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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잘 만드니 한국은 아무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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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58호 최영태⁄ 2010.02.22 16:05:23

‘지는 해가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망하기 직전에 최고의 광휘를 구사하지만, 시대에 뒤진 기업이나 나라는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말이다. 미국의 사진 평론가 마이크 존스턴은 카메라 렌즈로 이런 현상을 말했다. 4×5인치나 되는 대형 필름으로 사진을 뽑아내는 대형 카메라에서 최고의 렌즈가 나온 시기를 그는 2000년대로 꼽는다. 최고의 영상을 뽑아낼 수 있는 렌즈가 이때 나왔지만, 세상은 이미 완전히 디지털 시대로 넘어갔기에 ‘사상 최고의 렌즈’는 빛 한 번 발휘 못 하고 망각됐다는 한탄이다. 이런 현상은 여럿 들 수 있다. 1·2차 세계대전 이전만 해도 유럽은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초강대국들이었고,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전만 해도 미국은 영원히 1등을 할 수밖에 없는 유일 초강대국일 것 같았고 등등. 미국 애플이 만든 ‘아이폰’ 전화기 한 대가 한국의 이동통신 시장 지형을 하루가 다르게 바꾸는 모습을 보면서 ‘사상 최고의 렌즈론’이 계속 머리에서 감돈다. 미국이 만드는 ‘물건’이 보잘것없고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일본에 판판이 깨진다고는 하지만, 영화 ‘아바타’, 그리고 아이폰을 통해 보여준 그들만의 장점은 아직도 남아 있다. 한국 같은 폐쇄 사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들만의 기발한 창조성,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유일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의 헤게모니 배경에는 물론 무시무시한 군사력이 있다. 그러나 세계인이 꼭 미국의 ‘주먹’ 크기를 보고 놀라 그 앞에 무릎을 꿇은 건 아니다. 미국 문화에, 할리우드 영화에 매혹돼 자발적으로 무릎에 힘이 풀린 경우도 많다. 이건 마치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만드는 물건도 뛰어나지만, 그가 새 제품을 프레젠테이션하면 세계의 언론이 돈 한 푼 받지 않는 광고를 해주느라 안달을 떠는 현상과도 비슷하다.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내는 힘이다. 그리고 이런 능력의 바탕에는 미국 문화의 독특한 ‘너도 나도 모두 그저 같은 사람일 뿐’이라는 철학적 바탕도 있다. 미국의 파티장 같은 데 가면 수입과 지위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남녀노소가 서로 이름(퍼스트 네임)을 부르며 스스럼없이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 앞에서는 너도 나도 그저 사람일 뿐이기 때문에, 비록 직장에서는 하늘 같은 상사라도 사석에서는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수도 있다는 장면이다. 논문으로 바쁜 대학원생을 대신해 교수가 심부름을 해주는, 지상 최고의 권위주의 국가 한국에서는 그림도 그려지지 않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하버드 졸업생을 ‘미스터 하버드’라고 부르며 우대하지만, 그렇다고 비(非)하버드 출신을 모두 바보·멍청이로 여기지는 않는 사회, 실패하더라도 두 번째, 세 번째 찬스를 주는 부드러운 사회이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파워’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물건’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일본도 아직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그저 미국에서 만들면 그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기계를 만드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감히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물건만 잘 만들다가 궁지에 몰린 사례를 우리는 최근 일본 자동차의 위기에서 확인한다. 아이폰에서 볼 수 있듯 세상은 이미 ‘소프트’ 쪽으로 패러다임이 넘어갔는데, 한국은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핸드폰·LCD·반도체·선박을 만든다”며 입이 귀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요즘 햇살은 너무 아름답지만, 바로 이 햇살이 넘어가기 바로 전에 가장 아름답다는 바로 그 햇살은 아닐까라고 의심되는 것은 지나치게 걱정 많은 사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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