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페루 쿠스코] 멸망인가 정복인가? 잉카 기리는 비석 서 있고…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2일차 (리마 → 쿠스코 → 아과스칼리엔테스)
페루 개관
페루는 인디오 47%. 메스티소 37%, 백인 15% 등으로 구성됐다. 얼핏 보면 에콰도르와 다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남미 여러 나라를 돌다 보니 전문적으로 구분하는 안목은 없지만 한·중·일 3국 사람들이 뭔가 조금씩 다른 것처럼 여기도 국가 간에 생김새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인구 2830만 명, 남한 면적의 13배 국토를 가진 페루는 (면적과 인구 측면에서) 남미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로서 1인당 소득은 4300달러다. 13세기부터 쿠스코(Cuzco)를 중심으로 잉카제국이 존재했으나 1532년 가톨릭 전파를 내세우며 군사 180명을 끌고 들어온 스페인 장교 피사로(Francisco Pizarro)에 의해 허망하게 정복된 후 성립한 국가다. 1821년 산 마르틴(San Martin) 장군의 지도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이룬다.
피사로와 잉카 마지막 왕 아타우알파
피사로는 잉카제국의 마지막 왕 아타우알파(Atahualpa)를 자신의 파티에 초대한 후 매복시킨 군사를 풀어 비무장상태인 그를 인질로 붙잡는다. 그리고는 인질을 풀어주는 대가로 막대한 양의 금을 받아 챙긴 교활한 침략자다.
그가 아타우알파 왕으로부터 받은 금은 오늘날 시가로 360억 달러,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40조원, 북한 1년 GDP를 훨씬 넘는 액수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면서도 피사로는 얼마 후 아타우알파 왕에게 반역죄를 씌워 처형해 버리는 비열함을 저질렀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잉카제국 멸망의 비화(悲話)다.
▲호텔 주변의 산블라스(San Blas) 언덕에서 마주한 인디오 노파의 뒷모습. 무언가를 이고지고 가파른 계단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사진 = 김현주
▲쿠스코 거리 풍경.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쿠스코의 골목과 거리와 정원, 크고 작은 광장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풍이 완연하다. 사진 = 김현주
박수갈채 받은 LAN 페루 조종사
오전 6시 45분 리마공항을 이륙한 쿠스코행 LAN 페루 국내선 항공기는 한 시간 40분 후 쿠스코 상공에 이르러 여러 바퀴 공중을 선회한다. 구름이 매우 두꺼워 착륙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산악 도시 운행 경험이 많은 기장의 판단과 솜씨를 무조건 믿는 수밖에 없다.
10여 분 후 착륙을 시도한 항공기는 짙은 구름을 헤집고 내려와 시야를 확보한다. 저 아래 26만 명 도시 쿠스코가 보이고 항공기 날개 끝은 거의 양쪽 골짜기와 닿은 느낌이다. 곧이어 항공기는 승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사히 착륙했다. 산악 비행 경험이 없는 기장은 할 수 없는 솜씨다.
잉카 정복 vs 잉카 멸망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로 향한다. 우선 여행사를 찾아 내일 마추픽추 국립공원 입장권을 구입한 후 시내 탐방에 나선다. 아바나 아르마스 중심 광장에는 라 콤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Iglesia de La Compania de Jesus)와 트리운포 교회(Iglesia de Triunfo)가 마주 보고 있다. 원래 이곳에 서 있던 잉카 건축물에서 나온 돌과 자재를 사용해서 지었기 때문에 황토 빛이 나는 교회 건물이 특이하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인디오 장군의 분수동상이 서 있고, 광장 한켠에는 스페인의 잉카 정복, 아니 잉카제국 멸망 500년을 기리기 위해 1992년 건립한 인디오 무명용사 추모비가 있다. ‘침략자에 저항해 희생한 무명용사들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라고 기록돼 있다.
▲아바나 아르마스 중심 광장에는 라 콤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와 트리운포 교회가 마주 보고 있다. 사진 = 김현주
▲쿠스코 코리칸차 사원과 그 위에 세워진 산토도밍고 교회가 보인다. 코리칸차 사원은 잉카제국 때 태양 신전 역할을 했던 곳이다. 사진 = 김현주
쿠스코의 티코 택시
델 솔 거리(Avenida del Sol)를 따라 산토도밍고(Santo Domingo) 사원까지 걸어서 내려간다. 해발 3400m이기 때문에 금방 숨이 차오른다.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걸어야 한다. 하늘은 아주 파랗고 고원의 태양은 매우 따갑다. 내 얼굴도 그을려 차츰 인디오를 닮아가는 것 같다. 시내 거리에는 한국에서는 거의 사라진 티코가 택시로 둔갑해 종횡무진 누비고 다닌다.
코리칸차 태양사원(Templo Coricancha)과 산토도밍고 교회 부근에는 발굴이 진행 중이다. 코리칸차 사원(신전)은 잉카제국의 태양신전 역할을 했던 곳이다. 정복자들이 코리칸차의 건물 부분은 파괴하고 돌로 된 초석만 남기고 그 자리에 산토도밍고 교회를 세웠다. 정복자들이 아무리 철저하게 파괴했을지라도 교회의 기초는 잉카 신전 초석을 그대로 사용했던 것이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쿠스코의 골목과 거리와 정원, 크고 작은 광장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풍이 완연하다. 사원 안 콘벤트(Convent) 정원이 아주 예뻐서 파란 하늘과 깔끔한 색의 조화를 이룬다.
▲산중 마을 쿠스코 전경. 한국 강원도 인제쯤 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사진 = 김현주
▲오얀타이탐보는 세이크릿 밸리의 중심도시로서 과거 잉카제국 시절 요새 터 또는 역참이 있던 곳이다. 사진 = 김현주
세이크릿 밸리의 파란 하늘
쿠스코에서 피삭(Pisac) 가는 마이크로버스는 안데스 준령을 여럿 넘는다. 저 아래에는 우루밤바 강이 수만 년 세월을 말없이 흐른다. 피삭에서 버스를 바꿔 타고 안데스 산중 크고 작은 인디오 마을의 정취를 맛보며 지나니 어느 덧 우루밤바(Urubamba)에 닿는다. 하늘이 이렇게 파랄 수 없고 태양이 이렇게 강할 수 없다. 낡은 디젤버스와 승합차들만이 유일한 오염원이다. 여기가 바로 세이크릿 밸리(Sacred Valley: 신성한 계곡)인 것이다.
사방을 둘러싼 산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골짜기 깊은 것은 한국 강원도 인제쯤 되는 것 같고 기암괴석 산봉우리는 설악산 분위기다. 여기 마을이 보통 해발 3000m이니까 둘러싼 산들은 족히 4000~5000m는 될 것이다. 인디오들은 여기 산중에서 수천 년 이렇게 살아 왔다.
우루밤바에서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행 미니버스에 오른다. 승합차는 우루밤바 강과 숨바꼭질하며 빠르게 달린다. 옆 좌석 인디오 오누이는 한국 아이들과 거의 같은 얼굴이다. 힐끔힐끔 곁눈질로 생김새가 닮은 이방인에 대한 관심을 표시한다. 이들의 평화로운 왕국은 어디로 갔는가? 그렇게 도착한 오얀타이탐보는 세이크릿 밸리의 중심도시로서 과거 잉카제국 시절 요새 터 또는 역참이 있던 곳이다. 또한 이곳은 마추픽추로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열차가 출발하는 곳인 만큼 한국 단체 관광객들도 한두 그룹 보인다.
▲오얀타이탐보 마을 광장에 사람이 몰렸다.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어릴 적 자란 서울 신촌 모래내 그 동네 그 골목이 생각난다. 사진 = 김현주
산골 마을 오얀타이탐보
열차 출발 시각인 저녁 7시까지 마을 탐방에 나선다. 마을 광장, 시장, 버스터미널 모두 정겨운 모습이다. 어릴 적 내가 자란 서울 신촌 모래내 그 동네 그 골목이 생각난다. 인디오 할머니들은 모두 한국 할머니들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몇 마디 짧은 스페인어 실력이 전부지만 말 붙여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런데 페루 산악 오지에는 스페인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200만 명, 즉 인구의 4~5%쯤 된다고 한다. 이 할머니도 혹시 그런지 모른다.
마을 안 성당은 소박하지만 정성스럽게 가꿨다. 가톨릭과 토착 신앙이 섞인 듯 성당 장식이 알록달록하다. 산골 마을에 해가 일찍 지니 금세 서늘해진다. 마추픽추행 열차는 만원이다. 오얀타이탐보에서 2시간 걸려 마추픽추 전진기지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에 도착해 여장을 푼다. ‘온수(溫水)’라는 지명처럼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는 온천으로도 유명한 산악 관광도시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