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사람들 ⑦ 서대문서 유치관리계 오종율 경위]범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말라
“오해와 편견보다 따뜻한 관심을” 유치인에 진심으로 다가가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서울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에는 요즘 보기 드문 손편지가 전달되곤 한다. 유치장은 특수부서지로 경찰관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는 폐쇄된 장소다. 이곳에 근무하는 오종율(53) 경위는 지금까지 50통 이상의 감사편지를 받았다. 유치장에 수감됐던 이들이 오 경위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낸 소중한 편지들이었다. CNB 이번 호는 “유치인들과 말을 섞다 보면 죄보다 사람이 보인다”고 말하는 오종율 경위를 만났다.』
“경찰관과 죄인의 만남이었지만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참으로 뜻 깊은 만남이었기에 이렇게 글로나마 인사를 드립니다.”
오종율 경위는 지난 9월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됐던 김모 씨로부터 한 장의 편지를 받았다. 손으로 한 자 한 자 눌러쓴 편지에는 ‘죄인의 몸으로 유치장에 갇혀 있는 신세임에도 경찰관님의 인간적인 선도와 좋은 말씀을 감명 깊게 듣고 많은 걸 깨달았다’고 적혀 있었다.
오 경위는 “유치장에 근무하면서 내가 유치인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내 작은 행동들에 고마워하는 유치인들의 편지를 받을 때면 보람도 느끼고 내가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편지를 보낸 김 씨를 잘 기억했다. 서대문구와 은평구 일대에서 빈집을 털어 4000여만 원의 금품을 훔친 전과 9범의 특수절도 피의자였다. “처음에 수감된 김 씨는 무엇이 그리 불만이었는지 유치장 안에서도 경찰관에게 욕설과 고성이 끊이질 않아 애를 많이 먹었다.”
하지만, 조금씩 김 씨의 마음이 움직였다. 오 경위는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나누면서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자신들의 상처에 진심으로 공감해주면 유치인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김 씨의 경우도 그랬다. 따뜻한 녹차를 건네며 유치장 철장 앞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는 많은 걸 생각게 했다. “김 씨는 가난 때문에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처지를 조금씩 이야기했다. 전과자라는 꼬리표는 주홍글씨처럼 그를 따라다녔고, 출소 후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은 그의 다짐은 매번 약해졌다고 했다.”
김 씨는 편지에서 ‘유지장에 들어가기 전에 경찰관은 내 적이었는데, 이렇게 경찰관에게 감사하다고 편지를 쓰고 있다니 내 정신이 이상해진 것 아닌지…. 하지만, 편지를 쓰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썼다. 이어 ‘베풀어 주신 배려와 감사의 말씀, 항상 가슴속 깊이 새기겠다. 더 많은 죄를 지을 뻔했는데, 다시 한 번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용기를 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종율 경위가 받은 감사 편지들. 사진 = 안창현 기자
오 경위는 “내가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김 씨에게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 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얘기했던 게 기억난다” 며 “단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당신을 위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의지하며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김 씨의 편지를 읽으며 큰 보람을 느꼈다. 피의자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삶, 힘들고 어려웠던 환경 속에서 범죄자가 되기까지 고난과 역경의 사연들을 듣게 되면서 자신 역시 이곳에 있는 이유와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오 경위는 경찰에 입문한 지 올해로 30년째다. 1985년부터 파출소, 교통 등 다양한 보직을 맡았지만 유치장 근무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난해 5월부터 이곳에서 근무했으니 1년 6개월째다.
오랜 경찰관 생활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유치인들을 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유치인들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누고, 적극적으로 도왔던 것도 아니다. 유치장 근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유치인들을 감시하고 관리, 감독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50대 여성 피의자와 만남 계기로 편견 바꿔
하지만 유치인들에게 필요한 건 무거운 형량과 따가운 시선, 편견보다 따뜻한 관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50대의 한 여성 살인 피의자를 만나고부터다. 그는 극심한 생활고를 비관해 외동딸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려다 실패하고 유치장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밥을 먹지 않았고,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 일대일 감시를 했다. 그러다 조금씩 대화를 하게 된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무거웠고 이후에 유치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참 안타까운 사연들을 많이 접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출근한다는 오 경위는 “내가 유치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유치인들이 출소 후 건강한 사회인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CNB저널 = 안창현 기자)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