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의과대학의 내과 전문의 김대호(가명) 교수는 교환 교수 제도에 따라 미국 의과대학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김 교수는 미국의 여러 의대 교수들과 교류하면서 연구하고 논문도 썼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풍경을 찾아 이리저리 캠핑을 다니다 보니 어느 덧 체류 예정기간이 끝나 귀국하게 됐습니다. 김 교수는 미국으로 갈 당시 한국에서 살던 집을 저렴하게 임대해 주고, 관리를 여동생에게 맡겨 놓았습니다. 김 교수는 임대차 계약서를 자신의 미국 체류기간이 끝나면 종료하도록 작성해 놓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바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습니다. 귀국일자가 다가오자, 김 교수는 자신의 집에 입주해 있는 세입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귀국사실을 통보하고 이사 날짜를 정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입자는 며칠 동안 전화를 받지 않아 아무래도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김 교수는 여동생을 시켜 집에 가보도록 했는데, 여동생이 집에 가보니 우편물 보관함에 우편물이 가득 쌓여 있고, 세입자는 집의 문을 잠가 놓은 채 연락이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동생은 한참을 망설이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경찰관 입회아래 김 교수 집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집에 들어가 보니, 집에는 상당기간 동안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 없었습니다. 김 교수에게 연락했고, 김 교수는 급히 귀국하게 됐습니다. 김 교수는 귀국해 세입자 우편물을 열어보니 법원에서 온 서류가 있었는데, 의학전문가이지만 법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에 변호사 사무실을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김 교수가 가져온 서류를 찬찬히 살펴보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의 집에 경매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매의 진행상황과 경매가 진행된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경매기록이 필요했고, 급하게 직원을 법원에 보내 경매기록을 복사했습니다. 경매서류에는 경매가 시작된 원인서류로서 김 교수가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판결문이 첨부돼 있었습니다. 김 교수님께 판결이 어찌된 것인지 여쭈어 보았으나,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급하게 법원에서 패소한 사건의 소송기록을 전부 복사해 왔습니다. 소송기록을 보고 나니 그때서야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시간 순서대로 구성해보면, 김 교수 집에 세든 임차인은 사업을 하다 크게 부도가 났고 채권자들에게 시달리다 야반도주를 했습니다. 그러자 채권자들은 임차인이 임대차 기간이 끝나고 받아야 할 보증금에 대해 자신들에게 지급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은 법원에 접수한 소장이 상대방에게 송달이 돼야 진행됩니다. 그런데 김 교수는 미국에 있으면서 자신의 우편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시송달로 소송이 진행됐고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됐습니다. 그리고 확정판결에 따라 채권자들이 김 교수 집에 경매를 신청한 것입니다. 변호사로서 제일 난감한 일 중 하나가 소송서류가 상대방에게 송달이 되지 않을 때입니다. 송달이 되지 않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상대방의 주소를 모르는 경우에는 소송 당사자가 법원을 통해서 사실조회를 하면 주민등록상의 주소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주소지를 알아도 송달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변호사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어떻게든 송달이 되도록 노력합니다. 민사소송법도 송달이 되지 않아 소송이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야간 송달, 친족 송달, 유치 송달, 공시송달 등 여러 가지 송달 방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시송달은 말 그대로 公示송달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법원이 송달할 서류를 보관해 두었다가 당사자가 나타나면 언제라도 교부할 뜻을 법원 게시판이나 신문 등에 게시하는 송달방법을 말합니다. 여러 차례 송달을 해봐도 당사자의 주소·거소 등 송달장소를 알 수 없는 경우에 공시송달이 가능한데, 공시송달은 게시한 날로 부터 2주가 경과하면 상대방에게 소장이 송달된 것으로 인정됩니다. 공시송달로 소송이 진행되면, 상대방이 적절한 답변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소송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원고의 승소로 결론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김 교수에 대한 소송도 이러한 공시송달의 방법으로 소송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모르는 상태로 집이 경매에 이르게 됐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태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김 교수 자신의 주소, 우편물 등 재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과실이 있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그의 책임만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일입니다.
공시송달 사건은 보통 1심 재판에서 확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공시송달에 의해 원고 승소 판결이 선고된 이후에도, 일반 사건과 동일하게 판결문이 공시 송달된 날로 부터 2주 내에 항소해야 합니다. 그러나 공시송달 판결의 경우 2주 내에 항소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 법은 구제책을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민사소송법 제173조 제1항에 따르면 “당사자가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말미암아 불변기간을 지킬 수 없었던 경우에는 그 사유가 없어진 날부터 2주 이내에 게을리 한 소송행위를 보완할 수 있다. 다만, 그 사유가 없어질 당시 외국에 있던 당사자에 대하여는 이 기간을 30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불변기간이라는 것은 이 사건에서는 항소기간 2주를 말하는 것이고, '당사자가 책임질 수 없는 사유'라는 것은 당사자가 그 소송행위를 하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해야 할 주의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간을 준수할 수 없었던 경우를 말합니다. 이 제도를 나중에 보완하는(추후보완) 항소(또는 상소)라고 합니다. 이 제도에 따라 김 교수는 추후보완 항소를 제기하면서, 경매절차에 대하여 강제집행정지결정 신청해 경매를 정지시켰습니다. 확정된 판결에 따라 진행되는 경매의 진행을 정지시키려면, 상당히 큰 액수를 현금으로 공탁해야 하는데, 다행히 늦지 않게 현금을 마련해 경매사건 진행을 정지시켰습니다. 이번 항소 사건은 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사라진 임차인이 관리비 등을 미납했기 때문에 보증금이 이미 소진됐고, 김 교수는 임차인에 대해 더 이상 보증금 반환의무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결국 위와 같은 사실이 재판과정에서 인정되어, 고등법원의 2심 재판은 김 교수의 승소로 결론이 났습니다. 김 교수는 비록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집이 없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상당히 힘들어 했고, 소송에 들어간 시간과 비용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김 교수 사건은 사실 세입자의 문제가 처음 발생했을 때 바로 대처를 했다면, 별로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해외에 장기체류중인 경우 국내에 있는 재산관리인과 연락이 잘 되지 않거나, 재산관리인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장기 체류나 외국 이민이라면 재산관리인을 두는 것이 좋을 것이나, 재산관리인을 두기에는 기간이 짧거나 부담스러운 경우 우편물의 관리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보통은 가족에게 재산관리를 맡기는 경우가 있는데, 생각보다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가족이기 때문에 별다른 법적조치를 취하지 못하여 속으로만 끙끙 앓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장기간 해외여행이나 집을 비울 때 중요서류를 우편으로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런 때를 위해서 등기취급우편물 대리수령인제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제도는 낮 시간대에 집에 사람이 없거나, 장기여행 등으로 등기취급우편물을 수취할 수 없는 경우에 미리 대리수령인을 지정해 우체국에 신고하면 대리수령인에게 우편물을 배달해 드리는 제도입니다. 우체국에서 등기우편물 대리수령인신고서를 작성하면 됩니다. 위의 사건에서는 다행히 김 교수의 과실이 없는 것으로 법원이 판단해 추완 항소를 받아줬으나, 공시송달로 사건이 진행된 모든 경우에 다 추완 항소가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당사자가 책임질 수 없는 사유’가 인정돼야 하는데, 자신의 주소지나 우편물 수령 과정에 과실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우체국의 송달보고서에 나타나 있는 경우가 많은데, 공시송달로 진행된 사건이라고 해서 추완 항소를 제기했다고 송달보고서의 기재 때문에 법원에서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항소 기각)가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