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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드족 전성시대②] 젊은이보다 더 젊은 그들, 시니어의 천국 ‘강남시니어플라자’

태블릿으로 영상 편집하고, 영화 만들고, 런웨이 서고…이 모든 게 현실처럼 이뤄지는 강남구 강남시니어플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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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42호 김응구⁄ 2023.02.17 17:55:49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바이올린을 배운 시니어들이 공연에 참가해 연주하고 있다. 사진=강남시니어플라자

‘욜드족(族)’. 이런 단어를 어떻게 만들었나 싶다. 많이 알려진 대로 ‘영(young)’에 ‘올드(old)’를 더한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건 ‘영’이다. 젊진 않지만, 누구보다 젊게 살고 싶다. 혹은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 만큼 배움의 욕구가 크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는다. 배움에 드는 소비는 기꺼이 감당한다. 눈치 보지도 않는다. 내 만족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 젊은이보다 더 젊은 그들이다.

‘강남’은 살기 좋은 게 아니라 살기 편한 도시다. 이것저것 갖춰진 게 많다. 보통 이런 곳엔 지역마다 주민들의 건강한 욕구와 요구가 적지 않다. ‘강남시니어플라자’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만든 게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그 흔한 복지관이나 경로당쯤으로 생각하면 오산. 거기서 만족하지 못한 시니어들이 좀 더 전문화하고 세분화한 전문 복지문화를 원하고 요구했던 결과다.

욜드족은 베이비부머(1946~1965년 출생자) 세대가 주도한다. 젊은 노인층이다. 이들은 배울 만큼 배웠고, 소비력이 강하며, 생각보다 건강하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을 위한 소비에 적극적이다. 가장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강남구다.

강남시니어플라자는 욜드족의 현주소를 아주 잘 보여준다. 오늘이 내일보다 더 젊으니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이를 활용하는데 열심이다. 젊은이들 못지않게 태블릿을 능숙하게 다루고 싶고, VR(가상현실)이나 AR(증강현실) 기기도 맘껏 만져보고 싶다. 요새 인문학 강의가 그렇게 인기라는데, 나도 강의실 한자리에 앉고 싶다. 엔데믹 세상이니 유럽이나 동남아에 가서 말 한마디라도 유창하게 해보고 싶다.

그런 바람들이 이곳에선 꿈같이 이뤄진다. 현재 등록회원 1만3541명에 하루 이용 인원만 2266명이다. 강좌 프로그램은 어림잡아 150개에 이른다. 대략 20~30개에 지나지 않는 노인종합복지관과 비교된다. 종합복지관 수준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강남시니어플자자가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다.

강남시니어플라자 6층의 강남스마트라운지. 시니어들의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IT 체험·교육관으로 조성했다. 사진=김응구 기자

디지털 약자? 극복한 지 오래… 이젠 갖고 노는 수준

서울시는 지난해 7월 ‘디지털 약자와의 동행’을 선언했다. 디지털 약자(弱者)는 55세를 넘긴 인터넷 취약계층을 말한다. 프랜차이즈 음식점 등의 디지털 환경에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정책이다.

코로나 이후 디지털 대전환이 가속화 하면서 이제 디지털 플랫폼 방식은 시대의 대세가 됐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사는 것부터 금융이나 교통, 영화관에 이르기까지 디지털과 그 생태계는 실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서울시 산하 서울디지털재단이 지난해 5월 발표한 ‘서울시민 디지털 역량 실태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 고령층 가운데 키오스크(무인단말기)를 이용해본 사람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45.8%였다.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사용 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 ‘필요가 없어서’,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 등이었다.

욜드족은 적어도 이 같은 불안과 불편에서 조금은 비켜나 있는 듯싶다. 배움에 열정적이기 때문이다. 높은 산처럼 보이는 디지털이어도 충분히 넘을 수 있는 언덕으로 인식하는 까닭이다.

강남시니어플라자 6층의 ‘스마트라운지’는 ‘디지털 강자 양성소’ 같은 곳이다. 팬데믹 이후 더욱 가속화된 비대면과 무인화로 시니어들도 이제 더 이상 도움을 바라는 약자가 돼선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 2021년 6월 처음 문을 열었다. 소문이 번졌는지 현재 이를 이용하는 시니어들로 이 공간은 늘 붐빈다.

스마트라운지에는 다양한 스마트 기기들이 마련돼 있다. 시니어들은 ICT(정보통신기술)를 직접 체험해보고 교육도 받는다. 디지털 교육의 기초인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고, 태블릿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거나 영상을 만들어본다. 스마트폰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여느 시니어와 다르다. “다루기 어려워 사용하기 힘든 기기”가 아니라 “꼭 배워서 써야 할 도구”로 인식한다.

더 나아가 AR, VR로 스포츠나 자연환경을 체험해보고 AI(인공지능) 반려 로봇도 직접 만져본다. ‘해피테이블’에선 치매 예방을 위한 인지(認知) 훈련을 게임처럼 해볼 수 있다. ‘스마트 아트 갤러리’에선 내가 직접 작업한 테블릿 드로잉, 수채색연필, 수채화, 캐리커처가 전시 플랫폼을 통해 전시된다. 이 전시회는 지난해에만 12차례 진행했고, 모두 172명이 전시에 참여했다.

강남스마트라운지에서 한 시니어가 인공지능(AI) 반려 로봇을 작동시키고 있다. 사진=강남시니어플라자

“강남시니어플라자는 단순히 교육을 진행하고 이를 배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배워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것까지 연계하는 게 목표죠. 자연스럽게 재능기부나 봉사활동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게 이곳의 최종 목적지이자 지향점이에요.”

이곳 권세영 팀장의 말처럼 스마트라운지에서 교육을 마친 시니어들은 자체적으로 동호회를 구성해 모임을 갖거나 봉사단에 소속돼 활동하기도 한다. 봉사단원들은 스마트라운지를 처음 이용하는 회원들이 잘 적응하도록 돕는다. 일주일에 1회 이상, 한 번에 4시간 이상 활동한다.

참여자 만족도도 꽤 높은 편이다. “봉사하면서 체력적, 인지적으로 건강해지는 걸 느끼고, 무엇보다 사회에 기여하는 점이 보람되다”(이○순), “나이도 많고 아직 부족하지만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열심히 참여할 것”(허○구), “봉사활동을 하면서 디지털 역량도 강화하는 기회가 됐다”(노○) 등의 평가가 줄을 잇는다.

강남시니어플라자 모습. 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 4번 출구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김응구 기자

인문학 즐기고 스페인어 배우고 단소도 불러… 강좌도 전문·세분화

강남시니어플라자의 강좌 프로그램들은 치열한 고민 끝에 짜였지만 회원(시니어)들 요구에 따라 신설된 것도 적지 않다. 간혹 “내 덕에 강좌가 개설됐다”며 웃으며 말하는 이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어학은 대개 영어, 일본어, 중국어가 전부이지만 이곳에선 스페인어, 프랑스어, 베트남어도 준비돼 있다. 충분히 익힌 후 여행길에서 가볍게 인사 정도는 해보자는 목적이다.

악기 연주도 기타, 하모니카, 오카리나에서 그치지 않고 바이올린, 만돌린, 클라리넷, 단소, 해금 등으로 다양화했다. 과정을 마치면 협연도 이뤄진다. 지역 행사나 요양원에서 부르면 찾아가 연주하는 재능기부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기서 배운 라인댄스(여러 사람이 줄지어 추는 춤) 팀은 지난해 열린 한 대회서 상을 받기도 했다.

인문학 강의는 이곳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고전철학부터 서양미술사, 로마사, 한국사, 삼국지, 주역(周易)에 이르기까지 깊고도 넓은 세계를 비교적 어렵지 않게 다룬다. 시나 수필 창작 강의를 마쳤어도 펜은 놓지 않는다. 시인으로 등단하거나 시집을 내기도 한다. 삶을 뒤돌아볼 나이가 되니 자서전 쓰기에도 열심이다. 여행길에서의 소중한 추억들을 서로 나누며 단편집을 함께 내기도 한다.

강남시니어플라자 모델 워킹 회원들이 행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강남시니어플라자

런웨이 서는 시니어… 늘어나는 자신감, 그만큼 젊어지는 그들

“강남 시니어들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모델 워킹반에서 재충전 시간을 가지니 행복하기 그지없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활동하려고요. 긍정적인 자세로 몸도 마음도 늘 건강하게 관리할 겁니다.”(김○니)

‘시니어 모델 워킹’도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다. 런웨이(runway)를 수놓는 눈부신 모델들의 워킹을 배워보는 시간인데, 모델만 시니어일 뿐이다. 2015년 시작한 이 강좌는 현재 10기가 교육 중이다. 기수별로 30여 명이 참여한다.

권세영 팀장은 “처음 목적은 모델 양성이 아니었다”고 했다. ‘바르게 걷기’가 이 강좌의 취지였다. 걷는 자세를 바르게 교정하는 것으로 시작하려 했는데, 그만 일이 커져 버렸다. 동시에 회원들의 자신감도 커졌다. 급기야 서울시와 강남구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하게 됐고, 복지기관 등에도 찾아가 자선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권 팀장은 “네이버 광고에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는 회원도 있다”고 전했다.

강남시니어플라자 시니어 회원들이 직접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사진=강남시니어플라자

직접 영상 찍고 편집하고… 어느새 KTV 시니어 기자로도 활동

IT 관련 강좌 중엔 영상을 찍고 편집까지 배워보는 시간도 있다. 역시, 배우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이를 어떻게든 활용한다. 심지어 관내에서 시니어 기자로 활동하다가 ‘KTV 국민방송’으로 진출한 회원도 있다.

소소하게 영상을 만들어 이를 지상파 방송에 보내는 시니어도 있다. 만드는 즐거움도 크지만 본인의 결과물이 방송을 타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소정의 활동비는 덤. 취미생활도 재밌는데 용돈까지 생기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시니어 단편영화도 만들었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어설프지만 연기도 직접 한다. 이를 찍는 사람도, 영상을 편집하는 이도 다 이곳에서 배운 걸 활용했을 뿐이다. 때로 젊은 사람이 필요한 장면은 강남시니어플라자 직원들까지 합세한다.

‘강남 메타버스 체험관’에서 시니어들이 VR 체험을 해보고 있다. 사진=강남구청

IT에 좀 더 가까이… 강남 시니어 위한 메타버스 체험관도 열어

강남구는 지난해 9월 강남노인종합복지관 5층에 시니어를 위한 IT 공간 ‘강남 메타버스 체험관’을 오픈했다. 앞서 소개한 강남스마트라운지에 이은 두 번째 시니어 전용 IT 체험관이다.

162㎡ 규모의 이곳은 전체 공간을 네 분야로 나눴다. 먼저, ‘가상현실 체험관’은 특수고글을 착용하고 의자에 앉아 가상세계를 체험하는 공간이다. 바닷가나 숲을 거닐고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등의 행위를 실감 나게 해볼 수 있다.

모션 인식게임을 즐기는 ‘증강현실 체험관’에선 직접 몸을 움직이며 인지능력과 운동능력을 높일 수 있다. 강남스마트라운지에서 소개한 ‘해피테이블’은 이곳에도 마련돼 있다. 최대 네 명이 동시에 접속해 테이블 위 화면을 조작하며 건강 상태를 기록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재밌는 건 ‘거울 세계 체험공간’이다. 소극장 같은 안락한 자리에 앉아 ‘구글어스’를 활용해 가보지 못한 여러 나라와 지역을 간접 경험해볼 수 있다.

이밖에 ‘디지털 배움학교’에선 유튜브에 관심 있는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영상 제작방법을 가르쳐주고, 스마트폰으로 SNS(사회관계망서비스) 활용법이나 배달 전용 애플리케이션 사용법도 알려준다.

조성명 강남구청장은 “강남 메타버스 체험관은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 어르신들이 IT 기술을 쉽게 체험하고 즐기는 공간”이라며 “민선 8기 강남구는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활기찬 스마트 라이프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우리도 곧 늙는다. 시간을 거스를 순 없다.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도 없다. 이에 뒤처지냐 따라가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따라가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때로 창피함도 무릅써야 한다. 허나, 뭔 상관이랴. 그저 내가 하고 싶을 뿐인걸.

권세영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회원 중에는 80대 중후반도 있어요. 만나보기 전에는 ‘연세가 많은데도 정말 열심히 하시네’ 정도로만 생각하는데, 막상 만나보면 그 나이대로 절대 보이지 않아요.” 행복하기에 가능한 모습이다.

플라자(plaza)는 ‘광장(廣場)’을 뜻하는 단어다. 시니어플라자는 시니어들이 모이는 광장이다. 광장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이곳에선 공연도 열리고 전시도 한다. 욜드족은 이제 관람자가 아니다. 공연과 전시에 직접 참여하며 나의 재능을 스스로 빛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본인의 만족을 위해 그렇듯 한다.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는다. 일종의 자신감이다. 욜드족은 본인의 과거와 현재에 대단한 자신감이 있다. 그야말로 욜드족 전성시대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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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강남시니어플라자  메타버스  스마트라운지  욜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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