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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토이 덕후 ⑨ 어수진] “타 없어져가며 새 창조 이루는 아트캔들에 훅”

온통 검정 아트캔들로 나를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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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43호 김금영⁄ 2017.07.07 10:03:18

아트벤처스로부터 ‘2017 아트토이컬쳐’ 참여 작가 중 주목 작가를 추천 받아 소개하는 ‘아트토이 덕후’ 시리즈의 아홉 번째 주인공은 어수진 작가다.


▲어수진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2017 아트토이컬쳐’ 현장은 전반적으로 아기자기하고 밝은 느낌이었다. 환한 조명 아래 다양한 아트토이가 여러 형태로 관람객들을 반겼다. 그런데 그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공간이 있었다. 다른 곳들은 새하얀 부스가 콘셉트였는데, 마치 흰 도화지에 검은 점 하나가 찍힌 듯, 새까만 사각 큐브 공간이 눈에 띄었다. 겉에서 봐도, 안쪽을 봐도 검은색이 가득했다.


부스 안에 들어가면 더 강렬한 작품들이 보였다. 해골, 코브라, 심장 등 조형물이 전시 공간을 채웠다. 이 공간에특히 열광한 건 젊은 층이었다. “멋있다”면서 사진을 찍는 풍경이 전시 기간 내내 이어졌다.


▲'2017 아트토이컬쳐' 현장에 마련된 칼리프애쉬의 부스.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였던 아트토이컬쳐 현장에서 올 블랙 부스로 눈길을 끌었다.(사진=칼리프애쉬)

이 공간은 칼리프애쉬의 부스였다. 칼리프애쉬는 사람들에게 선글라스, 액세서리, 가죽 제품을 다루는 브랜드로 많이 알려졌다. 방송인 하하와 사진작가 오중석 등 4인이 공동 대표를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블랙과 다크, 고딕을 기본 콘셉트로 클래식하고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브랜드다. 100% 핸드메이드 공법의 디자인을 지향하며, 뉴욕, 파리, 런던 등 세계 유명 패션쇼에 참가해 브랜드 디그낙, 알로곤과 함께 서울패션위크에서도 협업 라인을 선보인 바 있다. 그런데 제품 출시만이 칼리프애쉬의 전부가 아니다. 칼리프애쉬는 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 발굴 및 협업에도 힘을 기울여 왔다.


▲어수진, '유니혼(Unihorn)'.(사진=칼리프애쉬)

올해 아트토이컬쳐의 전시에 참여한 어수진 작가 또한 칼리프애쉬가 발굴한 작가다. 칼리프애쉬의 소속 작가로 다양한 창작 활동을 펼치는데, 특히 이번 전시에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해골, 코브라 등의 조형물이 바로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냥 보면 단순한 조형물 같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이 작품들이 모두 양초라는 걸 발견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아트캔들’이라 설명했다.


“아트캔들은 쉽게 말해서 조각을 해서 만드는 양초예요. 어디서 보고 들어서 쓰는 용어는 아니에요. 양초의 실용적인 기능보다는 작품으로서의 전시 특성을 강조하는 작업에 맞는 용어라고 생각해 사용하게 됐죠. 한국에서 예술품으로서의 양초 작업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표면상 잘 부각돼 있진 않다고 느꼈어요. 조소를 전공하고 조형 작업에 몰두해 왔는데, 지금 제가 가장 몰두하고 있는 게 바로 아트캔들이에요.”


작가는 본래 30cm의 작은 크기부터 3m에 이르는 피규어와 스태츄 작업을 했다. 인기 히어로물이나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을 캡처한 듯 현실에 구현하는 작업을 주로 해 왔다. ‘엑스맨’의 초능력자들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반지의 제왕’ 등도 모티브로 삼아 작업을 했다. 손으로 갖고 놀 수 있는 피규어를 비롯해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전시용 스태츄도 뚝딱뚝딱 만들어 냈다. 그런데 어쩌다가 아트캔들에 빠지게 됐을까?


예측할 수 없는 형태가 작가의 오기를 발동시키다


▲어수진, '로사리오(Rosario)'.(사진=칼리프애쉬)

“스태츄 작업을 할 때 많은 의뢰를 받았어요. 전 세계적으로 히어로물과 판타지 영화가 인기가 많은 만큼, 관련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때 독특한 분들을 만났어요. 소위 상위 1% 컬렉터라 불리는 분들이에요. 돈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갖고 있는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작품을 구입할 정도로 작품에 대한 애정이 큰 분들이에요. 그런데 이 분들이 제 작업을 보고 ‘이 모양 그대로인 양초도 갖고 싶다’고 했어요. 아마 작품을 더 다양한 형태로 갖고 싶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주위의 말과 더불어 작가의 마음에 양초가 들어온 계기도 있었다. 양초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자료를 찾다가 프랑스의 한 전시 자료를 발견했다. 전시장에 실제 사람과 똑같은 크기의 조형물이 양초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 양초를 전시 기간 내내 태우는 게 콘셉트였다. 그래서 전시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 그리고 나올 때 본 조형물의 형태는 달라져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 형태 또한 예측할 수 없었다. 여기서 묘한 매력을 느꼈다고.


▲어수진, '혼_스컬(Horn_Skull)'.(사진=칼리프애쉬)

“양초를 보다보니 정말 매력 있는 소재라는 생각이 점점 들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트캔들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건 칼리프애쉬 덕분이에요. 적극적으로 아트캔들에 관심을 보였고, 같이 작업해보자고 제의를 해줬죠. 또 제 도전의식도 자극했어요. 저는 주위에서 ‘그게 되겠어?’ ‘힘들잖아, 다른 거 해’ 하면 오히려 오기가 생기는 스타일이에요. 생각대로 형태가 나오지 않아서 한 6개월 정도 작품이 하나도 나오지 못했을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절망감이 들기보다는 진짜로 ‘이거 한 번 해보자’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악바리 정신으로 아트캔들 작업을 이어 왔다. 형태 또한 갖추기 시작했다. 조각을 베이스로 원형을 만들고 1차 캐스트(원형 물체가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 퇴적물이 채워져 원형 물체의 모습을 복원하는 작용) 작업을 거쳐 틀을 만들고, 이후 2차 캐스트를 거쳐 양초를 만들어 간다. 양초를 떠낸 다음엔 하나하나 손으로 깎아 형태를 만들어 간다. “그냥 편하게 틀을 쓰는 건 어떠냐”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손으로 하나하나 깎은 디테일과는 비교할 수 없단다.


▲'2017 아트토이컬쳐' 칼리프애쉬 부스에도 어수진 작가의 아트캔들이 전시됐다. 사진은 부스를 방문한 사람들이 작품을 살펴보는 모습.(사진=칼리프애쉬)

“양초라는 재료 자체가 만만치 않아요. 그동안 조형 작업을 하면서 수많은 재료들을 접해 봤는데 정말 까다로운 재료 중 하나예요. 조각 자체가 파기되는 경우도 많아서 아예 디자인 자체를 바꿔야 할 때도 많죠. 그래서 완성됐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더욱 커요. 또 까다로운 재료의 특성이 완성된 작품엔 새로운 매력으로 탄생하는 아이러니가 있어요. 피규어를 만들면 그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가도 그 형태를 유지하죠. 그런데 아트캔들 작업은 가져간 사람이 불을 붙이면, 흘러내리면서 다른 형태를 띠게 돼요. 100개의 양초가 모두 다른 형태로 녹아내려요. 이것 또한 새로운 창작 활동이죠.”


아트캔들이라는 소재 자체도 그렇지만 또 작업에서 눈길을 끄는 점이 있다. 작가의 아트캔들은 모두 검은색이다. 작가는 검은색을 좋아한다고 한다. 인터뷰 때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 블랙 아이템을 착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여기에도 작가의 오기가 있었다.


▲어수진, '아수라(Asura)'.(사진=칼리프애쉬)

“양초로 작업을 할 때 가장 조형적인 미를 보여주기 힘든 게 검은색이에요. 톤 다운된 검은색은 정말 열심히 깎아도 그 입체적인 형태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아요. 코브라 형태를 만들 땐 비늘 하나하나가 잘 보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정말 생노동이었죠. 그런데 그러니까 더 검은색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체 검은색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이 멋있는 검은색으로 더 멋있는 아트캔들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검은색을 입고 다양한 아트캔들이 탄생했다. 올해 아트토이컬쳐에서 처음 선보인 여덟 수호신 중 하나인 아수라 작업도 눈길을 끌었다. 뿐만 아니라 예수, 부처 등 종교를 넘나드는 듯한 조형물이 한 공간에 모여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수진, '하트(Heart)'.(사진=칼리프애쉬)

“저도 종교가 있지만, 작업을 할 때만큼은 종교에서 자유롭고 싶었어요. 전시를 보고 한 분이 ‘이건 신념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는 예술로서 제 작품을 봐주기를 바랐어요. 예술에 대해 ‘이렇게 하면 틀린 것이다’라는 이분법적 시각을 갖고 싶지 않았거든요. ‘네 이야기도 맞아’ ‘네 이야기도 존중할게’ ‘내 이야기도 들어볼래?’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작업에 눈을 찌푸렸던 그 분이 나중엔 ‘이제 작품으로 보인다’고 말했을 때 특별한 느낌을 받았어요. 작품으로 소통한 느낌이요.”


이밖에 강렬한 이미지를 택하는 건 작가의 선호도가 반영됐다. 작가는 “양초라는 재료를 더 강렬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다. 기괴한 가운데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팀 버튼 감독의 스타일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며 “과거와 비교해 기술만 달라졌지, 감독 자체가 보여주는 어두운 분위기 가운데 전해주는 따뜻한 감성이 좋다. 관련해 평소에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이미지나 자료를 찾아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작업의 시작은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칼리프애쉬의 선글라스 제품 등과 어수진 작가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 모습.(사진=칼리프애쉬)

작가의 아트캔들 작업은 칼리프애쉬에서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 다양한 연령층이 아트캔들 작업에 관심을 보이지만 특히 젊은 층의 선호도가 높다. 이는 칼리프애쉬 브랜드 자체에 넘치는 시크하고 자유로운 스웨그에서도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스웨그 넘치는 자유로운 문화로 대표적으로 이야기되는 힙합이 다시 대중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대표 프로그램인 ‘쇼 미 더 머니’가 시즌6 방송을 최근 시작했고, 참가자 연령대 또한 중고등학생을 비롯해 초등학생까지 어려진 점이 눈길을 끌었다. 관련해 작가는 “사람들이 점점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수진, '킹 코브라(King Kobra)'.(사진=칼리프애쉬)

“과거 한국 사회는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주위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강했어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배려하고 존중하느라 정작 자신의 할 말은 하지 못했죠.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 달라진 걸 느껴요. ‘하고 싶은 말은 한다’는 토대 아래 힙합의 디스 문화에도 열광했고, 1인 식당, 1인 출판 등 1인 세대 문화도 등장했죠.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해골, 코브라 등 강렬한 작업 이미지를 좋아한 사람들이 있었을 거예요. 다만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나 저거 좋아해’라고 못한 거죠. 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지금의 시대 흐름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 흐름에 따라 더 다양한 형태의 예술이 주목받기 시작했으니까요.”


작가는 “자기애(愛)가 작업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고도 강조했다. 작가 또한 남들의 눈치만 보고, 거절을 잘 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교 때 만난 한 교수가 건넨 한 마디가 가슴에 남았다. 교수는 “너는 무엇을 하고 싶니?”라고 물었다.


▲어수진, '스컬_지져스(Skull_Jesus)'.(사진=칼리프애쉬)

“저는 굉장히 소극적인 성격이었어요. 그래서 대학교 때 토론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했어요. 제 의견을 내본 적이 없기에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교수님이 ‘너는 왜 가족, 친구 이야기만 하니?’ ‘너는 무엇을 좋아하니?’ ‘너는 뭘 하고 싶니?’라고 물으며 ‘너는 너를 많이 사랑해야 해’라고 말해줬어요. 그때 처음 느꼈어요. 제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 어떻게 좋은 작업이 나올 수 있을까요? 기술적인 문제보다 제 내면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서 좋아하고 하고싶은 마음이 우러나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성격이 조금씩 바뀐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기애가 핑계가 돼서는 안 된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요즘 욜로족이 뜨고 있다.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작가 또한 하고 싶은 것을 따라갔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선순위가 있었다. 작가에게 우선순위는 작업이었다. 작업을 할 때면 행복해서 안정적인 삶, 충분한 수면 등은 포기해야 했다.


▲어수진 작가의 아트캔들 작품들. 올 블랙 색상에 강렬한 이미지가 특징이다.(사진=칼리프애쉬)

“지금 현재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나 학교 안 갈래’ 식으로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예요. 정말 하고싶은 것에 대한 확신 없이 ‘될 대로 돼라’는 현실도피적인 핑계가 될 위험성이 있어요. 저는 정말 하고싶은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를 위해 나머지를 포기할 각오를 제대로 갖추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아무런 노력없이 행복이 따라오지는 않아요. 그만한 각오와 마음가짐을 갖춰야죠.”


작가는 또 새로운 도전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1인 출판 작업을 하는 친구와 함께 책을 발간할 계획이다. 본래 조형 작업이 주였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드로잉 작업도 보여줄 예정이다. 영상 작업에도 관심이 있어서 공부하고 있고, 다양한 컬래버레이션도 해보고 싶다고.


“생계형 작업자라 부르는 친구들이 있어요. 타투, 일러스트 등 여러 분야에 몸담고 있는데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친구들이에요.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이 분야에 평생 몸담을 각오를 했죠. 이 친구들과 끝까지 소통하고, 서로 좋은 기회가 닿으면 작업도 하고, 연계도 시켜주면서 꾸준히 가고 싶은 게 제 꿈이에요. 하반기에 출판 작업을 하는 것도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죠. 정말 다른 사람들끼리 예술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어요. 아트캔들을 기반으로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계속 찾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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