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영⁄ 2020.05.11 15:53:11
30톤에 이어 300톤, 불가능해 보였던 이 양이 모두 팔렸다. 신세계그룹과 백종원이 어려운 농가를 돕기 위해 손을 잡은 결과다. 최근 SBS 예능 프로그램 ‘맛남의 광장’에 출연 중인 백종원은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폐기 처분 위기에 놓인 왕고구마 판매를 도와달라고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에게 제안했다. 이에 신세계그룹은 300여 톤의 고구마를 매입했고, 신세계 이마트는 SSG닷컴, 이마트에브리데이 등 그룹 내 관계사들과 함께 왕고구마 판매에 나섰다.
백종원과 정 부회장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도 이 방송을 통해 강원도 강릉에서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못난이 감자 30톤을 신세계그룹이 매입했다. 당시 정 부회장은 백종원과의 통화에서 “안 팔리면 제가 다 먹겠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어려운 농가를 돕는다는 취지에 공감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감자와 고구마 모두 완판 세례를 이뤘다.
올 초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경기가 위축되고 개학 시기도 늦춰지면서 출하시기에 판로를 찾지 못한 농산물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신세계그룹뿐 아니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 지원 및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판매 플랫폼 제공, 내부적 기부 움직임, 컬래버레이션 등 유형도 다양하다.
신세계그룹이 SBS ‘맛남의 광장’과 협업했다면, CJ ENM 오쇼핑부문은 MBC 예능 프로그램 ‘끼리끼리’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끼리끼리’에 출연 중인 멤버 10명 전원이 CJ오쇼핑 채널에 출연해 농산물을 판매한 것. 이용진, 광희, 정혁, 인교진, 하승진은 해남 전복과 부여 방울토마토를, 박명수, 장성규, 은지원, 성규, 이수혁은 춘천 아스파라거스와 파주 화훼를 소개했다. 특히 방송에서 선보인 농산물은 ‘끼리끼리’ 출연 멤버들이 직접 수확하고 상품화한 것들로 주목받았다. 멤버 전원은 4월 초 4개 팀으로 나뉘어 전국에 있는 농가를 방문해 일손을 도우며 제품을 수확한 바 있다.
홈쇼핑 방송 특성을 살려 장성규는 지도를 배경으로 실시간 지역별 구매 추이를 방송 중간 중간 공개하고, 박명수는 건강에 좋은 아스파라거스를 홍보하며 생으로 먹는 모습까지 보여주는 등 흥미를 끌만한 예능적 요소까지 곁들였다. 결과는 완판. 국내 농가 살리기 1차, 2차 방송 상품들은 전체 매진을 기록했다.
CJ ENM 오쇼핑부문 측은 “최근 코로나19로 판로 축소와 매출 감소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를 돕기 위해 이번 방송을 기획했다. 상품은 시중가 대비 20~40% 저렴한 가격에 선보여 소비자들도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었다”며 “힘든 농가를 지원하며 상생을 실천하고, 콘텐츠와 커머스의 만남을 통해 홈쇼핑 소비자에게 즐거운 방송을 제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들을 앞으로도 적극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LG유플러스는 온라인에 판매 플랫폼을 마련했다. 4월 29일 ‘U+로드 온라인 장터’를 개장해 8주간 운영한다. U+로드는 LG유플러스가 골목 상권과 제휴해 할인, 경품 이벤트 등을 제공하며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을 목표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2018년 서촌마을에서 처음 시작한 이후 중구 필동, 인천개항장, 경리단길 등 수도권 지역과 부산 해운대 해리단길에서 진행한 바 있다.
LG유플러스 측은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비대면) 소비 트렌드 확산에 발맞춰 U+로드를 온라인에서 운영하고, 매출 하락으로 어려움에 처한 국내 농가를 돕기 위해 농산물 장터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온라인 장터는 LG유플러스가 농가와 직접 거래해 구매한 농산물을 고객에게 할인된 가격에 배송비도 무료로 제공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판매 농산물이 공개되며, 공개 동시에 2000개 한정수량 선착순 판매된다. 여기에 농심도 힘을 보탰다. 농심 후원으로 구매 고객에게는 각 농산물을 이용해 함께 요리할 수 있는 ‘짜왕건면’, ‘칼빔면’ 등 라면을 무료로 제공한다.
감자 30톤에 이어 고구마 300톤 완판이 보여주는 것
또 고객이 U+로드 온라인 장터에서 농산물 구매에 쓴 금액의 절반만큼 LG유플러스에서 별도 재원을 마련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부해 공생의 취지를 더했다. 기부금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용될 계획이다. 온라인장터 1회차로 마련됐던 신안 대파는 준비된 수량 2000개를 21분 만에 완판시키는 성과를 이뤘다.
LG유플러스 측은 “온라인 장터 개장 시작과 함께 2500명이 동시에 구매에 나서며 순간적으로 접속 대기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며 “농가와 직접 거래해 저렴하고 신선한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과, 위기에 처한 농가를 돕고 기부도 하는 ‘착한 소비’에 동참하기 위한 고객의 참여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KT는 내부적으로 농가 돕기에 나섰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결정된 온라인 개학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급식 납품업체에서 구매한 ‘사랑의 농산물 꾸러미’ 1000개를 임직원에게 판매했다. 사랑의 농산물 꾸러미는 급식 납품업체로부터 구매한 채소 10종으로 구성한 농산물 세트다. KT에 따르면 서울 친환경 유통센터의 추천을 받아 피해가 가장 심각한 생산자 단체 두 개를 이번 오프라인 장터 참가사로 선정했다.
농산물의 원가는 2만원이나 임직원에게 1만원에 판매하고, 실제 가격과의 차액은 회사 차원에서 지원하는 형태다. KT그룹 사내 복지몰을 통해 5월 6~15일 10일간 농산물 꾸러미 5000개를 추가로 판매할 계획이다. 이번 농산물 꾸러미를 준비한 농업회사법인웰팜넷 양승기 대표는 “온라인 개학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직원 월급까지 걱정하는 상황이었다”며 “KT에서 우리 업체에 먼저 손을 내밀어줘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KT 측은 “급식 납품업체들은 3월부터 개학 준비에 나서야 했으나, 온라인 개학으로 납품을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시 학교급식을 총괄하는 서울 친환경 유통센터에 따르면 서울 전체 급식 납품업체의 3~4월 피해액은 84억 수준에 이른다”며 “KT는 앞으로도 사회 각 분야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이고 따듯한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선 사례들은 기업들의 선한 영향력으로 평가받는다. 형식적인 기부가 아닌, 각 유통사 수장들이 전면에 나서거나 방송의 예능적 요소를 활용하는 등 보다 친근한 이미지로 어필한 점이 주목받았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의 경우 ‘맛남의 광장’ 방송 이후 자신의 개인 SNS에도 방송에 나온 감자, 고구마를 활용해 만든 음식 사진을 올려 좋은 반응을 얻으며 ‘키다리 아저씨’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쪼쪼댄스를 추는 박명수와 평소 선을 아슬아슬 넘나드는 애드리브로 인기를 얻은 장성규가 쇼호스트로 나선 것도 평소 홈쇼핑에서는 흔하지 않은 광경이라 많은 소비자의 관심 속 매출 확대 효과까지 이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좋은 취지로 마련된 것이라도 화제성이 필요하다. 자신과는 동 떨어져 보이는 형식적 차원의 지원에 사람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며 “이 가운데 기업의 수장이 키다리 아저씨라는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오고, 소비자가 기부에 동참할 수 있는 형태의 기획전을 마련하고, 판매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최근의 기업들의 공생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실속과 이미지를 동시에 챙기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일시적인 브랜드 이미지 상승효과에서 그치면 그 효과는 지지부진해질 것이다. 단기적인 화제성을 위한 한 번의 이벤트성 지원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한 지원을 이어가야 진정한 상생의 시너지 효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맛남의 광장’에서 처음엔 많게 느껴졌던 30톤의 감자를 넘어서서 이후 300톤의 고구마 완판까지 이어진 사례에서도 이 효과를 엿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