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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균의 세상만사]미국 대통령들의 기연(奇緣)

숫자에 얽힌 절묘한 우연, 대통령 암살범끼리 악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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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09호 방효균⁄ 2009.03.17 16:33:26

“미국 아이들은 일 년에 한국 아이들보다 학교에서 한 달 정도 덜 보낸다. 21세기에 대비하려면 교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한국 아이들이 교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일 워싱턴 DC의 히스패닉계 상공회의소 연설에서 “미래는 시민들을 가장 잘 교육하는 국가의 것”이라며, 한국의 교육열을 배워야 한다는 취지로 미국의 교육개혁을 강조하여 주목을 받았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미국인들을 상대로 한 오바마의 미국 내 연설에는 ‘한국’과 ‘한국인’들이 비교의 대상으로 자주 등장하여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런데 이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숫자 4와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2008년 11월 4일 치러진 선거에서 제4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인연은 ‘새 발의 피’이다. ■ 제로의 저주 미국 대통령들에게선 이상할 정도로 우연의 일치점들이 쉽게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죽음에 연관된 무서운 우연이 있다. 끝자리 숫자가 ‘0’인 해에 선출된 대통령은 반드시 재직 중에 병사하거나 암살 등으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죽는다는 사실만 해도 그렇다. 이름하여 ‘제로(0)의 저주!’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4년마다 한 번씩 한다. 그래서 끝자리 숫자가 0인 때의 선거는 20년에 한 번씩 오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그 당시의 대통령들을 조사한 결과 모두가 병사하거나 암살당하였다. 1840년, 윌리엄 H 해리슨. 폐렴으로 사망.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 워싱턴 포드 극장에서 암살. 1880년, 제임스 A 가필드. 워싱턴 역전에서 암살. 1900년, 윌리엄 매킨리. 암살 1920년, 워렌 하딩. 샌프란시스코에서 급사 1940년, 프랭크 루스벨트. 뇌일혈로 사망 1960년, 존 F 케네디. 암살 이처럼 20년마다 끝자리가 0이 되는 해에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모두가 재직 중에 뜻밖의 죽음을 당했다. 하지만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80년, 마침내 ‘제로의 저주’를 깨뜨린 대통령이 있는데, 바로 영화배우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이다. 그는 자신의 임기를 모두 마치고 무사히(?) 은퇴했다. 하지만 그 역시 그렇게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1년 후에 총격을 받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며, 재직 중에 암에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제로의 저주’도 21세기에 들어와 풀리게 된다. 빌 클린턴의 뒤를 이어 2000년에 제43대 대통령에 당선된 조지 W 부시는 8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건강한 몸으로 금년 1월에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 운명의 숫자 3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세 번째의 미국 대통령답게 3이라는 숫자와 인연이 많았다. 그는 제퍼슨 가(家)에서 세 명째의 토머스이며, 셋째 아들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세 군데의 학교를 다닌 끝에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을 졸업했으며, 변호사가 되었다. 그 후 버지니아 식민지 대표로 대륙 회의에 참가한 그는, 33세에 독립선언서를 기초했으며, 독립선언 기초위원으로 세 번이나 당선되었다. 또한 그는 제3대 주 프랑스 대사로 3년 간 근무했다. 제퍼슨과 3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워싱턴의 내각에서 세 번째로 각료에 임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철학협회의 제3대 총재로 취임하기도 했다. 또한, 제퍼슨은 세 가지의 예술을 사랑했으며, 세 가지의 이념을 추구했다. 3대 예술은 음악·미술·건축이었고, 3대 이념은 생명의 존중·자유·행복의 추구였다. 그러나 모든 게 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3이란 숫자 때문에 눈물을 머금은 일도 있었다. 1796년에 처음으로 대통령직에 도전했는데, 애석하게도 애덤스에게 패하여 부통령으로 만족해야 했다. 불과 3표 차이였다. 하지만 1800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애덤스를 물리치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케네디와 링컨의 공통점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은 당시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런데 케네디 대통령과 링컨의 암살 사건을 비교해보면, 이 두 대통령의 암살 사건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이상한 상관 관계가 있다. 첫 째로, 이 두 사람은 시민권의 신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대통령들이다. 두 번째는, 암살범이 쏜 총탄에 뒷머리를 맞고 죽었으며, 모두 금요일에 죽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링컨은 포드 극장에서 죽고, 케네디는 포드에서 만든 링컨 자동차에서 사망하였다. 세 번째로, 두 사람은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24세의 여성과 결혼했으며, 암살 현장에 그 부인이 함께 있었다는 점이 일치한다. 네 번째로, 두 사람은 100년의 차이를 두고 링컨은 1846년에, 케네디는 1946년에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뿐만 아니라, 링컨은 1860년에, 그리고 케네디는 그 100년 후인 1960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다섯 번째로, 두 사람의 대통령 자리를 물려받은 후계자는 모두 남부 출신의 민주당원이고, 그 성씨도 둘 다 존슨이었다. 게다가 두 후계자는 기묘하게도 100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태어났다. 즉, 링컨의 뒤를 이은 앤드루 존슨은 1808년에 태어났고, 케네디의 뒤를 이은 린든 B. 존슨은 1908년에 태어났다. 여섯 번째로, 두 암살범들의 출생년도의 차이도 묘하게 100년이다. 링컨을 암살한 존 윌크스 부스는 1839년에, 케네디를 암살한 리 하비 오스월드는 1939년에 태어났다. 일곱 번째로, 에이브러햄 링컨에게는 케네디라는 이름의 비서가 있었는데, 그는 링컨이 포드 극장을 가는 것을 강력히 반대했었다. 또 케네디에게는 링컨이라는 이름의 비서가 있었는데, 그는 케네디의 댈러스 방문을 극력 반대하였다. 마지막으로, 부스는 링컨을 극장에서 저격한 후 창고로 도망쳤고, 반면에 오스월드는 케네디를 창고에서 쏘고 극장으로 도망쳤다. 참으로 드라마틱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이 이야기가 어느 작가가 쓴 픽션이라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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