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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비 안 내는 사람을 총무로 뽑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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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71호 최영태⁄ 2010.05.24 15:43:49

최영태 편집국장 모임이 있다. 회원은 회비를 낸다. ‘회비를 안 내려 드는 회원’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제명감이다. 하물며 ‘회비 안 내는 그 사람’을 회장 또는 총무로 뽑는 모임은 없다. 모임이 망하기 때문이다. 나라가 있다. 국민은 세금을 낸다. ‘세금을 안 내려 드는 국민’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제명감이지만, 이상하게 제명이 안 되는 나라도 있다. 하물며 ‘세금을 안 낸 나를 예산 집행자로 뽑아 달라’고 나서기도 하고, 또 뽑히기도 한다. 안 망하는 게 신기하다. 이번 6.2 지방선거에서도 광역·기초의원 후보 중 지난 5년 간 세금을 체납했거나 현재 체납액이 있는 후보가 광역의원 후보 175명, 기초의원 후보 512명 등 모두 687명이나 된단다. 이런 ‘말이 안 되는 후보’를 놓고 선거를 치르면서 언론에서는 국격 운운하고 있으니, 참 외국의 개나 소가 웃을 일이다. 미국의 풍경을 한 번 보자. 어느 한적한 주말 주차장. 경찰관이 허리를 숙이고 일일이 차 번호판을 검사하고 있다. 1년에 한 번 내게 돼 있는 자동차세를 안 낸 차를 잡아내는 중이다. 세금을 안 낸 것으로 확인된 차량은 운행이 정지된다. 세금을 안 내면 차를 몰 권리도 없다. 집도 마찬가지다. 집을 사면 내야 할 돈이 많지만, 그중 우선순위 제1위는 항상 부동산 세금이다. 다른 돈은 안 내도 집이 바로 몰수되지는 않지만, 세금을 안 내면 체납 액수가 적어도 바로 몰수 대상이다. 세금을 안 내면 자기 집이라도 살 권리마저 없는 나라가 미국이다. 한국에선? 시시때때로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의 탈세, 기업의 탈세 등이 보도되지만, 그렇다고 기업·고소득자들이 국세청을 그리 무서워하는 것 같지는 않다. 버젓이 탈세 행각이 계속되고 있으며, 체납자·납세기피자들이 “날 뽑아 달라”고 선거에 나서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에선 이렇게 “나 세금 안 낸 사람이니 뽑아주쇼”라고 나설 수 있지만, 만약 미국에 이런 후보가 있다면 그는 자살을 하려는 사람이다. 일단 연방 국세청이 탈세 사실을 확인하면, 그 체납·탈세자는 반드시 ‘인생이 종 치는 소리’를 듣게 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기업이 엄청난 탈세를 하고 소유주가 붙잡혀 들어가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해…’라는 사유로 풀려난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런 일은 없다. 조직적으로 탈세를 한 엔론 같은 기업의 경영진은 100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아 ‘감옥에서 죽을 운명’에 확실하게 처해진다. 봐주는 일은 절대로 없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해…’라는 좋은 문구도 없다. 한국에선 왜 항상 대기업 소유주들만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지도 알 수 없다. 액수는 작지만 봉급생활자도 세금을 내며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데, 이런 ‘개미’들에게는 절대로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가 인정 안 된다. 차별 사회란 증거다. 세금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라면, ‘알고도 넘어가는 시스템이 있느냐 없느냐’인 것 같다. 체납·탈세자가 선거 후보로 나설 수 있는 것은 ‘알려져도 괜찮은’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가 돌아가는 기본이, 국민은 세금을 내고 정치인은 거둬진 세금을 집행하는 것이라면, 한국처럼 세금을 안 낸 사람이 예산 집행자로 뽑히는 나라는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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