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낮은 바쁘다. 도로에는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울려 퍼지고,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도시의 밤은 화려하다. 네온 간판이 불을 밝히고, 밤늦게까지 여는 학원과 가게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렇게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마주치는 골목은 한적하고 평화롭다. 집으로 가는 길에 누구나 마주칠 수 있는 익숙한 밤 골목, 그 소소한 풍경을 이채영은 붓에 담는다. 이채영은 그림을 그릴 때 먹을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그림은 더욱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오히려 먹의 농도가 각기 다른 어둠을 표현해 색다른 느낌을 준다. “먹으로 그린 그림 위에 다시 먹을 칠하면서 쌓아가는 과정을 반복해요. 먹이 가진 하나의 색에서 여러 색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것 또한 먹이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채색 작업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작품에는 색이 입혀진 도끼나 밧줄, 뱀 같은 특정적인 요소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그녀가 고요한 그림 속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특정적인 요소들을 배치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단순히 풍경을 아무 의미 없이 그려놓는 것이 아니라 현 시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상징적으로 그림 속에 배치해 놓는 것. “도끼를 그림에 그려 넣을 당시에는 밤에 일어난 여러 사건 사고가 많았어요. 밤이 갖는 극단적인 이미지 속에 흉흉한 세상을 표현해보자는 생각에 도끼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그려 넣게 됐죠. 뱀은 조용하지만 누군가 건드리면 무는 모습이 점점 개인화돼가는 세상 속에서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요소들을 그리면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먹을 사용하기에 전통적인 느낌이 날 것이라 생각했던 그녀의 그림은 오히려 현대적인 느낌을 풍겨 눈길을 끈다. 이는 이채영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고민의 흔적들이다. “먹이라 하면 전통적인 재료라는 느낌이 강하잖아요. 저는 오히려 그 틀을 깨고 먹을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싶었어요. 지금도 계속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에요.” 이채영은 길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이를 그린다. 하지만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추가하고 삭제하면서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공간을 만든다. 하지만 그 공간은 낯설기보다는 꼭 어디선가 본 것처럼 익숙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녀의 그림에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듯하다.
이채영은 그림에 ‘감성’을 담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사람들이 보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감성을 그리고 싶다는 것.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에 주목하고 이를 ‘밤’이라는 이미지 안에 표현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어요. 10년 뒤에도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