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데스크 칼럼] 독일 장수 기업의 비결은?... 고객이 ‘돈쭐’ 내는 기업 돼야

독일 장수 기업의 핵심은 노사 상생과 사회공헌... 단기 수익만 바라보면 망한다

  •  

cnbnews 제748호 안용호⁄ 2023.05.23 17:05:39

일본 학자 요시모리 마사루 교수가 쓴 책 ‘독일 100년 기업 이야기’(한국경제신문)는 100년에서 500년 이상 된 독일의 기업들을 소개합니다. BMW, 폭스바겐, 포르쉐, 푸거, 크루프, 자이스, 보쉬, 베텔스만, 머크 등이 그것입니다.

이 책이 소개하는 기업 중에는 5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도 있습니다. 무역업, 광산업, 대부업 등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푸거가 그 주인공으로 1512년에 창립되었습니다. 철강 기업 크루프는 1811년, 광학기기 기업 자이스는 1816년, 산업기기 전문 보쉬는 1886년, 글로벌 미디어 기업 베텔스만은 1835년, 제약 기업 머크는 1827년에 창립됐습니다. 모두 2세기가 넘게 지속되어 온 기업입니다.

이 장수기업들의 흥미로운 공통점은 가족기업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가족기업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지만, 독일인들은 상당히 우호적으로 평가합니다. 비텐 가족기업연구소가 2010년에 조사한 기업 평판 결과에 따르면, 가족기업의 평판이 비가족기업보다 좋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oder) 전 총리는 독일 가족기업의 혁신 능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Angela Merkel) 역시 가족기업을 ‘독일 경제의 견인차’라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들 기업이 장수 기업이 된 이유가 가족기업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크루프는 1945년 4월 5세대 계승자 알프리트가 체포돼 6년간 수감됐고, 1948년 뉘른베르크 재판을 통해 12년간의 금고형과 모든 재산의 몰수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1951년 미·소 간 냉전 격화로 독일의 부흥을 필요로 한 미국이 점령 정책을 전환함에 따라 나머지 형기가 면제되고 1953년에 석방됐습니다. 거의 동시에 알프리트가 전액 소유하던 크루프의 기업 자산이 반환되고, 알프리트 자신도 최고경영자의 지위에 복귀했습니다. 주요 중역들을 소집한 첫 회의에서 설비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중역들에게 알프리트는 “종업원이 우선이고, 그다음이 기계다. 그것이 우리의 100년 전통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1만 6000명의 모든 종업원에게 전후 지급되지 못한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 최우선이며 새로운 공장, 새로운 설비투자는 그다음 순서라는 겁니다.

베텔스만은 1835년 루터파 교회 목사의 아들이자 석판 인쇄 장인이었던 카를 베텔스만(Carl Bertelsmann)이 프로테스탄트·복음파의 성경, 찬송가 같은 종교 서적의 출판·인쇄 기업으로 설립한 회사입니다. 초대 사장 카를은 기업가정신과 사회적 공헌을 적극적으로 실천했습니다. 교회·관공서 등의 임원을 겸임하고 프로테스탄트 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등의 모범을 보였고 이를 2세대 하인리히(Heinrich)가 이어받았습니다. 선대 사장들은 종업원을 위한 독자적인 연금제도와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제주항공이 열린의사회와 4월 26일부터 5일간 필리핀 마닐라 북쪽에 위치한 말라본(Malabon)에서 의료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사진=제주항공

책 속 사례에서 보듯 노사 상생 관계, 사회공헌이야말로 독일 장수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었습니다.

이번 호 문화경제는 대한민국 장수기업을 특집기사로 소개합니다. 100년 기업을 바라보는 유한킴벌리는 40년 전 이미 ESG 경영을 실천했던 기업입니다.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익숙한 환경 캠페인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회사는 이후 ‘취약계층 보호’로 범위를 확장해 저소득층 청소년과 시니어 등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는 인큐베이터 보살핌이 필요한 이른둥이를 위한 초소형 기저귀를 무상으로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동화약품은 1897년 창립된 국내 유일의 일업백년 제약사입니다. 동화약품은 궁중에서 사용되던 생약비방에 양약의 장점을 취해 우리가 잘 아는 소화제 활명수를 만들었습니다. 이 회사가 일제 강점기에 상해 임시정부와 국내 간의 비밀연락망인 서울연통부로도 운영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최근 125주년 기념 팝업스토어를 진행하기도 했던 이 기업은 판매 수익금을 ‘생명을 살리는 물’ 캠페인에 사용했습니다. 전 세계 물 부족 국가 어린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하는 사회공헌활동입니다. 이 밖에도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대전환에 앞서 추억의 ‘1974포니’를 소환해 기업의 레거시를 잇는 현대자동차와 1977년 우리나라 최초의 와인 마주앙을 지금까지 이어온 롯데칠성음료의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1월 2일 발표한 보고서는 기업의 평균 수명이 1958년 기준 61년에서 2027년에는 12년 수준으로 대폭 단축되리라 예측했습니다. 기업이 장수하기 위해서는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요? 2021년 다보스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기업의 힘은 단순히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착한 기업에는 ‘돈쭐’을, 나쁜 기업에는 불매 운동도 서슴지 않는 MZ세대 주도의 사회에서 기업의 목적과 역할이 변하지 않으면 장수는커녕 생존도 기대하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관련태그
동화약품  현대자동차  유한킴벌리  롯데칠성음료  장수기업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