했던 ‘詩의 시대’는 아마 이 세대 안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대의 서정을 간직하는 저 많은 포구와 짠물 내음 가득한 언어들이 있는 한, 우리는 한국 서정시의 전통을 이어가는 뛰어난 이야기꾼을 만날 수 있다. 포구에는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이 있고, 악다구니가 있고, 진한 술내음 사이로 진동하는 역겨운 배설의 흔적이 있고, 부유물 사이로 먹을거리를 찾아 배회하는 바닷새도 있다. 허나 우리네 삶이라는 게 어차피 아름다운 것들의 연속일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마치 드라마나 영화 속의 죽음이 아름답고 깨끗한 것은, 그것의 실상은 전혀 그러하지 않다는 것에 기반하는 것처럼, 포구(浦口)가 주는 이미지는 아련하지만 포구는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포구가 주는 어감은 몽환적이지만, 포구의 아침 표정은 찌뿌둥하다. ■ 참 고운 물살 머리카락 풀어 적셨네 ‘기행’을 주제로 한 책들은 많다. 그러나 그 중에서 읽는 이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던져주는 책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문단에 등장한 그러한 책 중, 의미 있는 색깔을 지닌 책으로는 이생진 선생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와 이 책, <포구기행>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기행문이라는 게 단순히 여행지의 소개에 그친다면, 그것은 여행사에서 나누어주는 관광지 안내문과 다를 바가 전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물론 ‘다 잊어버리고 논다’는 것도 여행의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이지만, 결코 그것이 모두여서는 안 된다. 도시에서 바라보는 포구는 분명 아름답다. 그리고 그립다. 그러나 그 포구에 서서 바라보는 도시 역시 눈물겹다. 바로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힘겹고 아플 때, 우리가 포구로 찾아가 우리 삶의 희망의 이유를 만나고 오듯이, 포구에 서면 우리는 우리 내부의 진솔한 얼굴과 마주할 수 있다. 갑갑한 날, 가까운 포구를 찾아가보라. 가서 굳이 냉난방이 잘되어 있는 횟집이 아니더라도, 포구를 감싸고 있는 방파제에 앉아 바다와 함께 한 잔 술을 나누어 마셔 보시라. 무엇이 우리를 답답하게 하고, 무엇이 우리를 그립게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내 안의 나와 굳게 악수하고 돌아오라.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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