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물병원생명협동조합의 조합원들. 사진 = 우리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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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안창현 기자)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국내 인구가 2013년 1000만 명을 넘어섰다. 반려동물 관련 시장도 2조 원을 돌파한 이래 해마다 급속히 커져 2020년에는 약 6조 원이 될 전망이다. 문제는 동물병원의 의료사고와 분양 관련 분쟁도 함께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이다. 또한 이에 더해 유기동물 문제는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된 지 오래다. 한 해 평균 10만 마리의 유기동물이 발생하고, 이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만 100억 원에 이른다.
이런 현실에서 2013년 설립된 우리동물병원생명협동조합(이하 ‘우리동생’)은 반려동물의 권익과 적정가격의 동물병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생긴 첫 동물병원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는 동물병원은 국내 최초는 물론 세계적으로 처음이라고 우리동생 측은 밝혔다. 그런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오는 4월, 2년간의 준비를 거쳐 마침내 자체 동물병원 개원을 앞두고 있는 ‘우리동생’을 만나 그 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동생이 세간에 알려지기까지 ‘보리’의 역할이 컸다. 우리동생에는 조합 대표로 사람 대표뿐 아니라 동물 대표도 있는데, 보리는 우리동생의 동물 대표직을 맡고 있다. 2013년 5월 보리는 두 고양이와 한 마리 개의 다른 후보들을 따돌리고 동물 대표로 선출됐다. 조합원 선거와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한 ‘대국민 소셜 선거’라는 이름으로 2차례 투표를 거쳤는데, 많은 네티즌이 참여했다.
조합에서 동물 대표를 뽑는다는 것 자체가 우리동생의 성격과 지향점을 잘 알려준다. 우리동생에는 동물 회원들을 위한 조합 정관도 따로 마련돼 있다.
▲서울시 사회투자기금 중간지원기관 협력사업의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우리동생. 사진 = 우리동생
이 정관은 말한다. “인간만의 세상, 인간만의 사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물은 인간이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디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인간과 함께 공존해왔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인간과 동물간의 만남. 그 중 아주 우연한 기회에 당신과 만나게 되고, 함께 하게 되었으며,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를 만든 우리들을 기억해주기 바랍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동물 정관에는 행복하게 살 권리,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 생명권을 보호받고 존엄하게 삶을 마칠 권리가 동물에게도 있고, 이를 위한 동물병원을 설립해 달라는 요구가 담겨 있다.
우리동생의 정경섭 공동대표는 “동물 조합원이나 동물 정관 등을 통해 직접 동물들의 목소리를 내려 했던 것은 우리도 반려동물의 입장에 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려동물을 통해 사람들이 정서적인 위안과 용기를 얻는 만큼, 동물의 입장도 동등하게 생각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동생의 동물 대표 선거가 특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은 것은 동물 대표로 출마한 반려동물들이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안락사 하루 전에 구출된 아이, 장애가 있거나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아이 등 다 사연이 있는 동물들이 대표로 출마해 사연 자체가 주는 감동이 달랐다. 인간 정치인들의 선거에는 없는 감동이 있었다”며 웃었다.
의료수가제 폐지로 후유증 많아
우리동생은 2년여 준비를 거쳐 드디어 오는 4월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자체 동물병원을 개원한다. 지금 한창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 중이다. 병원이 개원하면 세계 최초의 협동조합 동물병원이 된다.
어떻게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동물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정 대표는 “동물병원 의료수가가 1999년 폐지됐다. 정부는 동물병원 간에 경쟁을 붙여 진료비를 인하하겠다는 취지였는데, 오히려 의료수가가 폐지된 이후 실제로는 병원비가 제각각이 되면서 전반적으로 오르는 결과가 됐다. 그 인상폭을 고스란히 반려인들이 부담하게 되면서 반려인들 사이에 불만이 고조됐다”고 전했다.
고양이 2마리를 키우는 고세진(39) 씨는 협동조합 동물병원을 제안하며 정 대표와 함께 우리동생 설립 초기부터 조합 활동에 참여해왔다. 고 씨는 “우연히 2012년 말부터 길고양이 2마리를 키우게 됐다. 10살쯤 된 아이들이었는데, 아파서 병원에 가면 진료비가 제각각이다. 이 병원에선 3만 원인데, 저 병원에선 30만 원이었다. 동물병원에 대해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이 실시한 반려동물 관련 소비실태 조사를 보면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한 반려인들의 불만을 알 수 있다. 이 조사에서 반려동물 1마리를 기르는 사람이 지출하는 월 평균 비용은 약 11만3000원이었다. 지출 비용이 많이 비싸다는 의견은 진료(48%), 돌봄 서비스(47.7%), 예방접종(36.6%), 미용서비스(36.2%) 순이었다. 1999년 의료수가제가 폐지된 이후에는 병원마다 진료비가 2~3배 차이난다는 결과도 발표됐다.
▲우리동생 조합원들의 회의 모습. 사진 = 우리동생
반려동물이 큰 병이라도 걸리면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가 나오기도 한다. 반려인들을 위한 안전장치가 없는 것이다. 고 씨는 “인간 의료보험과 비슷하게 반려동물 의료보험 같은 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장 이런 문제들을 제도적으로 요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민간 차원에서라도 할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이 직접 운영해 신뢰할만한 협동조합 동물병원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이렇게 나왔다. 2013년 1월 마포구 주민 9명이 ‘우리들의 문제를 스스로 한번 해결해보자’는 생각으로 결성한 모임을 시작으로 지금은 조합원 800명이 넘을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아무래도 가장 큰 요인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동물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을 것이다. 의료보험이 안 되는 동물병원에서 목돈을 지출하며 부담스러웠던 경험이 바탕이 됐다. 또한 반려동물의 건강 상태에 대해 수의사로부터 상세하게 설명 듣고, 건강검진도 자주 받으며, 미용이나 돌봄 서비스도 믿고 이용할 수 있으리라는 조합 가입자들의 기대가 컸다”고 정 대표는 말했다.
신뢰할 수 있는 동물병원 설립을 위해
그해 5월 협동조합 창립총회를 갖고 우리동생이 출범했지만, 실제로 동물병원을 개원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협동조합 동물병원의 선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을 정도로 무작정 뛰어들었다. 연구자들에게 자문도 구하고 일본, 이탈리아 등 해외 사례들을 찾아봐도 참고할 사례가 없었다. 영국이나 독일 등 반려동물 문화가 굉장히 선진적이라고 평가받는 나라에서도 협동조합 동물병원은 없어 힘들었다”고 말했다.
동물병원 설립 인가를 받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수의사법이 개정되면서 수의사가 아닌 사람들이 동물병원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비영리법인이어야 했다. 우리동생은 일반 협동조합으로, 영리법인이었기 때문에 동물병원을 개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협동조합 중 비영리법인 형태인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변경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사회적협동조합 인증을 해주는 농림축산식품부와 갈등이 생겼다. 정 대표는 “농림부는 수의사법과 충돌한다며 인증해줄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수의사법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며 “협동조합으로 동물병원이 운영되는 것은 해외에도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농림부에서도 망설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실에서 의견서를 받기도 하고,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직접 수의사법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받아 제출하는 등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그 결과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인증을 받아 동물병원 설립을 최종 확정받은 것은 불과 얼마 전이었다. 꼬박 2년이 걸린 결과다.
▲우리동생협동조합 2014년 정기 총회 모습. 사진 = 우리동생
지금은 4월 병원 개원에 맞춰 전 조합원이 개원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지난 2년 동안 우리동생은 꾸준히 조합원을 늘리며 매달 반려동물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정 대표는 “국내에는 반려동물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전무했다”고 설명했다.
동물병원 개원을 준비하며 우리동생은 매달 ‘반려동물과 소통하는 방법’, ‘반려동물 행동에 대해 이해하기’ 혹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 만들기’ 등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각 지역에서 반려동물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했다. 반려동물을 매개로 소통할 기회가 많지 않은 만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계기가 됐다. 또 이런 자리를 이용해 앞으로 생길 동물병원의 운영 방식에 대한 논의도 계속됐다.
정 대표는 “병원이 개원하면 조합원들이 진료와 병원 운영 등 모든 것을 함께 결정할 것이다. 수의사 선생님 급여부터 진료비, 공간운영 등 조합원의 의사가 적극적으로 반영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서 신뢰감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기존의 동물병원과는 다르게 진료행위에 대해서도 반려인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우리동생이 운영하는 병원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생명을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역 공동체 활성화에도 기여
우리동생은 향후 지역별 모임이나 돌봄 서비스를 위한 네트워크 형성에 보다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정 대표는 “우리동생 조합원의 80%가 1인가구의 여성들이다. 우리동생의 조합원들이 지역별 모임이나 네트워크를 형성해 서로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지역 공동체는 육아를 매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동육아나 생활협동조합 등 어머니들이 중심이 되는 형태며, 이른바 ‘정상 가족’ 위주로 지역의 공동체 활동이 이뤄진 것이다. 이러니 1인가구나 싱글들이 지역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활동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정 대표는 “우리동생에서 이렇게 1인가구를 위한 활동 가능성을 봤다. 반려동물을 매개로 소통의 장을 만들고 지역 공동체를 활발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이런 부분을 활성화하기 위해 조합 차원에서 노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리동생의 최종 목표는 동물병원을 세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마을을 세우는 것이다. “각기 흩어진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아 인간만의 세상이 아닌, 지역에서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며 풍요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다. 지금까지의 동물보호 운동이 이슈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지역과 만나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기 위해서라면 마을이 어떻게 변해야 할까? 일본 경우는 거리에 강아지 배변 봉투가 비치돼 있고, 길고양이 음수대도 곳곳에 설치돼 있다고 한다. 이런 풍경은 이 마을이 인간만의 마을이 아니라 동물과 다른 생명체들도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준다. 우리동생이 꿈꾸는 공동체다.
동물 女대통령 ‘보리’를 아시나요?
보리의 반려인 송인숙(45) 씨가 우리동생에 참여한 계기도 다른 조합원들과 유사하다. “이빨 스케일링 하는 데만 30만 원 낸 적도 있으니 부담이 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병원에 따라 가격이 배도 넘게 차이가 나고, 얼마 만에 한 번씩 하는 게 좋은지에 대한 얘기도 다 다르다는 것이다. 단 한 곳이라도 100% 신뢰할 수 있는 병원이 생긴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우리동생에 참여했다.” 그리고 송 씨의 반려견 ‘보리’는 우리동생의 동물 대표로 선출됐다. 보리의 사연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다음은 그가 말하는 보리 스토리다.
“보리는 1년 6개월간 다른 사람의 품에 자라다 내게 입양됐다. 서울 생활이 살짝 무료해질 무렵 유기견 관련 기사를 보고 강아지를 한번 길러봐야겠다는 마음으로 강아지 카페에 6개월 정도 들락거리다 새끼와 분양 게시판에 올라 온 어미개 보리를 발견했다. 보리의 새끼는 빨리 분양됐지만, 믹스견에다 성견인 보리는 분양을 원하는 사람이 없어 안락사 위기까지 몰리다 내게 왔다.
막상 집에 데려다 놓고 보니 입질도 심하고 사료를 거부하면서 우울한 표정으로 구석진 자리만 찾아 다녔다. 강아지의 감정이나 행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보리가 특별한 강아지인지, 원래 강아지의 반응이 이런 것인지 난감한 상태에서 보리와의 생활이 시작됐다.
보리가 산책을 좋아해 매일 밖으로 나갔지만 경계심이 너무 심해 길에서 사람이나 자전거와 마주치기만 해도 무조건 달려들었다. 그러니 사람만 보이면 끌어 앉고 돌아서 있어야 했다. 인터넷을 보니 보리 같은 유형의 강아지는 체벌 위주의 복종 교육과 행동 교정을 받아야 한다는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냥 보리와 잘 지내기를 소망하며 끝까지 이해심을 발휘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1년 6개월 정도 지나다 보니 보리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표정도 밝아졌고, 요구하는 것도 많아져 어느새 소통이 가능한 사이로 발전해 갔다. 배변은 늘 화장실을 이용하고 문이 닫혀 있으면 열어 달라고 조르고 배변 후 달려와 엉덩이를 들이밀며 닦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강아지는 사람에 의해 일방적으로 훈련되고 복종하는 존재로 인정받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소통하며 삶을 축적해 가는 대상이란 걸 보리를 통해 깨달았다. 정상적으로 성장한 강아지와 달리 보리는 주인이 바뀌는 아픔을 가진 강아지다.
반려동물이 주인과 헤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그 고통을 잊기 위해 강아지는 얼마나 많은 적응 시간이 필요한지 등 보리의 사연을 통해 유기견의 고통을 알려주고 싶다.”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