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남아공] 한 가족이 ‘다른 인종’ 분류된 기막힌 사연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3일차 (케이프타운)
시티투어 버스
시차 적응을 위해 어젯밤 취침 전에 먹은 멜라토닌과 가벼운 수면제가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 편안한 잠을 자고 호텔을 나선다. 깨끗하기 이를 데 없는 잘 가꿔진 널찍한 거리 한켠에는 노점상들이 아침을 연다. 시티투어버스 승차장에서 더블데커 버스에 오른다(1일 자유권 ZAR 140, 한화 2만 2000원). 그동안 다른 도시에서는 보통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내 투어를 해 왔지만 대중교통이 매우 빈약한 남아공에서는 방법이 없다. 관광지인 케이프타운에서는 15분 간격으로 시티투어 버스가 운행되니 고마울 따름이다.
시내의 과거 백인 전용 주거 지역은 여느 유럽 도시와 다를 바 없이 우아하고 고즈넉하다. 교회와 네덜란드식 혹은 영국식 주택과 공원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니 유대인 박물관이 나타난다. 의사당, 디스트릭트 식스(District Six)를 지난 버스는 굿 호프 성(Castle Good Hope) 앞에 선다. 오각형 펜타곤 구조의 성은 17세기 네덜란드 정착자들이 외래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한 것이다. 보캅(Bo Kaap) 말레이 주거 지역을 지나 클로프넥(Klopf Neck)을 오르니 테이블 마운틴(Table Mountain)행 케이블카 로어 케이블 스테이션(Lower Cable Station)이다. 그런데 오늘 테이블마운틴 정상이 구름에 가려져 시계가 불량할 것이라고 하니 안타깝다.
케이프타운 약사(略史)
케이프타운은 남아공의 입법 수도로서 유럽에서 아프리카 대륙 동해안과 인도, 아시아로 항해하는 네덜란드 선박의 보급기지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개발한 도시다. 1486년 포르투갈인 바돌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해 인도양 항로를 개척했다지만 포르투갈의 흔적은 없다. 대신 1652년 얀반리빅(Jan van Riebeeck)이 남아프리카에 정착한 최초의 유럽인으로 기록된다.
19세기 후반 골드러시에 따른 요하네스버그의 급성장 이전까지 케이프타운은 남아프리카 최대의 도시였다. 케이프타운은 1795년 영국이 잠시 점령했다가 네덜란드에 돌려줬으나 결국 영국에게 할양돼 케이프 콜로니(Cape Colony)의 수도가 됐다. 한때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었던 케이프타운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바쁜 항로 중 하나인 남대서양 항로 중심 항구로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테이블 마운틴 행 케이블카 왕복표(ZAR 195, 한화 약 3만 원)를 구입해 정상에 오른다. 매우 빠른 속도로 오르니 4분 만에 해발 1086m 정상에 닿는다. 아프리카 대륙 남쪽 끝에 와서 대서양을 조망하는 감회가 가득하다. 만델라가 18년 동안 투옥됐던 형무소가 있는 로벤 섬(Robben Island)이 저 아래 멀리 보인다.
▲캠프스 베이(Camps Bay) 해변에 도착했다. 산 정상에서 춥기까지 했던 날씨는 사라지고 뜨거운 여름 해가 비친다. 많은 사람들이 휴일을 즐기는 모습도 눈에 띈다. 사진 = 김현주
남아공의 언어와 아프리칸스
케이블카 안내소 근무자의 남아프리카식 영어가 애교스럽다. 남아공 영어는 음성학적으로 볼 때 영국식, 미국식, 인도식, 호주식과 함께 세계 5대 영어권에 속한다. 남아공은 언어도 매우 복잡해서 아프리칸스(Afrikaans), 영어, 줄루(Zulu)어 등 다양한 언어가 통용된다. 박물관 등 공공시설 입구에는 심지어 10여 개 언어가 동시 표기돼 있을 정도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주로 영어로 방송하지만 아프리칸스와 토착어로 중간 중간 전달하는 경우도 자주 보았다. 이중 아프리칸스는 네덜란드어를 뿌리로 하고 있지만 여기에 영어, 토착어, 말레이어 등이 섞여서 만들어진 일종의 혼종 언어다. 네덜란드와 앙숙이었던 영국인은 아프리칸스를 ‘세상에서 가장 추한 언어’라고 경멸했다고 한다.
세계 7대 자연경관 테이블 마운틴
정상이 평탄하고 넓은 테이블 마운틴은 이름처럼 책상 모양을 하고 있다. 각종 희귀 동식물이 분포해 세계 천연자원 보호지로 지정된 명소로, 제주도 등과 함께 신 7대 세계자연경관(New 7 Wonders of Nature)에 선정됐다. 그러나 오늘 구름에 갇혀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세계 7대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테이블 마운틴의 정상이 보인다. 이 정상에 오르면 케이프타운 도시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사진 = 김현주
▲룻 호프 성의 모습. 오각형 펜타곤 구조의 성은 17세기 네덜란드 정착자들이 외래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했다. 사진 = 김현주
희망봉과 아귤라스 곶
가보지는 못했으나 희망봉(Cape of Good Hope)은 1497년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가마(Vasco da Gama)가 발견한 곳으로 대서양과 인도양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다. 거친 항로 때문에 동서양을 왕래하던 수많은 선박들이 좌초해서 ‘폭풍의 곶’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사실 희망봉은 아프리카 대륙 서남단이고 최남단은 희망봉 동남쪽 150km 지점에 있는 아귤라스 곶(Cape Agulhas)이라고 한다.
날씨와 풍광으로 축복받은 케이프타운
테이블 마운틴 케이블카 스테이션을 떠난 투어 버스는 대서양을 왼쪽으로 보며 멋진 주택가를 지나 빅토리아 & 알프레드 워터프론트(Victoria & Alfred Waterfront)로 향한다. 이곳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이라고 자랑하지만 이태리 지중해 아말피-쏘렌토(Amalfi-Sorrento) 해안 길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다.
캠프스 베이(Camps Bay) 해변에 도착하니 산 정상에서 춥기까지 했던 날씨는 사라지고 뜨거운 여름 해가 비친다. 육지의 오염물을 바다로 쓸어내는 강한 동남풍(이곳 사람들은 이 바람을 ‘케이프 닥터’라고 부른다) 덕분인지 공기가 한없이 상쾌하다. 해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휴일을 즐긴다. 나도 대서양 바닷물에 발을 담가 본다. 여기 남반구는 한여름이지만 바닷물은 생각보다 차갑다.
빅토리아 & 알프레드 워터프론트
이어진 해변 도로를 따라 달린 버스는 빅토리아 알프레드 워터프론트에서 운행을 마친다. 노벨 광장(Nobel Square)에는 남아공의 노벨 수상자 4인, 즉 루툴리(Luthuli), 투투(Tutu), 데 클레르크(de Klerk), 그리고 만델라(Mandela)의 동상이 서 있다. 일부러 신체 비균형적으로 만든 형상이 오히려 친근감을 준다. 부두는 휴일 인파와 차량으로 가득하다. 멀리 테이블 마운틴을 보니 아뿔싸! 구름이 걷히고 있다. 남반구의 여름 태양이 뜨거운 만큼 곧 구름이 걷힐 것을 예상해서 테이블 마운틴 방문을 오후로 미뤘어야 했다.
워터프론트에서 점심 식사 후 오전에 익힌 투어버스 루트를 따라 도시 명소 몇 곳을 더 방문하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부두를 떠나 CTICC(Cape Town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re)를 지나니 로터리 가운데에 바돌로뮤 디아스 동상이 서 있어 옛 포르투갈의 영광을 말해 준다.
시내 중심 중앙역 앞 애덜리(Adderley) 거리에는 전몰용사 추모비가 서 있다. 세인트조지 성당에서 버스를 내려 퀸빅토리아 거리를 걷는다. 세인트 조지 성당은 1989년 9월 13일 3만 명이 운집해 케이프타운 피스 마치(Cape Town Peace March)를 시작했던 곳이다.
▲해변을 따라 형성된 빅토리아 & 알프레드 워터프론트. 노벨 광장에는 노벨 수상자 4인의 동상이 서 있다. 사진 = 김현주
인구 등록법
성 조지아(St George) 성당에서 남아프리카 박물관(South African Museum)으로 향하는 퀸 빅토리아 스트리트(Queen Victoria Street)를 따라 중간쯤 지나 오른쪽에 있는 오래된 석조 건물은 한때 고등법원 부속건물(High Court Civil Annex)로서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악명을 떨쳤던 인종분류국(Race Classification Board)이 자리했던 곳이다. 건물 앞에는 ‘유색인 전용’(Non-Whites Only)이라고 적힌 벤치가 상징적으로 남겨져 있다.
1950년부터 1991년까지 인구등록법(Population Registration Act)에 따라 모든 남아공 국민들은 백인부터 반투까지 피부색이나 곱슬머리 여부 등 신체 형질에 따라 7등급으로 분류됐다. 인종 분류라고 하지만 지극히 단순하고 주먹구구였다. “명백히 백인으로 보이지 않으면 유색인”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족이 서로 다른 인종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혹은 유색인이 백인으로 분류된 웃지 못 할 사례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디스트릭스 식스 박물관
이어 찾아간 곳은 디스트릭스 식스 박물관이다. 제 6 구역은 원래 유색인 지역이었으나 20세기 초반 항구 확장에 따라 도심 주거지가 부족해지자 백인 전용 지역으로 변경 지정됐던 곳이다. 이에 따라 이 지역의 모든 집들은 멸실되고 6만 명이 넘는 기존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됐다. 보통 인종 구역 간 경계는 고속도로나 오염된 하천으로 구분됐고 전략적으로 두 구역 사이에 군부대 혹은 골프장을 배치하기도 했다.
박물관 입구 외벽에는 ‘피부색으로 인해 정든 곳을 떠나야만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용서를 구한다’는 글을 담은 현판이 있어서 가슴이 저민다. 조물주는 다양성을 위해 인간의 다양한 얼굴을 만들었겠지만 차별주의자들이 주장했듯 인종은 서로 너무도 다르게 생겼기에 여러 인종을 창조한 것은 조물주의 실수였다는 야속한 생각마저 든다.
▲인종 분류가 기록된 신분증. 1950~1991년 인구등록법(Population Registration Act)에 따라 모든 남아공 국민들은 백인부터 반투까지 피부색이나 곱슬머리 여부 등 신체 특징에 따라 7등급으로 분류됐다. 사진 = 김현주
▲보캅 지역엔 네덜란드인들이 케이프타운 항구를 확장하면서 부족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데려온 노예들의 후손이 거주한다. 사진 = 김현주
보캅 말레이 쿼터
버스가 테이블 마운틴을 향해 난 언덕길을 잠시 오르니 보캅(Bo Kaap) 지역이다. 네덜란드인들이 케이프타운 항구를 확장하면서 부족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데려온 노예들의 후손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인도네시아(당시 이름 Batavia)뿐만 아니라 모잠비크(Mozambique), 앙골라(Angola) 등에서도 노예를 불러 들였다. 참고로 네덜란드는 17세기 초 동인도회사 설립 직후부터 2차 대전 직후까지 350년 동안 인도네시아를 통치했다. 1834년 12월 1일 노예 해방일(Emancipation Day) 이후 해방된 인도네시아 노예들이 정착한 곳이 바로 보캅이다.
언덕 위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보캅 지역에서는 멀리 대서양과 테이블 마운틴이 온전히 보인다. 갖은 원색으로 외벽을 칠한 집들과 군데군데 서 있는 이슬람 사원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다를 바라보며 떠나온 고향을 꿈꿨을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 인종에 속하는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피가 섞인 사람들도 많아 겹겹이 쌓인 케이프타운의 역사를 말해 준다. 어느 집에선가 카레 향이 퍼져 나오고 때맞춰 이슬람 사원 스피커에서 코란 낭송을 시작한다. 케이프타운이 전 세계에서 가장 다인종 다문화 도시라는 말이 실감난다.
케이프 닥터 바람
보캅은 시내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만큼 호텔까지 걷는다. 곧 센트럴 마켓(Central Market)에 닿는다. 오후 5시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상가들이 문을 닫는다. 그 대신 바로 근처에서는 노점상들이 야시장을 시작해 포도를 푸짐하게 샀다. 호텔로 돌아와 여행일지를 정리하는데 바깥에는 강한 바람이 불어와 야자수를 흔들어 놓는다. 바로 케이프 닥터(Cape Doctor) 그 바람이다. 남아공에서의 이틀째 밤이 이렇게 저문다. 오늘 오랜만에 너무 많이 걸었는지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한다. 낯선 곳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아니라면 무엇이 이 고단함을 견디게 해 줄까?
4주 후, 남미에서 귀국하는 길에 요하네스버그에 하루 묵으며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에 갈 예정이지만 아무래도 남아공 여행의 중요한 테마는 아파르트헤이트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관광지 위주로 다니다 보니 소웨토(SOWETO, Southwestern Township: 요하네스버그 교외 흑인 전용 주거 지역) 등 남아공의 깊숙한 모습을 제대로 못 보는 것이 아쉽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