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상 골프만사] 내 골프 실력은? 꼼꼼한 기록에서 나온다
(CNB저널 = 김덕상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명예이사장) 옛 무덤 속의 작은 기록 하나가 몇 천년 후 중요한 역사적 증거가 되기도 하고,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적은 어느 일본인의 메모 한 장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이렇게 기록은 엄청난 영향력을 갖기도 하며 또한 디테일의 힘을 과시하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운동에는 전혀 재능이 없고, 파워도 부족했으며,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학급 대표로 뛰어본 경험이 없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골프만은 늘 대표 선수로 꼽힐 수 있었던 것에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노력한 이유가 크지만, 기록의 힘이 큰 재산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오래 전 ‘골프 다이제스트’ 잡지에 대한민국 골프광의 한 사람으로 소개됐다. 그 당시 15년간 1000여 라운드 기록을 다 갖고 있어 기록의 편집광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에 외국 골프장에서 만난 골퍼가 내가 기록하는 특별한 스코어 카드를 보며 이렇게 물었다.
“매 홀 매 샷을 다 적는데, 그러면 현재까지 라운드를 몇 번이나 했고, 라이프 평균타는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네, 오늘이 1209번째 라운드이고 라이프 평균타는 84.45타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혹시 농담이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었다. 물론 농담은 아니다. 컴퓨터에 이 모든 기록을 다 저장해 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골프 일기를 쓰다가 조금씩 진화돼 매 샷을 분석해 기록하니 나의 능력과 플레이 패턴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됐다. 그때쯤 미국 ESPN에서 골퍼들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는데, 나는 호쾌한 장타자(swash buckler)가 아니었고, 창조적인 샷을 만들어 치는 멋(stylist)도 없었으며, 일관성 있는 정확한 스윙(technician)을 구사하지도 못했다.
▲한 골퍼가 골프를 즐기고 있다. 사진은 기사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사진 = 연합뉴스
결국 나는 확률에 따라 골프 하는 퍼센티지 골퍼(percentage golfer)일 수밖에 없었고, 좋게 말하면 전략 골프(strategist)를 하게 된 것이다. 과거에 소렌스탐이 컴퓨터 전문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모두 기록하고, 기록에 의한 통계의 골프를 쳐서 골프 여제로 등극한 것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골프 일기 → 매 샷 분석 → 내 능력과 플레이 패턴 파악
나는 기록을 통해 나의 한계와 플레이 속성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었기에, 구력에 비해 전략 수립이나 마인드 콘트롤에 매우 유리했다. 장타자와 거리 경쟁을 할 필요도 없었고, 멋진 스윙을 가진 동반자들에게 주눅이 들지도 않았다. 비록 버디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더블 보기나 그 이상 망가지는 홀이 별로 없었으므로 안정적인 스코어의 유지가 가능했다.
대부분 아마추어들은 자신의 골프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그릇된 환상을 갖고 있다. 어쩌다 맞은 250야드 티샷을 평균 비거리로 여긴다거나 1년에 한 번짜리 벙커 샷 파 세이브도 수시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한다. 이런 판단은 자신의 골프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걸림돌이 돼 “혹시 하며 갔다가 역시 하며 돌아오는” 골프가 되게 만든다.
자신의 골프 실력을 판단하는 기준을 삼기에는 기록만한 것이 없다. 다이어리를 쓰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간단한 메모를 모아두는 것부터 시작해도 무방하다. 기록은 또한 역사가 된다. 골프와 함께한 순간들과 추억, 그리고 실력이 향상된 스코어 카드들이 모여 세상에 둘도 없는 자신의 아름다운 골프 역사가 되는 것이다. 결국 기록(記)하면 기획(企)이 쉽고, 기본(基)을 충실하게 해 기술(技)이 늘게 된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덕상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명예이사장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