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버거맨, 소우자의 즐거운 이야기들
▲‘모니카와 떠나는 세계명화전’ 현장. 사진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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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왕진오 기자) 무겁고 의미 있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 미술 전시장에, 보기만 해도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만화와 캐릭터들이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전시가 줄을 잇고 있다.
허영만의 40년 만화 인생이 담긴 ‘허영만전 - 창작의 비밀’, 그래피티 아티스트 버거맨이 만들어낸 ‘버거월드’ 그리고 브라질 문화의 아이콘 ‘모니카’가 함께하는 ‘세계명화여행전’ 등이다.
콘텐츠 크리에이터 허영만의 40년 ‘창작의 비밀’
‘각시탈’, ‘제7구단’, ‘날아라 슈퍼보드’, ‘타짜’, ‘식객’ 등 40년간 쉼 없이 작품을 만들어 온 만화가 허영만(68)의 만화 작품이 4월 29일∼7월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을 가득 채운다.
예술의전당에 국내 만화가의 작품이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허 화백은 40년간 그린 15만 장의 원화와 5000장이 넘는 드로잉에서 500여 점을 선별했다. 작품 완성까지 끊임없이 기록한 취재노트, 소소한 일상을 만화로 그린 만화일기 등도 공개돼 ‘창작의 비밀’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했다.
전시는 첫 히트작 ‘각시탈’, 시청률 43%를 기록한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 90년대 대중문화의 폭발을 보여준 ‘비트’, 8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타짜’의 원본 만화, 4년간의 구상과 2년여의 취재로 한국 만화사에 우뚝 선 요리 만화 ‘식객’, 80년대 대학생의 필독서 ‘오! 한강’ 등이 전시 메인 테마로 선발됐다.
미술관에는 허 화백의 대표 작품 외에 1974년 발행된 ‘각시탈’의 초판본 원화 149장이 최초로 공개돼 애호가들의 눈길을 끈다. 붓과 펜으로 수정된 터치들, 글귀를 하나하나 따서 붙인 말풍선, 컷마다 빨강 혹은 흰 펜으로 기입한 수정사항, 출판사에 축소와 확대를 요청한 코멘트 등을 생생하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롯데 에비뉴엘 아트홀에 설치된 버거맨의 버거월드 작품. 사진 = 에비뉴엘 아트홀
전시를 준비한 정형탁 큐레이터는 “단순히 허영만의 히트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허영만의 만화 도구, 소장품 화실 벽에 걸린 경구 쪽지, 책상에 붙은 메모지까지 전시장 곳곳에 배치해 그가 한국의 대표적인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입지를 굳히게 된 창작의 비밀과 인간 허영만의 삶까지 고스란히 전할 것”이라고 전시 의도를 설명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허 화백에 대한 오마주 작품이 공개돼 주목을 끈다. 전시 총감독이자 설치미술 작가 한원석은 허영만의 창작이 시작되는 ‘손’에서 영감을 받아 전시장 도입부에 설치 작품을 구성했다.
또한 만화 속 평면적인 주인공들을 입체화한 피규어 ‘각시탈과 무당거미의 이강토’, ‘제7구단의 고릴라’, ‘식객의 성찬’ 등이 전시된다.
또한 1988년부터 허영만 화실에서 2년을 함께한 제자 윤태호가 그린 허영만의 작품 ‘벽’, ‘망치’의 컷들이 공개되는 한편, 윤태호의 ‘이끼’, ‘미생’, ‘파인’ 원화도 함께한다.
여기에 만화라는 형식을 작품 속에 도입하고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합성한 캐릭터인 ‘아토마우스’로 유명한 팝아티스트 이동기의 대형 작품이 함께 설치돼, 만화가 현대미술에서 실험적인 형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늘어진 팔과 다리,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눈을 가진 몬스터 캐릭터들은 괴상하지만 정감 넘치는 모습으로 화면에 등장한다. 이 캐릭터들은 영국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존 버거(Jon Burgerman, 36)이 낙서로 그린 작품이다.
예측 불가능한 유희적 공간으로 만드는 버거월드
4월 2∼23일 에비뉴엘 아트홀, 4월 26일∼5월 30일 롯데갤러리 광복점, 6월 3∼23일 롯데갤러리 영등포점의 전시는 벽에 낙서하듯 거칠고 자유로운 선으로 일상을 모습들을 그린 ‘버거월드(Burger World)’를 공개한다.
버거맨은 일상적인 것들에 일탈과 해방의 숨결을 불어넣어 거칠지만 귀엽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논리적 틀을 벗어난 기괴한 생명체로 가득한 버거월드는 우리의 사고를 전복시키고, 예측 불가능한 유희 공간을 탄생시킨다.
시선을 사로잡는 다채로운 비주얼을 사용하는 작가는 대중문화를 그의 작품에 인용하고 또 동시에 대중문화에 위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어디에 걸려 있더라도 버거맨의 작품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심미적 특성은 캔버스, 벽, 조각, 장난감, 의상, 애니메이션, 디자인, 프린트, 문신, 드로잉 등 다양한 형태로 표출된다.
버거맨은 “즐기는 마음으로 하는 창의적 행위를 통해, 예술이 개개인의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되고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바꾸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존 버거맨의 작품은 영국왕립 빅토리아 알버트 미술관을 비롯해 세계 도처의 기관과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그는 나이키, 퓨마, 삼성, 코카콜라, 소니, 펩시, 리바이스, BBC방송, AOL, MTV, Rip Curl 등 다국적 기업과 상업적 컬래버레이션을 한 바 있다.
브라질의 국민캐릭터 모니카와 함께하는 명화 여행
‘남미의 월트 디즈니’로 불리는 브라질 만화의 거장 마우리시우 지 소우자(Mauricio de Sousa, 80세)의 대표적인 캐릭터 모니카가 명화 속 주인공으로 변신해 한국을 찾았다.
4월 7일∼8월 23일 경기도미술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하는 ‘모니카와 떠나는 세계명화 여행전’은 소우자가 인류의 보물인 세계 명화를 자신만의 캐릭터인 모니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51점의 그림 및 조각과, 오리지널 그림 50점 등 모두 250여 점으로 구성됐다.
전시는 ‘골목대장 모니카’의 초창기 탄생 순간부터 세계적 캐릭터로 성장해가는 모습들을 보여주며, 다빈치의 ‘모나리자’,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 명화 속으로 모니카가 들어간 익살스런 그림들이 함께 한다.
또한 한국 전시를 위해 한국의 명화를 바탕으로 구성한 신작 3점이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단원 김홍도의 ‘서당’을 패러디한 ‘스승과 그의 제자들’,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각색한 ‘모니카와 친구들의 목욕하는 풍경’, ‘미인도’의 여인을 모니카로 변신시킨 ‘아름다운 모니카’가 그것이다.
작가의 대표작 ‘골목대장 모니카’는 신문 연재 만화에서 출판 만화로 발전했고 13개 언어로 번역돼 40개국에 수출됐다. 만화뿐 아니라 TV용, 비디오용 애니메이션이 15편 이상 제작됐다.
▲모니카 캐릭터와 함께한 마우리시우 소우자. 사진 = 왕진오 기자
브라질의 국민 만화 캐릭터로 인정받은 모니카는 현재 파라마운트, 킴벌리 등 120여 글로벌 기업들이 3500가지가 넘는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또 상파울루의 ‘모니카 파크’라는 테마파크는 모니카가 등장하는 연극, 뮤지컬을 공연하고 있다.
소우자는 모니카가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됐다고 밝혔다. 1980년대 말 어느 날 브라질 상파울루 미술관을 방문한 소우자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에 이끌려 발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던 중 “창의성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예술, 특히 명화를 알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소우자는 모니카를 비롯한 다양한 캐릭터들을 명화 곁으로 불러와, 르누아르의 그림은 물론이고,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 명화를 설명해나갔다. 반 고흐, 산드로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벨라스케스, 프란시스 고야까지 이야기는 이어졌고 예술가와 친구가 되어 함께 즐기는 ‘명화 놀이’가 탄생했다.
모니카와 명화가 함께 등장하는 전시회는, 소우자의 40여 점 회화와 조각 작품을 토대로 2001년 10월 상파울루 주 피나코테카에서 ‘명화 속의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그는 “내 만화는 많은 점에서 디즈니와 달라요. 나는 만화에 일체 돈 이야기를 넣지 않죠. 어린이들에게 돈이 최고의 가치라고 가르치고 싶지 않아서이지요. 그보다 우정, 사회성을 이야기합니다. 또 가족과 단절돼 주인공에게만 하이라이트를 비추는 다른 만화와는 달리 가족 간 유대 관계를 그립니다. 어린이에게 희망과 삶을 긍정하는 기쁨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MSP(마우리시우 지 소우자 프로덕션)를 설립해 디즈니를 누르면서 브라질 만화 시장의 80%를 점유하는 세계 4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키워냈다. 또 작품 세계를 인정받아 만화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옐로우 키드’ 상을 수상했고, ‘일본 만화의 신’으로 불리는 오츠카 데사무와 평생 우정을 나눴다.
소우자의 모니카는 1963년 당시 4살이던 자신의 딸을 관찰해 말괄량이에 골목대장인 캐릭터로 창조됐다. 미국의 미키 마우스, 일본의 헬로키티처럼 50년을 장수한 캐릭터다. 모니카가 50년간 끊임없이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은 비결에는 작가의 가족 사랑이 깔려 있다.
그의 자녀들은 1959년생인 큰딸부터 현재 14살인 막내까지 무려 10명이나 된다. 10명 모두 화가와 음악가 등으로 예술 분야에 종사하며, 이 중 6명은 소우자 프로덕션에서 근무한다.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