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변호사의 법률이야기] 형사사건 조사에서 ‘변호인 대동’ 잘 이용하려면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최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경찰이 피의자 신문 시 변호인이 신문 내용을 자유롭게 기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변호인의 수사 과정 참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함께 발표된 시범 운영 지침에서는 경찰이 수사 과정에 참여하는 변호인을 대상으로 ▲조사 일시·장소 등을 사전 협의하고 ▲의견진술 및 조언권을 보장하며 ▲신문 사항을 자유롭게 기록하게 하고 ▲조사 중 휴식 요청권을 보장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이 제도들은 기존에도 시행하던 것입니다. 다만, 일선 수사기관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해 이번에 제도화된 것입니다.
이미 끝난 조사는 못 바꿔
형사사건은 피해자의 고소 또는 수사기관의 인지 → 경찰 또는 검찰의 조사 → 기소 → 법원의 재판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형사사건에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을 보면, 법원의 재판 단계에서 사건을 선임하는 경우도 있고, 경찰 또는 검찰의 조사 단계에서 사건을 선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법원의 재판 단계에서 사건을 선임한 경우 변호인은 이미 조사를 마친 피의자 신문조서, 참고인 진술서 등 수사기관에서 만들어진 자료를 열람하고 재판에 임하게 됩니다. 변호인은 수사 자료와 증거자료에서 모순점을 찾아내고 이를 근거로 의뢰인의 무죄를 다투게 됩니다.
그러나 의뢰인은 이미 경찰과 검찰에서 조사를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조서의 내용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변호인이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과거로 돌아가서 문서의 내용을 변경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 다르고 ‘어’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한 말이 문서에 기록될 때, 한두 단어가 첨가되거나 빠지면 그 문맥이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경찰과 검찰에서 작성하는 피의자 진술서, 피의자 신문조서 등 각종 문서는 어떻게 기록되는가에 따라 피고인에 대한 인상을 크게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상습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들이 수사기관에 가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큰 스트레스가 됩니다. 거기다 자신을 범죄자로 보고 있는 수사관 앞에서 진술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서를 모두 작성하고 나면 수사관은 수사 시간을 기록하고, 작성된 문서를 피의자에게 보여줘 확인시키고, 지문을 날인받습니다.
말이 문서로 기록되는 과정에서는 뉘앙스가 바뀌거나 일부 잘못된 내용이 기재될 수 있습니다. 수사기관이 고의로 그렇게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글자로 바뀌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피의자는 조서를 열람하는 과정에서 틀리거나 자신이 한 말과 다르게 기재된 내용을 고쳐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인권 친화적 수사 환경 구축을 위해 ‘변호인 참여 실질화 지침’을 마련,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간 시범 운영한다고 8월 31일 밝혔다. 사진 = 연합뉴스
그런데 피의자 대부분은 조서를 열람할 때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일단 조사가 끝났으니 빨리 경찰서 밖으로 나가고 싶기도 하고, 불편한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조서를 대충 읽고, 지문을 날인하고, 조서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바로 잊어버립니다. 나중에 재판과정에서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해 봐도, 자신의 지문이 찍힌 문서가 있다는 사실까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조사 과정에도 변호사 동석해야
제가 만난 상당수의 피의자는 수사기관에 가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조사를 받고 나서 자신이 무슨 진술을 했는지 제대로 기억 못 하는 일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 기억하고, 불리한 진술은 기억 못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변호인이 동석했다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변호인이 수사에 참여하면 의뢰인이 무슨 죄로 조사를 받으며, 수사기관이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변호인은 수사기관의 조사 후에 사건의 핵심 포인트가 되는 자료를 정리할 수 있고, 이를 다음 조사 전에 제출해서 더 유리한 위치에서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변호인이 수사과정에 참여한다고 해서 유죄가 무죄로 바뀌는 마법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잘못만큼은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자신이 잘못한 것보다 더 큰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사법절차가 아무리 투명해지고, 수사기관과 법원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억울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생기지 않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억울한 사람을 하나라도 줄이는 것은 피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경찰청의 발표는 수사 절차의 투명성·공정성을 담보하고 피조사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진일보하였습니다. 이렇게 절차가 하나씩 투명하게 되어 가면서, 국민의 사법 불신도 점차 해소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리 = 윤지원 기자)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