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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본업은 변호사이지만, 강의를 하는 것을 좋아해서 이곳저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초·중·고등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일종의 재능기부 차원에서 변호사 진로 체험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기본적인 법률 교육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학교에서는 도덕과 법률의 관계에 대해서 강의를 많이 요청 받습니다.
제가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사람을 감옥으로 보낼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지면 연령에 따라 제각각 반응이 나옵니다. 고등학생들은 보통 자신의 지식을 동원해서 ‘감옥에 보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창의적인 대답이 많이 나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보통 하는 강의 내용은 “일정한 기한 내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이 있는데 이는 도덕과는 무관한 법입니다. 어른을 만나면 인사를 한다든지,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덕이지만 법은 아닙니다. 그리고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것은 도덕에도 속하고 법에도 해당하는 것입니다. 지하철에서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것은 도덕이지만 법은 아니므로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 감옥에 보낼 수는 없습니다.”라는 내용입니다. 강의할 때 이런 내용을 최대한 재미있게 풀어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뚜껑 없는 음료수 마시면 벌금 물어야
그런데 최근 재미있는 미국 법률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뉴욕 지하철 (MTA) 탑승 수칙입니다. 많은 한국인 여행객들이 이 규칙 위반해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외교부의 뉴욕 주 총영사관은 “최근 뉴욕 지하철 (MTA) 탑승 수칙 위반으로 벌금티켓을 받는 우리 국민이 늘고 있는 바, 여행객이나 타주에서 오는 승객들이 뉴욕 지하철 이용 시 흔히 위반하는 행위를 안내하오니 탑승 시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공고를 하고, 아래와 같은 주요 위반행위와 벌금의 내용을 게시했습니다.
위의 내용은 ‘The New York City Transit Rules of Conduct’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저는 위의 규칙 중에 ‘좌석위에 개인 물품 올려놓기 - 벌금 $50’, ‘뚜껑이 없는 음료수 마시기 - 벌금 $50’ 이라는 항목을 보고 좀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외에도 도박을 한 경우 $50의 벌금을 부과하는 경우 같이 이해가 가는 항목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 상식으로는 좀 과하다 싶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뉴욕 주가 아닌 다른 주에서 뉴욕으로 여행 온 사람들도 규칙 위반을 많이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뉴욕의 규칙을 보면서, 오죽하면 저런 규칙을 만들어야 했을까? 하는 입법자의 고민이 느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부터 지하철 내에서의 에티켓이 문제가 돼 왔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작지만 신경 쓰이는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해, 사실상 제재가 없기 때문에 더욱더 심각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나라 지하철의 경우에도 승객들이 단순히 지하철 에티켓 위반하는 것을 넘어, 성추행, 절도 등 각종 범죄도 범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있으면 법이 있다(Ubi societas, ibi jus)’는 법언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단순히 도덕적 책무만 부담했던 것이, 이제는 법에 규율되고 있습니다. 법과 도덕의 관계는 상대적이고,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릅니다. 모든 일을 법률로 규율하는 것이 옳은 사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로 나아갈 지는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들에 대한 강의를 할 때는 좀 더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정리 = 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