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사람들 - 남대문파출소 곽경희 경장] ‘젤리 찾아 3만리’ 해결해준 산타 경찰
▲남대문서 남대문파출소 3팀은 지난 연말 ‘산타 폴리스’ 캠페인을 진행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곽경희 경장. 사진 = 서울남대문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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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안창현 기자) 남대문파출소는 언제나 민원 처리로 분주하다. 유동 인구가 많은 남대문 시장이 바로 옆이라 어쩔 수 없다. 시장 상인들부터 외국인 관광객까지 사람으로 붐비는 만큼 별의별 일이 다 있다. 이런 식이다. 파출소에 할머니 한 분이 화를 참지 못하고 들어온다. 사정인즉, 할머니께서 얼마 전 옷을 샀는데 마음에 안 들어 환불하려고 다시 그 가게에 갔다. 그런데 환불은커녕 교환도 안 된다더라. 할머니는 너무 속상하다.
곽경희 경장(34)은 이런 상황에 익숙하다. “그럴 땐 할머니를 잘 달래드리거나, 중간에서 일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중재하기도 한다. 강력 범죄는 많지 않다. 대신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사소한 다툼들이 많이 일어난다.” 곽 경장은 이런 일들을 ‘사건’으로 처리하기보다 중재자로 일이 원활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이지만, 사람 사는 냄새 물씬 나는 남대문파출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관광 온 말레이시아인들이 여권을 잃고 경찰서에 온 적이 있다. 시장에서 당황해 하는 외국인들을 케밥 파는 아주머니가 데려왔다. 내일이 출국이라는데 여권을 찾기도, 재발급 받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대사관에 연락하는 등 이것저것 도와드렸다. 얼마 전 케밥 아주머니가 파출소로 오셔서 2월에 그분들이 다시 한국에 오는데 꼭 한 번 경찰서에 들린다고 전해주셨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예전 시골에서나 있었을 법한 동네 파출소의 정겨운 분위기가 연상됐다. 하지만 여기는 서울의 한복판 중구다.
곽 경장은 “남대문 시장이 있는 만큼 바쁘기는 하지만,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곳인 것만은 분명하다. 대민 서비스, 치안 서비스가 주를 이룬다. 주민들과 소통하고 상담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이곳으로 전출 오기 전에 곽 경장은 서울역파출소에서 근무했다. 그녀는 “서울역파출소에서도 노숙인들을 상대로 한 다양한 대민 서비스를 해온 터라 여기 일이 낯설지 않았다. 물론 서울역과 남대문 시장 성격이 많이 다른 만큼 대민 서비스의 성격도 많이 다르긴 하다”고 했다.
특히 곽 경장은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을 때 생긴 일을 인상 깊게 기억했다. 할머니가 즐겨 드시는 젤리를 사려 할아버지가 대신 서울로 상경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근무를 하는데 80대 중반 할아버지가 파출소로 조심스럽게 들어오셨다. 그리곤 서울에서 제일 큰 홈플러스가 어디냐고 물으시는 거였다. 곽 경장은 할아버지께 무슨 일로 홈플러스를 찾으시냐고 물었다.
▲남대문파출소 곽경희 경장. 사진 = 안창현 기자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와 경기도 평택에 사시는데, 할머니가 즐겨 드시는 젤리가 다 떨어졌다고 했다. 평택에서 그 젤리를 구하려고 무지 애를 쓰시다가 끝내 구하지 못하고, 동네 사람이 그 젤리 만드는 회사 연락처를 알려줘 전화까지 걸었다는 것이다.”
그 회사에서 하는 말이 이제 다른 곳에서는 팔지 않고 오직 서울에 있는 제일 큰 홈플러스 매장에서만 판다고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할머니께 그 젤리를 사주기 위해 서울로까지 올라오셨다. 할아버지는 곽 경장에서 젤리의 빈 봉지를 보여줬다.
“할아버지 얘기를 듣는데,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떻게든 할아버지를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홈플러스 고객센터에 전화해 그 젤리 판매 여부를 물으니 더 이상 팔지 않는 상품이라고 했다.”
곽 경장은 포기않고 다시 젤리 회사로 전화를 했다. 그리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꼭 좀 젤리를 구했으면 좋겠다고,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제조회사에서도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그냥 넘길 수 없었는지, 할아버지 댁으로 젤리 1박스를 보내겠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약속했다.” 일이 해결되자 할아버지는 곽 경장의 손을 꼭 잡고 너무 고마워하셨다고 했다. 곽 경장 역시 할아버지께 도움이 돼 다행이라며 “이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진다”고 말했다.
나눔 순찰로 시민들과 소통
남대문파출소는 이번 겨울 추운 남대문 시장을 녹이는 ‘산타 폴리스’ 캠페인을 기획했다. 곽 경장은 “남대문 시장엔 아무래도 소매치기 사건이 많이 발생한다. 하루 10~15건 정도 피해가 발생한다. 그래서 소매치기 사건을 예방하는 캠페인을 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산타 폴리스’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캠페인의 성과는 바로 나타났다. 파출소 경찰관들이 팀을 짜 꾸준히 캠페인을 벌인 결과, 소매치기 신고가 확연히 줄었다. 아예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날도 많았다. 곽 경장은 “나중에 알게 됐는데, ‘산타 폴리스’라는 캠페인을 외국 경찰관들도 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획을 계획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