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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일 ‘定示’

18년째 853회…일본 정부 ‘묵묵부답’, 한국 정부 ‘미적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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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06호 박성훈⁄ 2009.02.24 11:49:05

2월 18일 수요일 정오,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일군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집회가 열린 자리에는 위안부 피해 당사자 이외에도 외국인과 고등학생·대학생·언론인 등 많은 수가 참여하고 있었다. 시위에 정식으로 참가한 개인과 단체를 열거하자면, 교토 YMCA, 고려대 학생회, 부산대 신문사, 피스로드(Peace Road. 나눔의집 부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여는 한일 대학생 워크숍) 참가자, 고환규 목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회원, 자원봉사자, 평화박물관, 새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 회원 등이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위안부 피해자는 길원옥·이용수·이순덕 할머니 등 세 명이다. 시절이 아직은 겨울인 탓에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에 기거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은 집회에 나올 수 없는 형편이지만, 3명의 할머니는 매주 빠짐없이 자리를 지켰다. 더욱이, 유난히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 날이었지만, 할머니들과 집회 참가자들은 열기에 찬 모습이었다. ■ “보상촉구” 쟁쟁…반응은 묵묵 40여 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강주혜 정대협 사무총장의 선창에 맞춰 “일본 정부는 공식 사죄하고 공적 배상하라”, “일본 정부는 각국 발의안 즉각 수용하라” “한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앞장서라” “올바른 역사정리 실시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일본 정부의 사과와 한국 정부의 각성을 거듭 촉구했다. 이들은 민중가요에 맞추어 춤을 추기도 하고, 참가자들의 자유발언도 있었다. 이들은 일본 정부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범죄 인정 ▷진상규명 ▷국회결의 사죄 ▷법적 배상 ▷역사교과서 기록 ▷위령탑과 사료관 건립 ▷책임자 처벌 등 7가지 사항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일본에 더 이상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문제 해결에 힘쓸 것을 촉구했다. 반면, 이날도 일본 대사관의 검정색 창살 대문은 묵묵히 닫혀 있었다. 나와 보는 대사관 관계자도 한 명 없었다. 단지, 청사 경비임무로 배치된 경찰병력만이 입을 굳게 다문 채 이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실시하는 집회에 대사관 앞에서 스피커를 크게 틀고 소리쳐도 대사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18년째 853번 열린 수요집회 이날 수요집회는 853번째 열린 시위였다. 1992년 1월 8일부터 집회를 시작했으니 어느덧 18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그 동안 시위를 진행해 오면서 얻은 성과도 많다. 정대협 윤미향 공동대표는 “우선 수요집회가 살아 있는 박물관화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박물관에서는 역사를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콘크리트 건물 안의 진열장 안에 죽어 있는 구시대의 유물은 대중에게 역사를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반면, 정대협의 수요집회에서는 한국의 근대사인 일제시대에 대한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근현대사를 전공한 제3자를 통한 교육이 아닌, 일제시대를 경험하고 억압과 착취를 몸소 체험한 사람들의 입으로 듣는 생생한 증언이 참가자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성과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변화이다. 철저하게 유린당한 과거를 부끄러워하며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길 꺼려하던 위안부 할머니들은 이제 국내의 젊은 층과 세계인에게 반복돼서는 안 될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 누구나 자유롭게 마이크를 잡고 생각을 말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점이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위안부 문제 해결과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 자유발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폭넓은 공감대를 갖추게 됐다. 지금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도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도쿄 참의원회관 앞과 교토·오사카 등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집회를 열고 있다. 또, 일 년에 두 번, 즉 세계여성의 날인 3월 8일 주간과 광복절 주간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세계연대 주간’으로 지정했다. 이 주간에는 미국·호주·영국·대만·필리핀 등 각국 주재 일본대사관에서 집회를 실시하고 있다. ■ 미국인도 “일본 사과·보상해야” 정신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수요집회를 찾는 외국인들도 많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수요 정기시위는 캐나다·프랑스 등 외국에서 출판되는 한국 여행 가이드에도 나올 만큼 유명해졌다. 매 집회마다 일본·중국 등 아시아권을 비롯해 북미·유럽 등지의 외국인들이 지나가다가, 혹은 일부러 찾아오고 있다. 이날 집회에도 서양인과 아시아권 외국인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특히, 피스로드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어서 여기에 참가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윤미향 대표는 “수요집회를 일회적으로 관람하는 외국인들도 있고, 정기적으로 찾아와 시위를 지켜보는 외국인도 있다”며 “이들과 메일 교환 등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고, 이런 식으로 형성된 세계적 인간 네트워크가 우리 협의회의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계 미국인인 미하우 씨는 “일본에서 수학을 하다가 지인으로부터 정신대 문제에 관해 접하게 됐고, 피스로드의 관계자를 통해 한일 워크샵을 알게 돼 학교 봄방학을 맞아 오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수요집회를 찾은 그는 “집회에 참가하는 이들의 생각을 지지한다. 일본은 반드시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일본 시민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집회장에는 일본인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그들은 가해국 시민이라는 죄책감에 주눅 든 모습이 아닌 당당한 모습으로 집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피해자 할머니가 나와서 자유발언을 할 때에는 박수와 환호로 격려도 하고, 선전성 구호를 따라 외치기도 했다. 일본인 가라키 유이 씨는 “일본 정부가 정신대 문제를 묵인하고 있는 데 대한 부담감이 있어, 시위에 적극 참여하기보다는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환학생으로 올 때마다 수요집회에 왔고, 처음에는 잘 모르던 역사에 대해 서서히 의식을 갖게 됐다. 이번에는 나눔의 집에서 한일 공동 학습 워크샵을 가지면서 역사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미향 대표는 “일본 시민들은 처음에는 위축된 모습이었지만, 위안부 할머니들과 직접 대면하면서 죄책감을 극복하고 일본 정부를 향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대협에도 재일교포 양노자 씨가 활동하고 있다. 이번 피스로드 워크샵에는 34명이 참가하고 있는데, 이 중 일본인이 15명에 이른다. 이 외에도 재일교포가 함께 공부하고 있다. 피스로드 관계자 강수혜 씨는 “일본 참가자들 중에는 연구분야와 관련해 워크샵에 오는 사람이 있고, 단순한 궁금증으로 오는 사람도 있다”며 “대부분 (일본 정부가 사과해야 한다는)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일본 학생 중 정신대 문제를 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많지만, 한국 학생 중에도 위안부에 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 한국 학생 “위안부 거의 몰라요” 이날 정신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찾아온 고등학생들은 종군위안부를 전혀 모르는 또래가 많다고 말했다. 국사 교과서에서 정신대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단 몇 줄의 극히 일부분이다. 시험 출제 가능성이 높은 부분만 뽑아 가르치는 형태의 입시위주 교육풍토도 정신대 문제를 우선순위에서 밀어내고 있다. 이 같은 교육여건으로 정신대 문제를 모르는 한국 학생이 많아지는 것이다. 집회에 참가한 오환희 양(18. 경화여고)은 “위안부 문제를 아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정신대를) 조금 다루긴 하지만 자세하게 배우지 않는다. 저는 선생님을 자주 찾는 편이라 따로 관련 동영상을 접할 기회가 있어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정서 양도 “(오 양을 가리키며) 이 친구 때문에 정신대에 대해 알게 됐다”며 “위안부라는 게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친구들도 있다.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거나, 별도로 공부하지 않는 한 자세히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 되풀이되는 비극, 이제는 멈춰야 피해 당사자의 수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든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총 93명. 정부에 피해자임을 알려 생활안정지원금을 받는 사람만 이 정도 수치를 나타내고 있으니, 잠정적인 피해자의 수는 더 많을 수 있다. 애초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234명이었지만, 지금은 절반을 훨씬 넘는 할머니들이 이미 한 많은 세상을 버렸다. 위안부 피해자가 한 명씩 사라져 갈 때마다 일제시대 말엽의 부녀자에 대한 만행도 함께 잊혀져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윤미향 대표는 “오늘 시위에 참여한 젊은이들을 보면 문제가 잊혀질 것 같은가? 절대 아니다”고 단언한다. 다행히10~20대 참가자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찾아오고 있어 정신대 문제가 잊혀질 것이라는 우려를 씻어내고 있다. 1945년 해방 이후 2009년의 3.1절을 앞둔 이 시점까지, 일본 정부는 진정성 있는 사과도, 10원 한 닢의 보상도 하지 않았다. 기실, 이 문제는 시민단체에서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정부 대 정부로 해결할 사안이다. 보상문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비극적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한 예방 사업이다. 정신대 문제는 되풀이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숱한 전쟁 속에서 여성들이 당한 수난사의 탕탕한 물결을 되짚어볼 때, 이 같은 비극이 다음 세대에 발생하지 않으리라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윤 대표는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역사적 비극이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매주 수요일에 하는 시위가 바로 ‘살아 있는 박물관 교육’이고,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도 서둘러 건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은 후세에게 “너희들에게는 내가 당한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한다. ‘정신대’ 할머니들이 혹한의 날씨에 일본 대사관 앞에 나와야 할 시대적 사명은 바로 비극적 역사에 제동을 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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