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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기업인 - 석금호 산돌커뮤니케이션 대표]“한글은 위대하고 아름다운 자산”

일본서 한글 수입 못 참아 직접 개발, MS·애플·구글에 한글 글꼴 공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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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8호 정의식 기자⁄ 2014.07.24 11:28:39

▲석금호 산돌커뮤니케이션 대표. 사진 = 이성호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불과 30여 년 전만해도 우리나라 모든 인쇄물은 일본에서 수입된 인쇄기계와 한글 글꼴들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한글조차 일본에서 수입하는 지경이었다. 석금호 산돌커뮤니케이션 대표는 분개했고, 과감히 한글 글꼴 제작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로부터 강산이 세 번 바뀐 오늘날,  석 대표와 산돌이 만들어온 수많은 한글 글꼴들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글 글꼴의 선구자인 석 대표를 만나 한글 사랑과 글꼴에 대한 열정을 들어봤다.』


문자는 우리 실생활에 깊숙이 관련돼 있다. 문자의 홍수시대다. 책과 신문, 광고, 포스터 등 인쇄물은 물론 영상물과 교통 표지판, 간판, 컴퓨터와 스마트폰, 그리고 인터넷까지 문자가 없는 곳이 없다. 하지만 이들이 누군가에 의해 디자인되고, 다듬어졌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석금호 산돌커뮤니케이션 대표는 30년간 한글 글꼴(Font, 書體) 분야에 헌신해왔다. 그가 만든 작품은 생활 어디에서나 손쉽게 만날 수 있다. 실생활에서 매일 만나는 한글 글꼴  대부분은 바로 석 대표와 산돌의 작업실에서 만들어졌다.

석 대표가 한글 글꼴 제작이라는 독특한 분야에 뛰어들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이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잡지사였습니다. 세계적인 매체로 당시엔 1500만부를 인쇄할 정도로 규모가 대단했지요. 고등학교 때 처음 이 잡지를 접하고 매력을 느껴서, 1978년 대학을 졸업한 후 이 회사의 아트디렉터, 즉 디자이너로 취업했습니다.”

▲석 대표가 디자인한 글꼴로 만든 회사 창립21주년 기념 명패. 사진 = 이성호 기자


당시만 해도 잡지는 납 활자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석 대표가 취업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인 1979년 경 최신 인쇄 기술인 사진식자(寫眞植字) 기술이 국내에 들어왔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사진식자기가 전국의 인쇄소에 빠르게 설치됐고, 인쇄산업은 일대 변혁기를 맞는다.

“문제는 사진식자기에 한글까지 일본에서 수입했다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사진식자기용 한글 글꼴을 만드는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없었습니다. 이후 15년에서 20년 가까이 일본에서 수입한 한글이 없으면 책 한권도 출판할 수 없는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진식자기에 사용된 명조체, 고딕체 등 한글 글꼴이 모두 일본 기업에서 만들어지던 시대였다. 이 같은 상황이 자존심도 상하고 수치스러워 고민 끝에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쓰고 나왔다. 스스로 한글을 개발해야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1984년 4월 작은 작업실을 열고 혼자 작업을 시작한 것이 산돌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었다. 당연히 초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도서, 방송, 간판 등에 사용된 산돌의 글꼴들. 사진 = 이성호 기자


“만 3년간 하루 세끼 라면만 먹고 살았습니다. 대학에 시간강사로 강의를 나가게 되면서 살림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5년가량 지나니 컴퓨터가 등장해 살 길이 열렸습니다. 그때까지는 강사료로 연명하거나 외주 디자인으로 월세를 냈지요.”


“한글 글꼴, 영어는 물론 한자보다도 어려워”

국내 컴퓨터 산업 초창기에 산돌은 IBM의 레이저프린터용 한글 글꼴을 만들거나 LG그룹의 금성소프트웨어가 만든 ‘하나 워드프로세서’ 등에 한글 글꼴을 공급했다. 그런 가운데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가 국내 시장에도 등장했는데, 전자출판(DTP, DeskTop Publishing) 소프트웨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맥을 이용한 전자출판이 활기를 띠면서 상업용 글꼴 시장도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산돌과 다른 몇몇 회사들이 이 시장에 참여했지요. 아래아한글로 유명한 한글과컴퓨터 이찬진 사장이 방위병 시절일 때 만나서 글꼴 개발 요청을 한 적도 있습니다.”

산돌은 글꼴 분야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혔고, 현재까지 매년 꾸준히 성장하는 안정적인 회사가 됐다.

스티브 잡스가 리드(Reed)대학에서 타이포그라피(typography)를 공부하고, 이후 매킨토시에 아름다운 글꼴들을 대거 추가해 전자출판이라는 산업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석 대표도 홍익대 대학원에서 타이포그라피를 공부했다. 당시 국내에서 타이포그라피를 연구한 사람은 안상수체로 유명한 안상수 교수 등 2~3명에 불과했다.

“안상수 선생이 선배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타이포그라피라는 과목 자체가 없어서, 연구주제로 선택해 같이 배웠죠. 외국 글꼴도 많이 배웠지만, 저는 한글 글꼴을 주로 연구했습니다. 디자인은 물론 가독성을 높이는 방법까지 수많은 책으로 공부했습니다.”

한글 글꼴을 만드는 작업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일단 만들어야 하는 글꼴의 양이 영어같은 문자체계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러다보니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글꼴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영어는 단순한 조형이라 한 개만 작업하면 됩니다.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이 연합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조합을 만들기 때문에 조형을 맞추기가 한자보다 더 어렵습니다. 한자의 경우 박스 속에 딱 들어가는 구조라 조형은 쉽습니다.”

▲도서, 방송, 간판 등에 사용된 산돌의 글꼴들. 사진 = 이성호 기자


석 대표는 알파벳에 비하면 한글 글꼴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알파벳 글꼴 종류는 무려 5만종이 넘고,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고. 그에 비해 한글 글꼴은 몇 천 종에 불과하다. 일본, 중국보다는 서체 분야에서 뒤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품질이다.

“해외도 그렇고 국내도 마찬가지지만, 많은 글꼴들 중에는 품질이 떨어지는 글꼴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제논리에 의해 돈이 된다 하니 싸구려 글꼴을 대량생산하는 기업들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관련 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고, 시대에 흐름에 따라 국민의 눈높이도 계속 높아지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지난 30년간 산돌은 약 600종의 글꼴을 만들었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글꼴 중 약 20% 정도가 산돌 제품이다. 수많은 글꼴들 중에서 석 대표가 특히 아끼는 글꼴로는 먼저 스테디셀러인 ‘산돌 제비체’를 들 수 있다. “제가 디자인한 글꼴로, 책 표지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서점에 가보시면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야심차게 출시한 ‘산돌고딕 네오’ 시리즈도 자랑거리다. 애플의 아이폰, 아이패드에 들어간 글꼴 ‘애플SD고딕’이다.

“애플에서 1년간 안상수 선생에게 한국에서 최고의 품질을 가진 글꼴을 찾으라는 프로젝트를 줬다더군요. 물론 저희는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고, 안상수 선생도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 바 없어서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애플에서 요청이 와서 샘플을 보내줬더니 9가지 웨이트(weight, 굵기)를 모두 채용했습니다.”

윈도우 비스타에서 처음 채용된 ‘맑은고딕’도 산돌이 개발한 글꼴이다. 이전까지 윈도우 운영체제는 굴림체를 기본서체로 사용했었다.

▲1997년 산돌커뮤니케이션이 건설교통부와 도로교통표지판용 폰트 사용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산돌고딕’ 폰트는 전국의 도로 및 공공시설물 표지, 사설 안내 표지, 관광지 안내 표지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사진제공 = 산돌커뮤니케이션


‘제비체’·윈도 ‘맑은고딕’·아이폰 ‘애플SD고딕’ 자랑거리

“굴림체는 일본에서 디자인된 나루체의 세트로 개발된 한글 글꼴이라는 내용을 칼럼을 써서 널리 알렸습니다. 굴림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높아지자 마이크로소프트 한국지사에서 굴림체를 대체하는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는데, 예산 문제로 무산됐습니다. 1년 후 제가 미국 시애틀의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를 직접 방문해 설득했지요. 타이포그라픽팀, 힌팅팀, 기술팀 차례대로 브리핑하고 미팅한 끝에 3일만에 설득에 성공했고, 본사와 직접 계약을 해서 맑은고딕이 윈도우 운영체제에 추가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구글도 산돌의 글꼴을 채용했다. 7월16일 구글은 어도비와 함께 유니코드의 모든 글자를 지원하는 한중일 통합 글꼴 ‘Noto Sans CJK’를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게 공개했는데, 이 글꼴의 한글 부분은 산돌이 담당했다.

현재 산돌의 가장 큰 사업 분야는 기업 시장이다. 삼성그룹, 현대카드 등 여러 기업들이 ‘기업 전용 글꼴’의 개발을 산돌에 의뢰했다.  

특히 삼성그룹은 기업 전용 글꼴을 도입한 최초 사례로, 기업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데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현대카드는 국내 최초로 회사 고유의 국·영문 글꼴을 만들어 프로모션 및 광고에 사용한 사례다. 현대카드 글꼴은 신용카드의 형태와 각도를 모티브로 제작된 고딕 글꼴로, 현대카드만의 차별성과 정체성 확립에 기여했다.
이외에도 산돌은 조선일보, 중앙일보에 신문 전용 글꼴을 공급했다. 웹폰트(WebFont), 게임전용 글꼴, 디지털 기기용 글꼴, 영상 자막용 글꼴, 전자출판 글꼴 등을 수많은 관련 기업들에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네이버 등 인터넷 기업들도 산돌의 글꼴을 라이선스 받아 소비자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기업·전문가 시장은 물론 일반소비자 시장도 공략”

기업·전문가 시장에 비해 일반 소비자 시장은 크지 않은데, 산돌은 향후 일반 소비자 시장에도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지난 4월부터 ‘산돌구름’이라는 명칭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만 연결되면 많은 글꼴을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지요. 글꼴 서비스 플랫폼이 완성된 건 세계 최초의 일입니다.”

이외에도 ‘산돌티움’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다양한 한글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문구류, 스티커 등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일러스트와 타이포그라피가 결합된 ‘바른생활 시리즈’는 카카오톡 등에서 이모티콘으로 제공되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산돌티움 ‘바른생활 시리즈’. 사진 = 이성호 기자


석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글 전도사’다. 한글의 중요성과 위대성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지난 10년간 100회가 넘도록 무료 강의를 진행했고, 앞으로도 계속할 예정이다.

“세종대왕 이도는 백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생각했습니다. 중국의 속국으로 민족적 정체성은 고사하고, 한자를 못 읽어 고통받는 백성들을 보고, 세종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왕으로서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고의 문자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한글을 만들면서 세종은 하루에 3시간 밖에 못 잤고, 늘 병들어 있었습니다. 언어학은 물론 모든 분야의 최고의 학자가 되어야했고, 수많은 반대파들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한글은 그런 노력 끝에 만들어진 우리 민족 최고의 지적 자산입니다.”

석 대표는 이제 한글을 무기로 산돌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울 계획이다. 세계 최초의 글꼴 포털 사이트 ‘폰트클럽(fontclub.co.kr)’이 주된 무기다.

글꼴 분야를 대표하는 5개 나라의 기업들이 서로 돌아가며 만나고 있는데, 내년 4월에는 한국에서 만날 예정이다. 이 기업들이 폰트클럽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조만간 그들과 합작으로 글로벌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한글 우수성 알리는 무료 강의 10년간 진행

“예전엔 우리 기업들만 한글을 필요로 했지만, 요즘은 글로벌 기업들이 다 한글을 필요로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구글은 물론 HP, 어도비 등 산돌의 한글 글꼴을 필요로 하는 기업은 계속 늘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2월7일 석 대표는 일본을 방문했다. 최초의 사진식자기를 발명하고, 과거 한국에 사진식자기를 수출한 바로 그 일본 기업 ‘모리사와’에 산돌의 한글 글꼴을 수출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도쿄의 모리사와 본사에서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에서 석 대표와 모리사와 아키히코 모리사와 대표는 산돌의 한글 폰트를 모리사와의 판매망을 통해 일본 전역에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석 대표는 배석한 30여 명의 일본 기자들에게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한글 서체 개발에 뛰어든 계기가 바로 ‘모리사와’ 때문이었다. 30여 년 만에 모리사와와 대등한 위치에서 협력관계를 맺고, 아시아 지역 글꼴 산업과 문화 교류를 위해 함께 힘을 모으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 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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