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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 주목작가 - 남계(南溪) 이규선]21세기 新문인화

동서양의 전통과 현대의 이분적 구분 넘어 대안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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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76호 장준구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2014.04.28 13:55:11

▲이규선 작가


남계(南溪) 이규선(76)은 20세기 한국화의 추상적 흐름을 선도해온 대표적인 작가다. 그는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수십 년의 기간 동안 추상적 한국화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개척해왔다.

이규선은 동양의 미술은 전통적, 서양의 미술은 현대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는 대안을 모색해왔다. 그 결과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고, 동양적이면서 서구적인 관점에서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따라서 이규선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것은 한 특정 작가에 대한 탐구일 뿐만 아니라, 20세기 한국화의 전개와 변모과정을 파악하는데 있어서도 필수적인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전시나 연구 등은 아직까지 이루어진 바 없다.

▲작품 78-7, 180x384cm, 종이에 수묵채색, 1978


4월 25일부터 6월 29일까지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이러한 학술적 필요성과 시의성에 의해 마련됐다.

특히 2013∼2014년 두 해에 걸쳐 그려진 그의 최신작들은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들로, 그의 예술세계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깊다. 사실 이규선이 60∼70년대 화단을 풍미하며 이름을 널리 알렸던 것은 수묵담채의 아름다움을 한껏 살린 아동 그림도 있다.

그러나 그는 70년대 초부터 기하학적인 구조와 절제된 선, 강렬한 색채와 은은한 선염을 이용하여 한국화에서의 조형적 실험을 본격화했다. 이후 80년대에는 검은색과 다양한 밝은 색의 대비 및 발묵 효과를 이용한 자연의 물상(物象)들을 연상시키는 따뜻하고 유쾌하며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추상화다. 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동양화의 핵심인 검은색과 흰색의 조화와 대비를 정갈하고 담백한 구성 속에 녹여낸 작품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해왔다.

▲서창청공도3, 116x175cm, 종이에 수묵채색, 2012


아름다운 아동 그림에서 천진난만한 추상화로

200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작품들은 이규선의 예술세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전의 작품이 수묵 중심의 무채색 화면을 통해 동양의 정갈하고 고요한 미의 세계를 제시한 것이었다. 반면 2008년을 기점으로 한 작품은 밝고 맑은 색면을 검은색, 흰색의 색면과 함께 조화로운 비례의 수직구성 속에 배치함으로써 아름다운 삶과 자연을 노래하는 듯한 뉘앙스(nuance)를 준다.

색채와 구성의 완벽한 조화에 의한 화면의 아름다움은 작가 특유의 탁월한 감각에 의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가 의도한 것은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신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미美를 자신만의 낭만적이면서도 사유적인 방식으로 표현해낸 것이다.

▲서창청공도8, 46x53cm, 종이에 수묵담채, 2012


2013년의 근작은 옛 선비의 서재를 상기시키는‘ 시창청공(詩窓淸供)’,‘ 서창청공(書窓淸供)’이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다. ‘시창(詩窓)’은 시의 은유적인 문학적 속성이 보여주듯이 마음의 창문을, ‘서창(書窓)’이란 서재의 창문을 의미한다. ‘청공(淸供)’이란 보통 선비들이 서재에서 애용하던 각종 문방구를 가리키지만, 단어 자체는‘ 맑고 깨끗하게 갖춤’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시창청공’,‘ 서창청공’이란 마음의 창문을 통해 보이는 맑고 깨끗한 선비의 물건이라고 풀이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규선이 그려낸 것은 선비의 기물이 아니라, 그가 선비의 마음가짐으로 바라본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다.

창문 사이로 보이는 이미지는 자연의 삼라만상을 화가의 마음으로 포착한 것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화가 자신의 천진난만하고 맑은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60년에 가까운 이규선의 예술여정을 살펴보면 그의 작품세계가 점차 문인화의 지향점과 같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사실 그의 그림에 내재되어있는 사상적 기반이나 작화방식 등은 문인화의 그것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규선이 오랜 시간 추구해 온 작품세계가 단순히 ‘추상화’라는 범주에 한정지을 수 없는 것임을 말해준다.

이규선 자신의 정신적 바탕과 인격, 예술관 그리고 그간의 예술여정은 그의 그림이 21세기의 새로운 문인화라는 사실을 조용히 웅변해주고 있다.

▲서창청공도9, 50x72cm, 종이에 수묵담채, 2012


이번 전시는 한국적 추상화를 통해 문인화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계승해 온 이규선의 예술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원칙에 입각하면서도 시대에 걸맞은 그림, 마음이 담겨진 작품을 그리고자 노력해온 이규선의 예술가상(藝術家像)은 점차 기준이 모호해져만 가는 한국화, 더 나아가서 현대미술의 오늘과 내일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 장준구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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