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변호사의 법 이야기] 아버지가 남긴 빚 규모를 알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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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최근 부산가정법원이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부인과 자식 삼남매의 ‘상속한정승인신고’를 수리했다고 보도돼 화제가 됐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유족들은 “이 명예회장의 채무가 180억 원 정도인데 재산은 6억 원에 불과하다”며 한정승인 절차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대기업 오너인 이재현 회장을 비롯해 유족들이 부친의 빚을 대신 갚지 않겠다고 나선 것은 정확한 채무 규모를 알 수 없어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게 CJ그룹의 설명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말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재벌 그룹 회장의 상속자들이 상속한정승인을 한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가족이 사망한 경우 상속인이 할 수 있는 조치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상속의 단순승인과 한정승인, 상속포기입니다. 상속인은 단순승인을 한 경우에 피상속인(망인)의 권리 의무를 그대로 승계합니다. 망인이 생전에 모아놓은 재산을 받지만, 빚도 갚아야 합니다.
우리 민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를 단순승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첫째, 상속인이 상속재산에 대해 처분행위를 할 때입니다. 둘째, 상속 개시 후(망인 사망 후) 3개월 내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하지 않을 때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상속인이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한 후에 상속재산을 은닉하거나 부정소비, 고의로 재산목록에 기입하지 않을 때입니다. 이런 행위가 있을 경우, 상속을 단순 승인하는 의사 표시가 없어도 단순 승인한 것으로 봅니다. 이를 법정단순승인이라고 합니다.
상속포기, 단순승인과 한정승인의 차이는?
그런데 보통 돌아가신 아버지의 빚이 너무 많다면 상속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상속포기는 상속 개시 후(아버지 사망 후) 3개월 동안만 가능합니다. 더구나 상속포기를 할 경우, 후순위 상속인들에게 빚이 승계되기 때문에 상속 관련인들 전부를 모아서 한 번에 상속포기를 해야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1순위 상속인인 나만 상속포기를 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하면 후순위 상속인들이 빚을 떠안게 되고 원망을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상속포기를 하기에는 애매하거나 망인의 채권·채무 관계를 잘 모르는 경우에 하는 것이 한정승인입니다.
고 이맹희 회장의 상속자들이 법원에서 받은 심판이 한정승인 심판입니다. 이번 심판으로 고 이맹희 회장의 상속자들은 상속분을 넘는 채무를 변제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정승인은 말 그대로 물려받은 만큼만 빚을 갚겠다는 것입니다. 채권 목록을 작성해서 신문에 공고하는 등 절차가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자신의 부모 채무 상황을 후순위 상속인들에게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많이 이용됩니다. 물론 이 한정승인도 상속 개시 후 3개월 이내에 해야 합니다.
▲지난해 6월 30일 서울 은평구청에서 진행된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 개통식 모습. 사진 = 은평구청
그리고 상속인이 상속 채무가 물려받은 재산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 그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이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특별한정승인이라고 합니다. 부모의 빚을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안 하고 3개월이 지난 경우 생길 수 있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규정입니다.
그런데 CJ그룹과 관련한 사건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혼외자 이 모 씨가 상속분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언론에 따르면 혼외자 이 씨는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이재현 회장 등 4명이 이 명예회장으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것으로 안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씨의 경우, 상속포기도 한정승인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 이맹희 회장의 빚을 모두 상속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의 쟁점은 결국 CJ 측의 주장대로 이 명예회장의 상속인들이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2016년 업그레이드된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
재산이 재벌처럼 특별하게 많은 경우가 아니라도 보통 상속인들이 돌아가신 분의 재산 내역을 전부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상속인들은 망인의 재산 내역, 세금, 국민연금 등을 공식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지난 2015년 행정자치부는 ‘정부3.0 안심상속 원스톱서비스’를 발표했습니다. 기존에는 상속인이 사망자의 재산을 알기 위해서 금융 재산과 토지 재산, 지방세, 자동차 등을 각각 조회해야 했습니다.
이 제도는 고인의 사망 신고 시 재산조회신청서 한 장만 작성하면 고인의 금융 거래, 토지, 자동차, 국민연금, 국세, 지방세 등 6종의 재산 조회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는 사망자의 주민등록 주소지에서만 신청 가능했습니다. 또 1순위와 2순위 상속인만이 이용 가능했기 때문에 이용자들의 불만도 있었습니다.
2016년 2월부터는 그간 상속인이 사망자의 주민등록 주소지를 방문해야 했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가까운 시·구나 읍·면·동을 방문하면 안심상속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도록 신청 기관을 확대했습니다.
신청 자격 범위도 종전에는 제1, 2순위 상속인의 경우에만 신청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제3순위(제1·2순위가 없을 경우, 형제자매 해당), 대습(代襲), 실종선고자 등의 상속인도 신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지자체 공무원이 신청서 접수·이송을 일부 수작업으로 처리한 것을 시군구 새올행정시스템으로 자동 처리함으로써 업무 처리 시간이 단축됐습니다. 이 결과는 문자, 온라인, 우편 등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획기적으로 편리해졌습니다. 다만 고인의 사망일이 속한 달 말일부터 6개월 이내에 신청 가능합니다.
(정리 = 안창현 기자)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