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호 박성훈⁄ 2009.02.03 14:46:24
충남 홍성군 광천읍과 보령시 오천면 등 과거 석면광산 주변의 5개 마을 주민 100여 명에게서 석면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폐질환이 집단 발병한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지난 1970년대 말까지 석면광산이 자리한 충남 홍성과 보령 지역의 일부 주민들이 집단으로 폐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석면피해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마을에서 500m 가량 떨어진 광산에서 석면을 캐내던 땅굴은 이미 매립된 상태이지만, 그 피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환경부가 가톨릭대에 의뢰하여 홍성과 보령 지역의 광산 근처 5개 마을 주민 215명에 대한 검사를 실시한 결과, 110명에게서 폐에 이상이 발견됐다. 이 중 33명에게서는 석면폐나 폐섬유화 증상이 관찰됐다고 한다. 이 같은 조사결과로 광산 주변 마을에는 석면 폐질환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 보령시의 한 마을 주민은 “지금도 폐가 아픈 환자가 열 명이 넘는다”며 “채굴이 한창일 당시에는 마을 전체가 석면가루에 무방비 상태였다”고 말했다. 석면은 사문석에 포함된 섬유질 광물로, 우리말로는 ‘돌솜’이라 불리기도 한다. 석면의 영문 표기인 asbestos는 '불멸'이란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불에 타지 않는 성질을 의미한다. 석면은 코르크보다 가볍고 깃털 같은 감촉과 높은 강도를 가진 데다 물과 산에도 녹지 않아 한동안 ‘꿈의 광물’로 인식돼 왔다. 예로부터 석면은 금에 버금갈 정도로 값이 비쌌고, 왕과 귀족들이 사용할 정도로 귀한 광물이었다고 한다. 생산량이 늘면서부터는 석면 슬레이트 등의 건축자재와 방화재·내화재·보온재·단열재·천장재·전기절연재·브레이크라이닝 용재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하지만 1970년대에 석면섬유가 폐암·후두암을 일으킨다는 논란이 나면서 ‘죽음의 광물’로 전락했다. 0.01㎜의 미세먼지로 공중에 떠다니다가 사람의 폐에 들어가면 그대로 흡착되어 10~30년의 잠복기를 거친 뒤 폐암 등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다. 석면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표적 질환인 악성 중피종은 폐와 위장관 등을 둘러싼 막인 ‘중피’에 생기는 암으로, 진단 후의 평균 생존기간이 1년인 치명적 질환이다. ■ 석면광산 주변 마을 불안감 팽배 아시아 최대의 석면광산이 있던 홍성군 덕정마을은 광산이 폐쇄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주민들 상당수가 석면으로 인한 폐질환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으면서 마을 전체가 온통 초상집 분위기라고 한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에 광부로 일하기도 했다는 정모 씨는 “폐에서 석면이 발견되고 결절이 많아 조직검사를 받아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어디서 어떻게 검사를 받고 치료를 해야 할 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정 씨는 “광산은 1970년대에 문을 닫았지만 마을 어르신 대부분이 환갑 전인 50대에 돌아가셨다”면서 “그때는 그냥 폐병이 심해서인 줄만 알았지 석면 때문인 줄은 몰랐다”고 회상했다. 한 달여 전에 가톨릭의대 의료팀은 정 씨에게 석면 노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폐기종, 흉벽 석회화, 폐섬유화가 의심된다고 진단한 바 있다. 그는 “아직도 마을 주민들은 광산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지하수를 마시고 있어 철저한 환경복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석면광산 폐광 직전에 이 마을로 이사를 왔다는 이장 이조민(66) 씨는 석면광산이 운영되던 시절의 마을 풍경에 대해 “광산에서 발파한 돌이 지붕에 떨어지는 일은 다반사였고, 바람이 불면 동네 전체가 안개에 휩싸인 듯 집집마다 석면가루가 하얗게 마루를 덮었다”고 회고했다. 석면광산의 흔적만 남아 있는 보령시 청소면 정전2리 주민들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이다. 27명의 마을 주민들은 지난해 10월 가톨릭의대 관계자들로부터 1차 검사를 받고, 이 가운데 이상 징후를 보인 5명이 서울에서 2차 검진을 받았다고 한다. 이장 조종석(49) 씨는 “마을 야산에 일제시대부터 60년대 말까지 석면광산이 있었다”며 “검사에서 빠진 주민들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걱정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해당 마을 주민들은 이번 조사결과를 놓고 정부가 석면광산 일대의 환경복원사업을 철저히 시행하고 주민들에 대한 진단과 치료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광역시 중 울산이 석면위험 최고수위 최근까지는 대전이 석면건축자재 공장 등의 영향을 받아 중피종 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알려져 왔지만, 전국 광역시·도 가운데 울산광역시가 석면 노출에 따른 악성 중피종 발생 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안연순 동국대 산업의학 교수는 통계청의 사망자 자료와 중피종 감시체계 자료, 산재보험의 산재요양 자료 등을 분석해 이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 1995~2006년의 중피종 사망자 339명, 중피종 감시체계 등록자 290건, 중피종 산재승인 19건 가운데 시·군·구 주소가 확인된 476건을 대상으로 지역별 표준화비를 계산한 결과, 울산이 1.92로 가장 높았고, 대전 1.68, 인천 1.56 등의 순이었다고 한다. 표준화비 1.92는 중피종으로 숨지거나 진단받은 사람이 전국 평균보다 92% 많다는 것을 뜻한다. 안 교수는 “울산에 조선소 같은 산업시설이 밀집해 있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정된다”고 말했다. 현재 석면으로 인한 악성 중피종이 많이 발생한 지역으로는 인구 5만 명 미만의 시·군·구에서는 충남 청양, 인천 옹진, 경기 연천 등이, 인구 10만~15만 명의 시·군·구에서는 충남 보령·논산, 경남 통영, 경기 오산, 부산 동구 등이 조사됐다. 이 중 충남 청양에는 2곳의 석면광산이 있었다. 청양군은 군내 석면광산 실태 조사를 통해 비봉면 강정리 비봉광산, 남양면 흥산리 구봉광산에서 과거에 석면을 채광한 사실이 있다고 1월 16일 밝혔다. 이 광산들의 반경 1㎞ 내 주민 1200명은 석면 위험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군은 충남도와 환경부, 지역 국회의원 등에게 협조와 지원을 요청하여 석면사태 해결에 나서고 있다. 군은 석면광산 주변 마을 주민의 건강영향조사와 인근 토양·지하수 석면검사 등을 실시하여 충남도와 정부의 대책에 청양군 석면광산이 포함되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 정치권 특별법 제정 움직임…제대로 된 석면지도부터 작성해야 이와 관련하여, 석면피해 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은 1월 15일 충청권의 석면피해와 관련해 ‘석면피해 보상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민주당 양승조 석면피해 조사 및 대책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민주당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석면으로 피해를 본 국민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양 의원은 “우선 충청권의 폐석면광산 인근 주변의 거주자 및 종사자 1만여 명에 대해 긴급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석면폐 등 질병관리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는 한편, 석면광산 인근 지역의 지하수와 간이 상수도를 대상으로 식수오염이 발생했는지 조사해야 한다”며 법 제정에 앞선 선결과제를 제시했다. 양 의원은 ▲홍성·보령 등 충청권의 석면피해 실태 조사 ▲피해주민 건강검진 및 지하수에 대한 수질검사 예산 집행 ▲정부의 석면피해자 구제에 필요한 포괄적인 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자유선진당은 최근 충남 홍성 등지에서 발생한 석면피해와 관련하여 전방위적인 보상 및 피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보상 문제를 규정한 특별법’의 필요성을 환기하며 자유선진당 차원에서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자유선진당 류근찬 정책위의장은 12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앞으로 석면피해와 관련하여 배상 및 보상 문제가 불거질 텐데 지금 가지고 있는 법률로는 충분한 문제 해결이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보상 문제를 특별히 규율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며 이 같이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과 충청남도도 이 부분에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법안의 필요성에 대한 여론을 환기했다. 특별법안은 선진당이 국내외 자료를 기초로 특별법을 만들어 발의해 다른 정당의 협조를 얻는 방식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류 정책위의장은 △석면광산 근로자와 광산 주변 4km 내 지역민에 대한 전수 정밀 조사 △보령·홍성 의료원에 석면피해신고센터 운영 △지하수를 포함한 환경오염 조사 △한국광해관리공단의 미복구광구 조치 등을 필요사항으로 열거했다. 또,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및 석면중피종연구센터, 민주당 양승조, 자유선진당 류근찬 의원 등은 공동으로 1월 20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석면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갖고 특별법 제정에 뜻을 모았다.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소장은 이날 주제발표에서 “현재 광천 석면광산 지역 주민, 부산 석면방직공장 주변 주민 등 석면으로 인한 건강 피해자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외국의 예를 볼 때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며 “석면으로 인한 질병으로 지역주민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현행법으로는 보상할 수 없다”며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한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는 성명을 내고 “전국의 석면 피해자들이 모임을 결성하고 국민과 함께 석면 특별법 제정, 피해 조사 및 보상, 특별기구 설치 등을 통해 석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며 국민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정부 여당에서도 석면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한나라당은 석면피해구제 특별법 제정을 검토하기로 했으며, 노동부 또한 올해부터 석면을 함유한 제품의 제조와 수입·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종합적이면서도 포괄적으로 석면피해 문제 해결 방안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느 공장이 얼마나 많은 석면을 사용했으며 건축물에는 얼마만큼의 석면자재가 쓰였는지를 알 수 있는 국가석면지도부터 제작하는 것이 우선순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