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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비운의 전직 대통령 안 생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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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20호 박형규⁄ 2009.06.02 11:24:12

한국 헌정사에 또 다른 비극의 새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다. 제16대 대통령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1년 3개월여 만에 자신과 가족·친인척 및 측근들의 비리 관련 혐의로 검찰조사에 시달리던 중 돌연 투신자살로 급서거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새 기록을 남기게 됐기 때문이다. 이 비극은 2009년 5월 23일 오전 9시 30분, 고인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함으로써 빚어졌다. 이 청천병력 같은 비보에 유족은 물론 온 국민이 큰 충격과 비통에 빠졌다. 근 1주일 동안 김해시 봉하마을과 서울 등 국내외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애도와 추모의 행렬이 이어져 500만 명을 넘는 사상 초유의 많은 내외국 조문객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어 29일 오전 11시 경복궁 흥례문 앞 뜰에서 치른 영결식을 뒤로하고 서울을 떠나 수원의 화장터를 거쳐 봉화마을 사저 옆에 마련된 영원한 안식처에 비석과 함께 고이 잠들게 된 것이다. 격동의 역사 속에서 5년 동안 한국을 이끌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투신자살 비보는 우리 모두를 무척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비통에 잠기게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를 맞은 우리 사회는 잠시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감에 휩싸인 듯한 분위기가 감돌기도 했다. 때문에 얼마간 국민의 마음을 한데 모았던 애도와 추모의 열기로 장례식의 마지막 절차인 영결식을 끝낸 지금, 한국 헌정사 초유의 전직 대통령 자살이라는 충격의 여파가 한국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과 얼마만큼의 변화를 불러오게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더러는 성찰과 화합의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도 없지 않지만, 반대로 분열과 갈등이 증폭될 것이라는 우려 또한 적지 않다. 전문가들 역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의 배경과 파급력을 놓고 현격한 입장차를 보였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고인의 유서 내용대로 화해와 용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에는 대체로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표출된 분열과 갈등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고인을 조문하기 위해 봉하마을 빈소를 찾은 일부 정·관계 인사들을 일부 노사모 회원들이 조문을 못하게 길을 막은 불상사가 빈발했는가 하면, 반대로 노 전 대통령을 폄하하는 일부 보수 논객들의 극단적인 발언들이 잇따랐던 사실들에서 여실이 보여주었다. 생전에 이념과 지역을 뛰어넘어 화합을 강조해 왔던 고인의 뜻에 반하기도 하는 이런 비인간적인 만행을 유가족도 아닌 일부 노사모나 논객들이 무슨 자격이나 권리로 자행할 수 있는지를 묻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빗나간 분위기 속에서도 이번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를 계기로 한국 헌정사에 오롯이 새겨진 전직 대통령들의 ‘수난과 비운’의 역사가 다시금 반추되고 있다. 한국의 전직 대통령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지난 23일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모두 9명이다. 이들은 재임 중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지만 ‘하야’와 시해, 측근 구속, 검찰 수사 등 수난과 비운을 겪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4,19혁명으로 하야하여 이국땅에서 생을 끝낸 비운을 맞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측근에게 시해당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세 차례나 사법처리를 받았고,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은 2년 간 감옥살이를 했다. 김영삼·김대중 전직 대통령은 아들들이 구속되는 아품을 겪었고, 급기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압박에 못 견뎌 투신자살이라는 최악의 비운을 맞았다. 이러고 보면 전임 대통령 중 단 한 명도 퇴임 후 행복하지 못했다. 때문에 이번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더는 비운의 전직 대통령이 생기지 않도록 개헌문제 등 실효성 있는 해결책 강구에 적극 나서야할 때라는 주장들이 정치권 등 도처에서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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