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사실 사소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K모 선수를 중심으로 뭉친 일부 소녀팬들의 행각이 극에 달했다는 생각에, 순간 화가 났던 것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그가 탤런트 K양을 평소에 선호했다고 알려지자, 소녀팬들은 K양에게 말로는 다 못할 저주를 퍼부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었다. 그 이후, K 선수가 K리그 경기 도중 ‘안드레’라는 외국인 선수와 몸싸움이 일어나자, 소녀팬들이 ‘안드레이 셰브첸코’의 국내 팬 홈페이지에 난입해 무자비한 욕설을 퍼부었던 적도 있다. 글쓴이가 틈만 나면 벌이는 소녀팬들과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나는 영화 ‘최강 로맨스’의 주연배우 팬클럽이 주도한 평점 조작 의혹 사태를 거론했을 때도 이동욱의 소녀팬임을 자처하는 이들의 끝없는 악플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던 적이 있다. 유명 아이돌 스타 팬클럽의 어긋난 행태, 그리고 그들의 광적인 스타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어른들의 빗나간 상업적 행태를 거론한 글을 썼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 이후로, 나에게는 약간의 콤플렉스가 생겼다. 약간의 과장을 섞어 이야기하자면, 길을 지나치다 여중고생들을 봤을 때, 가끔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저 여학생들 중 누가 나의 블로그에 들어와 욕을 퍼부었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네가 감히 우리 오빠와 사진을 찍어?”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무려 40kg의 몸무게를 감량한 소녀가 방송에 출연해 모 아이돌 그룹의 스타와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뚱뚱한 체구를 염려한 돌아가신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어서, 뚱뚱하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오빠에게 여러번 차인 것이 속상했던 소녀였다고 한다. 소녀의 ‘원죄’는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네가 뭔데 우리 오빠와 사진을 찍느냐”는 것이다. 나도 매일같이 경험했던 것이다. “네가 뭔데 우리 오빠들을 욕하느냐”는 이야기는 소녀팬들과의 전쟁을 치를 때, 하루도 빠짐없이 고장난 라디오처럼 들었던 뻔한 이야기였다. 내가 소녀팬들을 통렬하게 비판한 이유는, 언젠가 이런 사태도 일어날 수 있음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나처럼 매일같이 욕먹는 게 일인 사람도 가끔은 그 ‘보이지 않는 객기’가 짜증날 때가 있다. 하지만 소녀는 단지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먹어야 하는 사실, 그것도 문자메시지와 미니홈피에까지 도배되는 욕을 견뎌내야만 하는 사실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테러를 견디지 못한 소녀는 자살을 선택했다. 할머니의 소원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시작한 다이어트, 고백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고자 시작했던 다이어트가 엉뚱한 도화선이 된 것이다. ■지나친 스타사랑, 정말 이대로는 안된다 내가 소녀팬들와의 오랜 전쟁을 치른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그들은 대부분 미성년자였다.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교육을 받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고 한다. 노무현입네, 한나라당입네로 나뉘어 매일같이 욕설을 퍼붓는 것은 어른의 현실. 거울에 보이는 그 현실이 미래에도 변함없이 이어진다는 것은 끔찍한 이야기로 보였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할 그들은 막연한 사랑, 그리고 그 환상을 ‘스타’에게 바치는 편이다. 그 ‘스타’들이 어쩌면 ‘만들어진 이미지’일지도 모른다는 점은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 ‘환상’을 절대화하며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한다. 그리고 이 ‘사랑’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도 무너뜨린다. 무엇이 현실이고 환상인지, 그녀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어긋난 스타사랑의 표본이 돼간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는 탄복할만한 한 마디를 남겼다. 인간의 본질, 이기적인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마디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인간이라 할지라도 저 한마디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는 특히 소녀팬들을 보면서 카이사르의 저 한마디를 자주 떠올리는 편이다. 그들은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 TV 속에서 늘상 보이는 스타를 그대로 ‘절대화’하며 현실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신성불가침처럼 굳혀져가는 현실을 틀어버리는 사람, 혹은 나처럼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 그리고 감히 그 ‘절대화’를 독차지하려는 사람, 특히 ‘나도 못하는 것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대로, 소녀는 누구나 선망하는 아이돌 스타와 사진을 찍었다. 오랫동안 사랑을 바쳐온 소녀팬들은 아무리 꿈꾸어도 할 수 없는 일을 그녀는 ‘방송에 출연한 빽’을 이용해 이루고 만 것이다.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보기에, 그것이 정말 현실인지 설정인지에 대한 고민은 중요하지 않다. 소녀는 그렇게 질투심에 사로잡힌 엘프에 의해 ‘죽일 X’이 돼 감당 못할 테러를 당한 것이다. 미디어다음 블로거 ‘승복이’의 표현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린 소리 없는 아우성이 꿈 많던 소녀의 목을 끊임없이 옥죄인 것”이다. ■‘종교’가 돼가는 ‘스타 사랑’ 블로거 ‘승복이’는 ‘악플러’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짚어낸다. 하지만, 글쓴이는 체험의 영향인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타 사랑’이 더욱 걱정된다. 그들의 ‘스타 사랑’은 사랑을 넘어 종교가 되고 있다.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스타들은 “나 이외의 다른 스타는 섬기지 말라”고 되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스타들을 섬기지 않는 대신, 스타도 ‘한눈을 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엘프의 눈에, 스타와 다이어트 소녀의 사진촬영은, ‘한 눈 판 것’으로 보인 것이다. 물론 ‘종교’와 비교하는 나의 표현이 지나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스타 사랑은 이미 오래전부터 도를 넘다 못해 이젠 한 목숨을 담보로 비극적인 사건까지 유발할 정도로 위험해졌다. 자고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아편에 취하면, 그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달콤한 사랑을 건방지게 맛보는 자, 가만히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아편이 위험한 이유는 바로 그로부터 비롯되는 폭력성이며, 그 폭력성이 ‘폭력’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어른들은 소녀팬의 ‘아편’을 좀 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스타와 팬, 적절한 긴장관계가 있어야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는 법이다. 그들이 흠뻑 취해버린 그 ‘아편’, 이제 서로의 성장을 위한 보약으로 바꿔줘야 할 때다. 더 이상 그 어긋난 스타 사랑에 상처받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박형준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