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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싯길 (7) 금강산] 발 부르트도록 금강산 날아다닌 김시습과 생…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매월당의 금강산 길을 쓰려니 마음이 싸하다. 통일 후에 쓸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통일 이후에는 다시 답사길 겸해서 쓰기로 하고 일단은 옛 글과 옛 그림으로라도 그의 싯길을 이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일전에 겸재 그림 길을 쓰면서, 청와대 안에서 보아야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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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싯길 (6) 금강산길, 김화] 그가 간 길은 분단되고, ‘꽃강’만…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매월당은 날이 밝자 행장을 꾸려 다시 금강산 길에 오른다.영평현 관아는 지금의 포천 영중면 양문리에 있었다. 옛 양문역(梁文驛)이 있던 지역이다. 북관대로(北關大路: 경성과 함경도 경흥을 잇던 길)는 강원도 김화(金化)로 향한다. 지금의 43번 국도인데 달리 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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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싯길 (5) 금강산길, 영평] 없어진 영평 지나 무릉도원 향해 가…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포천에 날이 밝자 매월당은 금강산 길에 다시 오른다. 운수납자(雲水衲子: 수행승)의 유람 길이니 달리 바쁠 것도 없다. 길은 태조 이성계도 무수히 다녔을 북관대로(北關大路)다. 말이 대로이지 우마차 하나 제대로 가기 힘든 오솔길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만세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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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싯길 (4) 금강산 길, 포천] 금강산 길목 ‘물 품은’ 포천의 물…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분포(盆浦)의 절(옥수동 미타사)을 떠난 매월당은 일단 한양으로 들어왔다. 먼 길을 떠나기 위해서였다. 금강산 길이다. 조선인들에게 최고의 여행지는 단연 금강산이었다. 조선 중기 이후가 되면 선비라면 한 번은 다녀오고 싶어 했고 더욱이 화인(畵人)이나 시(詩)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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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싯길 (3)] 꽃피는 봄날의 한강을 읊은 김시습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매월당은 두뭇개 승사(僧舍) 행사 후 잠시 편안한 시간을 가진 듯하다. 그는 어촌을 둘러보고 한강을 바라보며 시심(詩心)을 느낀다.태조가 천도한 한양은 본래 신라의 북한산주, 한산군(漢山郡)이라는 이름을 거쳐 고려 숙종 때 남경, 충렬왕 때 한양부(漢陽府)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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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싯길 (2)] 동호대교 앞 분포에 선 25살 청년 김시습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임진나루를 건넌 매월당은 아마도 들러가라는 상인(上人: 노스님)의 말씀이 생각났나 보다. 이내 발길을 남쪽으로 잡아 한양으로 향한다. 길은 의주대로(義州大路)였을 것이다. 파주 지나 혜음령 넘고 벽제관, 구파발, 양철평 지나 한양으로 들어섰을 것이다.이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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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싯길 (1)] 개성에서 임진나루 건너 강원도로 첫걸음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그는 풍운아였다.조선초 1435년(세종 17년)에 성균관 옆 반궁리(泮宮里)에서 태어나 1493년(성종 24년) 59세의 나이로 만수산(萬壽山) 무량사(无量寺)에서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그의 생(生)에 많은 날들은 길 위에 있었다.어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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