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문을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그 기업의 내부 사정과 자금 흐름 등 능력에 대해 잘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제조업체의 자문을 하다 어느새 그 업체의 제조 물품에 대한 반(半) 전문가가 돼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화장품 회사의 자문을 하다보면, 달팽이 엑기스가 피부에 좋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고, 어떤 성분이 들어간 화장품이 어떤 피부에 좋은가도 상세히 살펴보게 됩니다. 신제품이 나오면 저와 주변 사람들이 먼저 사용해보고 평가를 해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회사 홍보모델이 될 것을 부탁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몸으로 얻은 정보들은 보다 충실한 자문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 누군가가 그 회사와 협업을 원할 때 추천해주기도 합니다. 예전에 자문 업체의 물품구매 계약서를 검토하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자동차 부품 관련 회사인데, 회사가 주력으로 영업하는 부품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직영을 하거나 제휴를 하고 있는 대리점의 성격상 그 부품들 외에는 잘 팔리기가 힘든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계약서를 검토하다 보니 기존의 주력 제품과 연관성이 많이 떨어지는 부품을 구매하는 계약인데다가, 회사의 대리점 수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부품을 구입하는 계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사장님에게 전화해서 “사장님, 요즘 사업을 확장하시나 봅니다. 계약서에 있는 XX라는 부품은 동력 전달 계통의 부품인데, 이 부분까지 회사가 영역을 넓히시는 것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사장님은 한숨을 내쉬면서 “어휴, 변호사님 다 아시고 전화 하셨군요. 이번 계약은 어쩔 수 없이 그리 된 것이니 부디 모른 척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장님의 말을 통해 대략적인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고, 검토 의견서를 보내드렸습니다. 나중에 사장님께서 제게 전화를 하셔서 “목전에 큰 계약을 앞두고 있는데, 그 부품을 우리가 구매하지 않을 경우 다른 큰 계약이 무산될 수 있었습니다. 세세한 점까지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마음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제가 경영하는 입장이 아니라 오지랖 넓게 참견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미 눈치 채신 분들도 계셨겠지만, 저는 회사에서 ‘끼워 팔기’ 계약을 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어 이를 넌지시 사장님께 물어 보았고, 사장님도 제 질문 의도를 정확히 아시고 모른 척 해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최근에 ‘갑’과 ‘을’관계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모 백화점의 경우 계약서에서 사용하던 ‘갑’과 ‘을’이라는 용어를 ‘백화점’과 ‘파트너사’로 바꿨고 온·오프라인상 모든 거래 계약에 ‘갑을’ 표현을 쓰지 않도록 한 경우도 있었고, L마트의 경우는 최근 한 직원이 나이가 많은 협력업체 직원에게 반말을 한 것이 알려지며 해당 직원을 2주간 대기발령 내고, 협력업체 임원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갑을 교육 특강’까지 열었습니다. 최근 N유업 사건에서도 ‘갑’의 지위에 대해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때 논란이 됐던 것 중에 하나가 ‘끼워 팔기’입니다. 오늘은 끼워 팔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끼워팔기는 실제로 상당히 자주 일어나지만,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서 강력하게 규제를 하고 있습니다. 끼워 팔기의 유형으로 많이 거론되는 것이 ① 자사의 주(主)된 상품이 자사가 출시하는 종(從)된 상품과만 기술적으로 연동 가능하도록 하는 기술적 끼워 팔기, ② 계약에 의하여 주된 상품을 판매하는 경우 종된 상품도 그 혹은 그가 지정하는 자로부터 구입하기로 약속받는 경우인 계약적 끼워 팔기, ③ 자신으로부터 종된 상품을 구입하지 않으면 주된 상품의 공급을 거절하거나 제품 또는 서비스의 품질을 보증하지 않는 등의 사실상의 강제를 하는 간접적 방법입니다. 유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단어로 ‘밀어내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밀어내기’란 말은 영어로 ‘푸시 세일즈(Push Sales)’에서 나온 것인데, 도매와 소매로 나뉜 유통 단계를 갖고 있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판매 가능한 물량보다 더 많은 제품을 중간 유통업체들이 사도록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통상 신제품이 출시될 때나 매출이 저조할 때 실적을 올리기 위해 쓰입니다. 이 과정에서도 인기 있는 상품을 납품하면서 비인기 상품을 함께 사도록 하는 형태의 끼워 팔기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끼워 팔기를 제23조 불공정거래행위 중 거래강제행위의 하나로 제재하면서도, 제3조의2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지위 남용행위 중 하나로도 보고 있습니다. 끼워 팔기를 위의 두 가지 조문 중 어느 조문으로 규율하는 할 수 있는 지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다르고 상당히 복잡합니다. 이 칼럼은 법률논문이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① 장례식장 등을 운영하는 사업자가 용역 거래 시 거래상대방이 자신과 거래할 수밖에 없는 실정임을 이용해 부대물품이나 부대서비스의 이용을 강제하는 행위 ② 인기 있는 상품 또는 용역을 판매하면서 인기 없는 것을 함께 구입하도록 하거나, 신제품을 판매하면서 구제품이나 재고품을 함께 구입하도록 강제하는 행위 ③ 고가의 기계나 장비를 판매하면서 합리적 이유 없이 인과관계가 떨어지는 유지·보수 서비스(유료)를 자기로부터 제공받도록 강제하는 행위 ④ 특허권 등 지적재산권자가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면서 다른 상품이나 용역의 구입을 강제하는 행위 ⑤ 합리적 이유 없이 자기와 거래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지정하는 사업자의 물품·용역을 구입할 것을 의무화하는 행위 위와 같은 행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불공정거래행위 심사지침에서 끼워 팔기로 예시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만약에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3조 불공정거래행위로 인정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며(같은 법 제67조 제2호), ‘갑’이 시장지배적사업자에 해당해 제3조의2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지위 남용행위로 판단될 경우 3년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됩니다. 다만, 위와 같은 처벌을 받기 위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 하는데(같은 법 제71조), 공정거래위원회에 문제 사실을 신고할 수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과징금 부과 처분을 할 수 있고, 그 외에 상대방의 끼워 팔기 강요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 민사소송도 가능합니다. 현 정부 들어와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규제가 ‘을’을 보호하는 쪽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경험한 바에 있어서도, ‘을’은 ‘갑’과의 앞으로의 관계설정 때문에 쉽게 부당한 요구를 거절 할 수 없습니다. 앞의 자동차부품 회사 사장님의 경우에도 제가 정의감을 앞세워 계약을 수정 또는 파기하도록 했다면, 회사로서는 앞으로 원청 업체와 더 이상 거래를 할 수 없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갑과 을’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앞으로 정부의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