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준(화가·교수) 민화(民畵)라는 이름은 일본인 학자 야나기무네요시가 만들었던 것인데 지금까지 그대로 쓰이고 있다. 한국미술사학의 태두, 우현 고유섭의 30주기를 맞아 인천 시립 박물관 앞에 세워진 추모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조선의 미술은 민예적인 것이며 신앙과 생활과 미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조자용 [한민화 서론] 조자용. 김철순 [조선시대민화] 예경산업사 1989, 272쪽) 이것은 훌륭한 길잡이이다. 신앙과 생활과 미술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개념을 찾으면 그것이 바로 조선 미술의 민예적인 정신을 바로 찾을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개념은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마음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때로 범과 표범 한 쌍을 사이좋게 묶어 놓고는 물고기들을 고래만 하게 크게 그린 묘한 작품도 나온다. 민화의 작가들은 물속에 들어가서 물고기와 같이 놀면서 수중극락 세계를 그렸다고 느껴질 정도다. 또 어떤 작품에는 물고기가 매화나무에 올라앉은 모습을 그린 것도 있다. 좋은 상징을 아무 구애 없이 한데 묶어서 마음대로 그린 것이며 화보의 가르침에 따라서 그린 것이 아니다.” (2)조자용 [한국민화의 화제와 해설] 조자용. 김철순 [조선시대민화] 예경산업사 1989, 284쪽)
민화는 궁궐에 납품되는 공무원화가들(도화서)의 그림을 제외하고는 민간 조선 미술시장의 99%의 유통량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이 그림들이 진정한 ‘한국화’라고 불리어야 하나 조선 문인취미화가들은 자신들의 그림과 그다음으로 공무원화가들의 그림들만을 격조가 있는 그림으로 선전해 왔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변치 않고 미술계에 그 이론들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중섭은 사실 민화의 전통을 이은 한국화가이다. 21세기에 그림의 재료로서 동, 서양화를 구분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렸다.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더 뛰어난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그림세계를 개척했으며 이중섭을 비롯해 현대의 한국화가들에게도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우리의 진정한 한국화(민화)는 이제 다시 평가받아야 될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