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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 속 촛불이 눈길 끈 이유

죽음 불사 사랑 뒤의 시대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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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71호 김금영⁄ 2018.01.19 09:46:09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에서 마리 역의 민경아(왼쪽), 루돌프 역의 수호가 열연 중이다. 이들을 둘러싼 촛불에 눈길이 간다.(사진=EMK뮤지컬컴퍼니)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공연 제목이 ‘황태자 루돌프’에서 ‘더 라스트 키스’로 바뀌었을 당시 로맨틱한 이미지가 한껏 강해졌다고 느꼈다.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알려진 합스부르크 황후 엘리자벳의 아들 황태자 루돌프와, 그가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 마리 베체라가 마이얼링의 별장에서 동반 자살한 실제 사건이 모티브가 됐다는 것도 여기에 한몫 했다. 죽음까지도 불사한 사랑. 감정이 갈수록 삭막해져가는 시대에서 이 얼마나 로맨틱하고 열정적인 사랑인가.


하지만 ‘더 라스트 키스’를 직접 마주하면서 느낀 건 단지 로맨틱함뿐만이 아니었다. 1888년 오스트리아 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이야기가 2018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과도 맞닿아 가슴 뛰게 만든 것. 공연의 중심에는 루돌프와 마리 베체라의 애절한 사랑이 있지만, 이 사랑을 더욱 뜨겁게 만든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극 중 루돌프는 아버지인 요제프 황제와 대립한다. 요제프 황제는 보수주의적 성향으로 그 무엇보다도 왕권의 위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이를 지키려한다. 시대를 앞선 진보주의적 사상을 가진 루돌프는 늘 아버지와 의견이 대립한다.


▲극 중 황제 요제프(왼쪽, 송용태 분)와 아들 루돌프(정택운 분)는 다른 사상으로 갈등을 겪는다.(사진=EMK뮤지컬컴퍼니)

공연 도중 지독한 생활고에 자살한 하층민을 지켜본 부자(父子)의 태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요제프 황제는 시신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사건을 보도한 언론을 통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루돌프는 바로 죽음의 현장에 달려가고, 언론을 통제하려는 아버지에 “왜 저 사람이 저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는지 궁금하지도 않냐”며 국민들의 삶을 돌아볼 것을 외친다.


루돌프의 이런 사상에 공감하는 이가 바로 마리 베체라. 루돌프와 같이 국민의 죽음을 지켜본 마리는 “매일 서서히 죽어 가느니 차라리 한 번에 눈 감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며 귀족계층만 배부르고 하층민은 더욱 굶어가는 현실을 비판한다. 그리고 권위만 내세우는 왕가가 아닌, 진정으로 국민을 굽어 살피고 존중해야 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외친다.


이 가운데 또 눈길을 끄는 인물이 바로 타페 수상. 요제프 황제의 수하로, 황실의 변화를 주장하고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루돌프를 항시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마디로 비선 실세. 타페 수상의 한 마디는 요제프 황제와도 맞먹는 권력을 지녔고, 이런 타페 수상을 황제 또한 자신의 수족인 양 의지한다.


▲극 중 루돌프(오른쪽, 수호 분)는 왕권의 권위만 중요시하는 가운데 굶어 죽어가는 국민들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사진=EMK뮤지컬컴퍼니)

2016년과 2017년.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대통령을 둘러싼 비선 실세, 권력 남용 논란이 불거졌고, 여기에 언론 통제와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까지 터져 나왔다. 그래서일까. 극 중 “황실은 무너져가는 제국주의를 붙들고 있지 말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변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사설을 실은 언론사를 타페 수상이 뒤로 불러서 광고를 끊어버리겠다는 압박을 가하고, 나중엔 언론사에 불까지 지르는 모습은 그렇게 멀리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오늘날 우리가 겪어야 했던 모습 아닌가.


오늘날에는 건물에 불을 지르지는 않았다. 보도 윤리를 지키지 못하게, 올바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더욱 악랄한 수단이 있었다. 이에 언론사들은 보도 윤리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파업을 이어갔다. 배우 정우성은 파업 중인 KBS 노조를 격려해 화제가 됐고, 최근 “다시 한 번 꽃길 걷는 MBC가 되기를 응원하겠다. 제가 있던 고향에도 봄바람이 불기를 바란다”는 전현무의 대상 수상 소감 또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시대를 뛰어넘어 올바른 나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음이 문득 느껴지는 지점이었다.


이 가운데 유독 공연은 불을 밝히는 장면이 많다. 공연 초반 전기를 이용해 환하게 불을 밝힌 왕가부터, 루돌프가 시민에게 연설을 하는 장면,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것이 공연 마지막 루돌프와 마리를 둘러싼 자그마한 촛불들이다. 대형 극장에서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한 세트에 조명까지 눈부신 장면. 여기에서 당시의 최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해 전기불빛을 밝힌 귀족들의 모습은 겉보기에는 한없이 눈부시다. 하지만 눈이 부셔서 그 이면에 속한 국민들의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눈가리개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바뀌지 않는 현실에 절망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던 루돌프(가운데, 카이 분)는 사랑하는 마리의 격려로 국민을 위한 목소리를 내게 된다.(사진=EMK뮤지컬컴퍼니)

겉만 화려한 이 불빛 속 정작 나라의 앞길을 위한 눈은 밝히지 못하는 기득권층에 루돌프는 절망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한없이 어두워 보이는 그의 주위를 밝혀주는 자그마한 촛불이 있었다. 바로 마리. 거대한 제국주의 앞에서 마리라는 개인은 한없이 작은 존재였지만, 루돌프가 포기하지 않고 왕실의 변혁을 주장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항상 격려했다. 여기에 힘을 얻은 루돌프는 처음엔 숨어서 목소리를 내다가 더 이상 뒤에 숨지 않고 국민 앞에서 직접 연설을 한다. 그리고 처음엔 작았던 국민들의 목소리가 루돌프가 연설한 광장에서 하나둘씩 모여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마치 2016년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의 함성처럼.


극 중 이 촛불은 마지막에 이르러 조용한 침묵 속에 조금씩 꺼져 갔지만, 루돌프와 마리의 이야기는 2018년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한국 또한 2016년 ‘촛불 시민’의 힘을 보여줬고, 그 촛불의 따뜻함은 아직까지도 시민들의 마음을 밝히고 있다.


루돌프와 마리의 사랑은 뜨거웠다. 그리고 극 중 자신들의 소신을 잃지 않고 진정한 자유와 권리를 위해 부르짖는 목소리는 더욱 뜨거웠다. 그들의 로맨스가 그저 그런 뻔한 신파 로맨스로 이야기될 수 없는, 2018년 우리의 현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공연은 LG아트센터에서 3월 1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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