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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성의 이야기가 있는 길 - 31] 용인 법륜사~문수봉~와우정사

절이 탑으로 돌아오듯 제자리 찾아가면…
‘살아서는 진천 살고, 죽어서는 용인 산다’는 문수봉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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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48호 박현준⁄ 2011.11.14 13:36:27

좀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는 잘 가지 않는 용인의 동쪽 나지막한 산줄기를 버스편으로 가 보기로 한 날이다. 이른 점심을 먹고 양재역에서 5001번 버스에 오른다. 어느새 요즘 사람들 몸에 깊이 밴 습관은 조금만 멀고 낯설면 차를 몰고 갈 생각부터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점회귀하지 않는 길을 걸으려면 도리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버스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잠깐 사이에 용인시 기흥구 권내로 들어간다. 여러 승객은 에버랜드 정류장에서 내리고 필자는 버스종합터미널로 향한다. 진천에 가면 입구부터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 하고 쌀 브랜드도 생거진천쌀로 ‘내 고장 청정 쌀’을 자랑한다. 그런데 세간(世間)에서 흔히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 하건만 용인 어디에도 사거용인(死居龍仁)을 내세우는 흔적은 없다. ‘살아서는 진천에서 살고 죽어서는 용인에서 산다’는 글자 그대로의 뜻을 혹시나 ‘살기는 진천이 좋고 묻히기는 용인이 좋다’라고 해석해 용인이 무덤이 많은 고장이라는 인식이 박힐까 봐 꺼리는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연전(年前) 나이들면 용인에 가서 살까 생각한 적이 있어서 사거용인(死居龍仁)이란 말에 대해 궁금해 한 때가 있었다. 전고(典故)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한국구비문학대계(정신문화원 간)에 민간에 떠도는 옛이야기를 채록하여 소개한 것을 알게 되었다. ‘죽어서는 용인’이라고 용인에 묘가 많은 게 아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지만 다른 이 몸에 들어가 진천 마누라, 용인 마누라 모두 데리고 산 사내가 있으니… 이야기의 스토리는 이렇다. 용인에 사는 착한이가 젊은 나이에 벼랑에서 굴러온 돌에 깔려 죽었다. 저승에 갔더니 염라대왕이 잘못 왔다고 돌려보냈다. 이미 몸은 돌에 깔려 되돌릴 수가 없게 되어 공천(空天)을 떠돌고 있었다. 혼백이 어디 들어갈 몸이 없을까 찾아다니던 중 마침 진천에 어떤 초상난 집을 찾게 되었다.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시신이 멀쩡하니 혼백이 그 몸에 들어가 살아났다. 몸은 진천 사람이요 정신은 용인 사람이 탄생한 것이다. 이 착한 이는 용인 마누라를 데려 와 진천마누라, 용인마누라 두 마누라를 데리고 잘 살았다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 사람이 늙어 죽은 것이다. 용인 마누라 배에서 나온 자식과 진천 마누라 배에서 나온 자식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용인 아들이 이제는 아버지 혼령을 모시고 고향 용인 땅으로 가서 제사를 모시고 살겠다는 것이었다. 싸움에 결론이 나지 않으니 원님이 판결을 내렸다. ‘살아서는 진천에서 살았으니(生居鎭川) 죽어서는 고향 용인에서 살게 하여라(死居龍仁).’ 용인 효자와 진천 효자를 둔 착한 민초 이야기였던 것이다. 어느새 버스가 종합터미널 앞에 도착한다. 터미널 안에는 용인 주변 도시와 마을로 떠나는 버스가 가득하다. 마침 16번 마이크로버스가 출발할 시간이다. 길을 물었더니 기사 아저씨가 어떻게 시간을 알고 맞추어 왔느냐고 한다. 사실은 우연이었는데, 머쓱하다. 교통편에 소개했듯이 이 버스는 중간 간격이 너무 길어 시간이 맞지 않으면 이용하지 말고 원삼(면)행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10여 분을 걷지만 길도 쾌적하고 버스도 수시로 있으니 이쪽이 편리하다. 30분이 미처 안 되어 버스가 법륜사 앞에 도착한다. 문수봉(文殊峰) 동쪽 품에 생각지도 못한 큰 가람이 숨겨져 있다. 대웅전 건물이 특이하다. 남방불교에서 볼 수 있는 전각 형태이다. 비구니 스님이 깨우침을 얻자 만공선사는 혹 비구니의 몸으로 주의의 시선을 모을까 걱정해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주의도 주셨으니… 들어가 보니 석조 대불을 모셨는데 좌우로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자리하고 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건물을 짓고 석가모니불을 모신 게 아니라 부처를 먼저 모시고 건물을 나중에 지었다고 한다. 석굴암 본존불의 3배나 되는 크기다. 대웅전 기둥도 백두산 홍송으로 지었다 한다. 절에 비치된 자료를 보니 비구니 상륜(相侖)스님이 회주로 계시던 절로 예산 수덕사(修德寺) 말사라고 한다. 왜 이곳에 수덕사 말사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비구니(比丘尼) 상륜스님이란 분의 법맥(法脈)을 따라가 보아야 이해가 된다. 상륜스님이란 분은 북한산 승가사를 가꾼 분이다. 수덕사는 근세의 법맥 경허(鏡虛), 만공(滿空)스님이 주석하던 곳이다. 이 만공스님이 그 법(法)을 인가한 비구니스님 한 분이 계셨다. 깨우침의 경지를 알아보신 것이다. 그러면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주의도 주셨다. 스승의 따스함으로 헤아려 볼 때, 비구니의 몸으로 공연히 깨우침을 말하면 주위의 시선을 모을까 걱정했을 것이다. 이 비구니스님이 법희(法喜)인데 그 분을 은사로 모시고 수행한 분이 상륜(相侖)이었다. 이제는 비구니의 큰 법맥 법희, 상륜 두 분도 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극락보전 기둥에는 아무런 주련(柱聯)이 없다. 온 자리로 돌아가는데 굳이 무슨 말이 필요하랴. 서울에 사는 신도집 마당에 있었다는 고려시대 3층석탑(경기도 문화재 자료 145호)이 절마당에 서 있다. 그 분이 절에 희사하신 것이다. 예전 어느 절 마당에 있었을 그 탑이 있을 곳으로 돌아오니 보기가 좋구나. 절 우측으로는 문수봉으로 오르는 산책길이 열려 있다. 그 아래 산륜스님의 부도가 있다. 길로 들어서니 숲길 아래쪽에서 어린이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가득 들려온다. 이 작은 능선 아래쪽에는 ‘용인농촌테마파크’가 잘 가꾸어져 있다. 숲 사이로 언뜻언뜻 꽃밭도 보이고 그늘막도 보인다. 문수봉을 사이에 두고 용인 시내 쪽 5~6km 되는 곳에는 오토캠핑장이 있고 산 동쪽 이곳에는 농촌테마파크가 있어서 이제는 다 큰 우리 애들을 다시 어린이로 되돌릴 수 있다면 텐트 싸매고 하루 다녀가고 싶다. 10분 여 분 걸으니 산길 주능선에 도착한다. 숲 우거진 평화로운 오솔길이 길게 뻗어 나간다. 길안내판도 서 있는데 문수봉정상, 매봉재, 약수터도 알리고 이 길이 한남정맥(漢南正脈) 길임을 알리는 안내 지도도 있다. 편안한 구간이 끝나고 문수봉을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경기지방 낮은 산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산죽(山竹)도 많다. 오르기를 5분여, 좌측으로 약수터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작은 빈터 바위 아래, 가뭄에도 좀처럼 그치지 않는 감로수(甘露水)가 흘러나온다. 예전에는 샘물처럼 고였을 것인데 이제는 파이프를 꽂아 놓았다. 돌아보니 전망이 툭 틔어 아랫녘 들판이 환히 보인다. 이곳이 예전 절터였다. 규모는 작아도 자리는 좋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보현보살은 행함을 대표하는데, 말만 가득한 이 세상에서 행함을 보여주고 문수봉 위에서 세상 내려보는 문수보살의 편한 얼굴이 나는 좋더라 절터를 벗어나 50m 정도 가파르게 오르면 마애불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다가가 몇 칸의 쇠층계를 오르면 ㄱ자 형으로 갈라진 바위 좌우 면에 어린이 같이 천진한 얼굴로 길손을 맞는 두 분 보살이 서 계신다. 키가 2.7m라 하니 작은 보살상은 아니다. 안내판을 살펴보면 경기도 유형문화재 120호로 고려 전기에 조성한 마애보살상(磨崖菩薩像)이라 한다. 정면에서 볼 때 좌측 보관(寶冠)을 쓴 분이 문수보살(文殊菩薩), 우측 분이 보현보살(普賢菩薩)이라고 한다. 천년을 하루같이 천진한 얼굴로 누구를 기다리신 것인지? 문수는 지혜(智慧)를, 보현은 행함(願行)을 대표하는 보살이다. 비교할 수는 없어도 내게는 보현보살 상(相好: 형상)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말만 가득한 이 세상에 행(行)을 알려준 이, 그리고 지금은 문수봉 바위에 서서 천년을 입 종긋한 모습으로 서계신 이,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처럼 편한 얼굴이 내 마음을 해방시킨다. 그런데 두 분 보살만 계시고 막상 한 가운데 계셔야 할 부처는 어디 가신 것인가? 문수봉 정상에 올라 네 마음에서 찾으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정상을 향해 오른다. 비록 403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실로 그 존재감은 크다. 용인을 지나 광주를 통과하고 한강으로 들어가는 이 고장의 젖줄 경안천(慶安川)은 문수샘에서 발원한다. 또한 한강 이남의 경기도와 서울 산(山)들은 모두 문수봉의 아우들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을 것이다. 속리산 천황봉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한 기운을 한남(漢南)과 호서(湖西)지방으로 분기하는데, 이 산줄기가 안성 칠장산에 이르러 남과 북으로 갈라진다. 남으로 흐르는 산기운(山氣運)은 천안~예산~청양~보령~서천으로 가 군산 앞바다에 닿고, 북으로 달리는 산기운은 안성~용인~수지~의왕~군포~시흥~부천~인천~김포~통진으로 가 강화 앞바다에 닿는다.

이 산줄기가 한남정맥(漢南正脈)인데 문수봉에 이르러 한남정맥은 세 갈래로 분기한다. 한줄기는 남쪽으로 갈라져 천주교의 성지 미리내를 품고 평택으로 달리고(쌍령지맥), 다른 한줄기는 북으로 내달아 독조봉에서 양평 방향으로 뻗어가니 양평의 무갑산, 앵자봉, 양자산을 이룬다(앵자지맥). 또한 독조봉에서 한 줄기 동으로 뻗어나간 산기운은 여주와 이천의 산줄기가 된다(독조지맥). 풍수하는 이들은 명성황후가 난 여주의 집터는 이 산기운 때문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한강 이남 서울-경기에 있는 어느 산을 타올라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모든 산길은 문수봉으로 통하니 키 작은 대형(大兄)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문수봉 정상에서 쌍령지맥과 앵자지막이 갈라져, 한 줄기는 미리내 성지를 품고 평택으로 달려가고 다른 줄기는 북으로 내달아 양평으로 뻗어가니…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정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크게 펼쳐진 용담저수지 주변에 농촌마을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다. 그 너머로 태봉산과 건지산(巾之山)이 보인다. 어느 왕자나 공주의 태실(胎室)이 있었기에 태봉산일까. 건지산에는 조선(朝鮮)조에 봉화대(烽火臺)가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죽산현(竹山縣) 조에 보면 ‘동으로는 충청도 충주 망이산에 응하고 서로는 용인현 보개산에 응한다(東應忠淸道忠州望夷山 西應龍仁縣寶蓋山)’라고 했다. 보개산은 지금은 아파트촌이 된 동백지구 동쪽에 있는 석성산이다. 조선조에는 나라의 비상연락망으로 5개의 봉수(烽燧: 봉화불) 라인이 있었다. 그 중 한 라인이 부산 동래 다대포(多大浦)에서 출발하여 남산(목멱산)에 이르는 제2라인이다. 용인을 거친 제2라인은 서울 청계산 아래 금토동 천림산(天臨山)을 통해 남산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이제 문수봉 정상에서 북쪽 능선길을 따라 내려온다. 앵자지맥의 시작이다. 능선을 내려오면 큰 고개 곱든고개를 만난다. 고도 285m 쯤 되는 고개인데 낮은 곳에서 시작하다 보니 상당히 높다. 고개가 굽이굽이 휘어져 굽은고개, 곱등고개, 곱든고개라 불렸다 한다. 1/50000 지도에는 곱돌고개로 표시되어 있다. 어찌되었든 구불구불한 고개를 표현한 이름인 듯하다. 예전에는 용인현과 죽산현을 잇는 큰 고개였다. 나라일 하던 관리들도 지금 용인시내에 있던 금령역(金嶺驛)에서 원삼에 있던 좌찬역(佐贊驛)으로 가려면 이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이제는 2차선 포장도로로 큰 눈 쌓인 날 아니고는 차들이 쌩쌩 달린다. 1939년 동아일보 기사에 이 고개를 확장한 일이 보도됐다. 당시 이 곳 군수가 열렬히 상부에 청원해 예산 일만원(一萬圓)을 따내어 고개를 확장했다는 것이다. 그 때도 기간도로였던 것 같다. 중앙 일간지에 실렸던 것을 보면. 안성 칠장사에서 혜소국사가 가난하고 불량한 자들을 보살피고 가르쳤다 하고, 칠장사 명부전에는 홍길동 벽화가 그려져 있으니 단순한 우연일까? 이 고개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용인시 명승을 선정하는 위원회가 이 고개를 용인팔경 중 3경에 선정했다. 그 자료에 의하면 예전 이 고개에는 호랑이 출몰도 잦았다 하며, 안성 죽산 칠장사에 계신 스승(갖바치 병해대사)을 만나러 가는 길에 임꺽정이 이 고개를 지났는데 가짜 임꺽정과 맞닥뜨렸다는 것이다.

명종실록에 보면 그 당시 가짜들이 각지에서 임꺽정을 사칭해 도적질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나라에서도 가짜를 잡고 임금께 보고한 일도 있으니 실상을 짐작할 만하다. 명종 16년(1561년) 1월 조에는 “황해도 순경사 이사회와 강원도 순경사 김세한이 복명하기를 도둑 두목 임꺽정을 체포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임꺽정이 아니고 도적 가도치였다)고 쓰여 있다. 黃海道巡警使李思會 江源道巡警使金世澣復命, 以捕捉賊魁林巨叱正入啓(其實非林巨叱正, 乃賊人加都致也) 소설 임꺽정은 벽초 홍명희(洪命熹) 선생이 1928년부터 11년간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이다. 안성 칠장사에는 고려 현종 때 혜소국사(慧炤國師) 비가 있다. 그 내용 중에 주변의 가난한 자나 불량한 자들을 보살피고 가르친 내용이 전해진다. 아마도 벽초 선생은 이 내용을 모티브로, 실록에 기록된 도적 임꺽정과 연결 스토리를 엮었을 것이다. 칠장사 명부전에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인 ‘병해대사와 7인의 도적’ 벽화를 그려 놓았다(임꺽정, 이봉학, 박유복, 배돌석, 곽주오, 황천왕동, 길막봉). 이제 임꺽정을 뒤로 하고 곱든고개를 내려간다. 아래에서 산악바이크를 하는 이들이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올라온다. 고개 아래에 와우정사 안내판이 있다. 한참을 안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불두상(佛頭像)이 나그네를 맞는다. 와우정사(臥牛精舍)는 근래에 세운 열반종의 종찰로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곳이다. 인도네시아 향나무로 조성한 부처님 열반 와불(涅槃臥佛)도 봉안돼 있고 남방불교의 느낌을 주는 탑과 여러 불상들도 봉안됐다. 들러 볼 만한 곳이다. 문수봉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들어선 법륜사, 와우정사라는 대찰(大刹)과 문수봉 남녘에 자리한 마애보살상이 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어찌 보면 마애보살들께서 원하시던 1000년의 바람은 아니었을까. - 이한성 동국대 교수 교통편 5005(조계사 앞)/ 5002(강남역)/ 5001(양재) ~ 용인 버스터미널 환승 16번(법륜사 앞 정차) 또는 94번(원삼행 15분 걷는다) *참고: 16번 버스 시간표 06:30 08:00 09:20 12:10 14:30 16:30 18:00 19:20 20:45 답사코스 법륜사 ~ 한남정맥 능선길 ~ 문수봉 절터(약수·마애불) ~ 문수봉 ~ 곱든고개 ~ 용인방향 고갯길 ~ 와우정사 ※‘이야기가 있는 길’ 답사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함께 모여 서울 근교의 마애불과 문화유적지 탐방을 합니다. 3, 4시간 정도 등산과 걷기를 하며 선인들의 숨겨진 발자취와 미의식을 찾아갑니다. 참가할 분은 comtou@hanmail.net(조운조 총무)로 메일 보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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