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에 제2롯데월드를 짓겠다는 롯데의 야심이 또 한 번 국가안보 문제와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2롯데월드의 건축 허가는 서울시가 할 일인데도 건축사업이 쉽게 풀리지 않는 이유는 건설이 예정된 잠실 인근에 성남 공군기지가 있기 때문이다. 건설 허가를 위해 서울시는 국방부와 협의한 후 허가를 해야 하지만, 안전성을 염려하는 공군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어 이제껏 행정조정에 불응해 온 것이다. 다시 말해, 제2롯데월드의 건설은 서울시와 국방부 사이의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지지부진해 온 것일 뿐, 행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상희 국방 장관에게 행정조정을 해주라는 뜻으로 지시를 내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4월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투자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 합동회의’에서 이상희 국방부 장관에게 “그런 식이니 14년 동안 결정을 못한 것 아닌가. 날짜를 정해놓고 그때까지 해결할 수 있도록 검토하세요”라고 면박성 지시를 했다.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진 이상 이를 무시할 수 없는 국방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롯데 측에 건설을 위한 행정협조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성남비행장의 운용상 발생하는 안전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제2롯데월드 건설은 성남기지 폐쇄로 이어지는 상황마저 우려되고 있다. 성남공항에는 주활주로와 부활주로가 있다. 부활주로의 접근수평표면은 청와대 상공 비행금지구역 P-73과 거의 맞닿아 있어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제2롯데월드 건물은 부활주로의 제2구역(활주로에 내리거나 이륙한 항공기가 직선으로 날아가는 공간. 비행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정 고도의 건물은 지을 수 있다)의 바로 바깥에 위치한다. 활주로 끝으로부터 약 7300m 떨어진 지점에 있다. 롯데 측은 이 사실을 들어 제2롯데월드 건설의 안전성을 주장하고 있다. ■ 예비역 공군장교, 비행안전 문제 들어 반대 지난 2월 3일 국회에서 열린 ‘제2롯데월드 신축 관련 공청회’에서는 제2롯데월드 신축 허용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펼쳐졌다. 이 자리에서는 군을 상대로 ‘비행안전’ 문제를 집요하게 따지는 등 제2롯데월드의 전시 및 평시 운용상의 문제점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공청회에서는 초고층 빌딩과 비행기의 충돌 가능성을 우려하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현역에서 자유로운 예비역 공군 장교들은 엄격한 항공안전규정의 적용 등을 들어 적극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냈지만, 지난 15년 간 112층, 555m 높이의 제2롯데월드 건립에 반대했던 공군은 오히려 롯데와 한 목소리를 냈다. 예비역 공군 중령인 김성전 국방정책연구소장은 “군 공항은 민항기와 달리 폭탄과 외부 연료 탱크를 달고 있기 때문에 민간공항의 안전규정보다 낮은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고 제2롯데월드 신축을 반대했다. 공군 장성 출신인 이진학 전 공군 기획관리참모부장도 “구름 속이나 야간에 비행계기만 보며 활주로를 찾아 내려가는 조종사에게 초고층 빌딩은 공포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제2롯데월드는 전술운용과 항공기 운항시의 비정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비행안전 장애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은 “2년 전 공군 조사에서는 군 조종사 75.2%, 군 관제사 83.3%가 충돌 위험이 있다고 응답했는데, 불과 2년 만에 의견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느냐”고 추궁했다. ■ 국방부 “충돌 방지 위한 안전장치 보장키로 했다” 같은 당 김장수 의원도 “2007년에 내가 장관을 할 때 관련 보고를 받고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며 “1년 남짓 동안 비행안전 장비와 기술이 몰라보게 달라졌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반면, 성남기지의 활주로 각도를 3도 가량 변경하고 추가 안전장비를 설치하면 제2롯데월드 건립은 안전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롯데 측은 미 연방항공청의 기준을 거론하며 안전문제에 관해 검토한 결과 이상이 없다고 주장했다. 롯데물산 기준 사장은 “비행안전에 관해 미 연방항공청에서 비행안전을 확보하면서 초고층이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았고, 공인 충돌위험 모델(CRM)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 초고층에 충돌할 확률은 1천 조 분의 1로 안전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 전쟁 발발시 빌딩과 항공기 충돌 우려 제2롯데월드 터 근처의 서울공항에 주둔하고 있는 공군 15혼성비행단의 박연석 단장은 “작전 수행에 지장을 주는 요소가 제거된다는 조건에서 기업이나 국민이 건축을 요청했을 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단장은 “비행안전 확보를 위해 시계 및 계기비행 보호구역을 보장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롯데가 부담하겠다고 해서 공군과 롯데 간에 이견이 없어졌다”고 밝혔다. 국방부 실무 책임자인 김광우 군사시설기획관은 “제2롯데월드 건물 내에도 경고체제를 구축하는 등 안전보장 장치를 마련해 비행안전을 확실히 보장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김영우 의원은 “비행안전이 확보되고 수익자 부담 원칙이 지켜지며 다른 군사시설 인근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가 해소되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국회에서의 토론은 결국 뚜렷한 결론 없이 외압의혹만 남긴 채 마무리됐다. 전시 상황에서는 비행기 이착륙상의 안전문제가 심각해진다. 민간공항의 경우 아무리 많은 항공기가 몰려들어도, 사고를 방지해야 하기 때문에 2분 정도의 시각차를 두고 항공기가 이착륙한다. 전술운용이 목적인 공군기지는 전시를 대비하기 때문에 성격자체가 다르다. 전쟁 발발시 적의 최우선 선제공격 대상은 공군기지가 된다. 공군기지에 적의 대한 공격이 개시될 조짐이 보이면, 공군은 항공기 보호를 위해 ‘스크램블(scramble·긴급발진)’을 발동해 기지 내의 모든 항공기를 이륙시킨다. 스크램블이 걸리면 서너 대가 한꺼번에 이륙한다. 이때, 비행기는 이륙 직후 안전을 위해 서로 간격을 넓히는데, 산개하는 과정에서 초고층 빌딩이 자리잡고 있다면 충돌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전쟁이 발발하면 비상상황이기 때문에 공군은 주활주로와 부활주로를 모두 운용하고 P-73도 무시한다. 역으로, 다른 기지에서 온 전투기들이 성남기지를 찾아 날아올 경우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평시에도 다른 기지나 공항에 내리는 훈련을 반복하지만 본래 기지만큼 익숙하지 않다. 물론, 조종사들은 초고층 빌딩이 보이면 회피 기동을 하겠지만, 계기비행(計器飛行·육안으로 전방관측이 힘들 때 계기판에 의존하는 비행)을 할 경우 뜻하지 않게 제2롯데월드 건물을 놓칠 가능성을 버릴 수 없다. ■ 성남기지, 강원도 횡성 이전 검토 중 제2롯데월드의 건설에 국방부가 협조하기로 한 상황에서 성남기지에 위치한 KA-1 대대의 이전은 불가피하다. 양자 간의 대립에는 성남기지에 주둔한 KA-1 경공격기 대대의 이전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국방부에서는 KA-1 대대를 강원도 횡성으로 이전하는 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 내부에서도 기지를 옮기는 이유로 ‘제2롯데월드’를 꼽는다고 한다. KA-1은 국산 훈련기 KT-1에 무장을 장착해 적의 기갑부대나 서해상으로 침투하는 경비정에 대한 근접항공지원(CAS)을 한다. 북한의 해상도발시 함정급 이상의 전함에 대해서는 KF-16 등 전투기로 대응하지만, 500t 미만의 소형 경비정이 침투하면 작은 목표물 공격에 유리한 KA-1 경공격기의 역할이 크다고 한다. 서부전선에 위치한 수도권은 북한군 특수부대가 공기부양정 등을 이용해 침투할 경우 바로 진입이 가능하고, 인구가 밀집돼 있어 많은 국민의 안위가 위태로워진다. 또, 도로가 발달해 차량을 탈취하면 빠른 시간 안에 서울로 침투할 수 있다. 작은 표적인 공기부양정을 잡기 위해서는 마하의 속도를 내는 전투기보다는 공격헬기나 공격기 등이 유리하다. 지금까지 이 임무를 수행해 온 부대는 미 육군의 아파치 공격헬기 대대였지만, 미군은 작전권 환수조치에 따라 2009년 3월에 이 대대를 철수하기로 했다. ■ 안보가 우선이냐, 법이 우선이냐 ‘파주-문산 축선’의 평원지역은 북한의 기계화부대가 침투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다. 만약, 전시상황에서 북한군이 이 지역으로 대규모 기동부대를 투입한다면, 공군은 모든 전투기를 출격시켜 북한 지상군을 공격한다. 이때, 북한군은 부대를 작게 나누어 수도권에 산개한 국도를 따라 침투할 수 있는데, 소단위의 부대를 무력화하는 데에도 KA-1이 유용하다. 이처럼 서부전선의 방위전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KT-1 대대까지 강원도 횡성으로 옮기면, 서부전선으로 들어오는 적 부대에 대한 공중 지원을 사실상 포기하는 셈이다. 게다가 기지를 횡성으로 이전하면, 항공상으로 서해까지 왕복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공군의 1회 출격에 할당되는 시간은 1시간 30분 가량으로, 횡성에서 서해의 공중지원을 하려면 이동에만 시간의 절반을 쓰게 된다. 롯데 측은 제2롯데월드 건설이 법적으로 부합할 뿐 아니라 안전에 큰 문제를 유발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롯데의 주장에 대하여, 제2롯데월드에 반대하는 쪽의 입장은 계속 전시상황을 상정해 안전을 문제 삼는다. 전시상황 혹은 유사시라는 말은 특별한 상황을 상정한 것이며, 역사적으로 실권자들의 만행이나 권력남용을 덮기 위한 핑계로 악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안보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돼 있는 개념이라 어떤 논리보다도 우선시다. 법이 평시에는 우세할 수 있겠지만, 전시상황에서는 사리분별이 필요한 법보다 날아드는 총알이 훨씬 빠르다. 유사시의 안보는 법보다 우선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공군은 안보를 책임지는 기관이다. 그런 공군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