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5-586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8.04.30 09:54:03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6일차 (사우바도르 → 상파울루 도착)
브라질 사우바도르여 안녕
브라질의 본향쯤 되는 곳, 북동 해안 지방 여행이 끝나간다. 오늘도 사우바도르에는 뜨거운 태양이 떠올랐다. 남반구 한여름인 2, 3월이면 이곳 한낮에는 섭씨 40도까지 오른다고 한다. 그래도 무던히 견뎌온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먼저 도와주러 달려오는 사람들 덕분에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지는, 지구 반대쪽 머나먼 길을 오가는 수고를 잊게 해주는 여행을 했다.
언어가 무슨 문제이랴. 미소와 함께 치켜 올리는 엄지손가락이 모든것을 말해주고 모든것을 이해해주는 만사형통의 땅이다. 한국으로부터는 너무 멀어 나의 짧은 인생에서는 다시 올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땅을 박차 오르는 항공기에서 마음속으로 작별 인사를 전한다. 그들의 행복을 비는 마음이다. “Tchau Se Cuide(Goodbye Take Care)”….
세 시간 가까이 날아 항공기는 상파울루 콩고냐스(CGH, Congonhas) 공항에 닿는다. 남쪽으로 한참을 날아 온 만큼 날씨는 서늘해졌다. 브라질 열대 지방에서 단숨에 온대 지방까지 날아왔다. 예약해 놓은 공항 부근 숙소를 찾아들어가 잠자리에 드니 지난 닷새 간의 브라질 북동부 일주 여행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 이후에 느끼는 이 작은 성취 때문에 아직은 여행을 계속하는가 보다.
7일차 (상파울루 → 산타크루즈 데 라 시에라)
상파울루를 떠난 볼리비아 항공기는 북서 방향으로 세 시간 넘게 날아 내륙국 볼리비아의 산타크루즈(Santa Cruz de la Sierra)에 도착한다. 성가시게도 불리비아는 비자가 필요한데 비자는 한국을 떠나기 전 서울 시청 앞 소재 볼리비아 다민족국가 대사관에서 약간의 서류와 함께 신청하면 무료로 내준다.
낡은 비행기가 무사히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볼리비아 땅을 밟는다. 인구 1100만 명, 남미 대륙 중앙부에 위치한 볼리비아는 파라과이와 함께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합쳐서 딱 두 개뿐인 내륙국이다. 과거 잉카제국에 속했다가 일찌감치 1524년 스페인에게 복속되었다가 1825년 독립했다. 이후 칠레, 페루 등 인근 나라와 전쟁을 겪으며 불안정한 시기를 보냈다. 특히 칠레와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태평양 연안 영토를 잃고 내륙국으로 축소되었다.
막대한 광물 자원
볼리비아의 정식 명칭은 볼리비아 다민족국가(Estado Plurinacional de Bolivia)로서 남미에서는 토착민(Originarios, 메스티조 포함) 비율이 가장 높다(86%). 스페인어 이외에도 36개 토착 언어를 공용어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도 이 나라 인종 구성의 특성을 반영한다. 은과 함께 주석(tin), 남미 2위의 천연가스는 물론이고 세계 매장량의 50~70%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리튬(lithium)이 보배다. 그러나 리튬을 채굴하려면 우유니(Uyuni) 소금 사막(Salar de Uyuni)을 파헤쳐야 하는 난제가 있다.
반복되는 쿠데타와 반(反)쿠데타, 군부 독재로 발전의 기회를 잃어 교육 도시 인프라, 위생 등이 열악하다. 중남미 많은 나라가 그렇듯이 소득 불평등도 심하고 토착민들의 삶은 참혹하다. 매우 다양한 기후가 나타나 한 나라 안에 열대우림부터 사막, 극지, 고산 기후까지 모두 있는 것도 이채로운 현상이다. 해발 고도 또한 매우 다양해서 브라질과 접경한 동부 저지대(평균 90m)부터 안데스 산지(6542m)까지 다양하다.
볼리비아답지 않은 산타크루즈
볼리비아의 웬만한 도시들은 보통 해발 고도 3000m가 넘지만(라파스 La Paz 3650m, 포토시 Potosi 4010m, 오루로 Oruro 3950m 등) 이곳은 아직은 산악 지형이 시작되기 전, 해발 400m이다. 인구는 200만 명, 볼리비아 제2의 도시이지만 사실상 경제, 산업 측면에서는 수도 역할을 맡는, 볼리비아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이다. 저지대 열대 기후의 후덥지근한 바람이 밀려온다. 다행인 것은 이제부터 그나마 나에게 조금은 친숙한 스페인어권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볼리비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답게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이 반긴다. 도로, 오가는 차량, 각종 쇼핑센터, 고층 아파트 등 아직 1인당 소득 3000달러를 겨우 넘은 남미의 최빈국 볼리비아에 왔음을 아직은 실감할 수 없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숙소를 찾아간다. 열대 수풀로 뒤덮인 광장을 중심으로 주청사, 대성당, 각종 쇼핑몰 등 이 도시의 모든 중심 기능이 집결되어 있다. 대성당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광장을 수놓고 연말, 연시 휴일이 시작하는 금요일 저녁 광장은 인파로 붐빈다. 볼리비아의 선남, 선녀들이 모두 모인 듯하다. 잘 차려입은 시민들은 인근 식당과 쇼핑몰을 들락거리며 휴일 전야(前夜)를 맞는다.
아메리카 대륙의 티베트(Tibet)라고 불릴 정도로 서반구에서는 가장 오지에 속하는 나라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이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자 성탄 장식이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나도 그 분위기에 젖어 이 도시의 시민이 되어본다. 남미 대륙 깊숙한 곳에서 맞이하는 연말 분위기가 색다르게 달콤하다. 우유니 소금 사막으로 가기 위해서 잠깐 들른, 볼리비아 초입쯤으로 알고 하룻밤 자고 떠난다는 생각은 멀리 달아나버린다.
8일차 (산타크루즈 → 포토시 → 우유니 도착)
난생 처음 해발 4000미터에
산타크루즈에서 출발한 항공기는 곧 코차밤바(Cocha Bamba)에 도착한다. 해발 2500m, 볼리비아 국토 중앙부에 자리 잡은 교통의 요충이다. 여기서 포토시 행 항공기로 환승한다. 고산 지역이지만 널찍하게 닦아 놓은 포토시 공항 활주로에 항공기는 사뿐하게 내린다. 평생 와본 적이 없는 해발 4010m의 고도라서 겁을 먹었지만 아직은 고산증이 오지 않아 다행이다. 날씨는 선선하고 하늘은 한없이 맑지만 고산의 태양이 뜨겁다. 해발 4000미터 정도의 고산 지역은 태양의 자외선도 해수면에 비해 20배 가량 강하다고 한다.
노새들도 ‘은 발굽’을?
1546년 성립된 이후 인류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막대한 은을 산출하여 한때 인구 15만 명이 사는, 남미에서 가장 크고 풍요로운 도시로 군림하기도 했다. 은이 너무 많아 노새들도 은 발굽을 신고 다녔을 정도라고 한다.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건축된 화려한 바로크 교회와 수도원을 보러 여기 왔지만 한편으로는 은광 속에서 사라졌을 수백만 명의 토착민들과 흑인 노예들을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광부들은 한번 투입되면 몇 주일 동안 땅속 생활을 해야 했을 정도로 참혹한 노동이었다.
시내 중심부로 이동하여 도시 탐방을 시작한다. 예쁘지 않은 건축물이 없다. 교회는 외부 돌 장식도 그렇거니와 실내는 더욱 화려하다. 도시 가장 높은 언덕 위 11월 10일 광장(Plaza de Diez de Noviembre)에는 정부 청사, 성당, 그리고 카사 데 모네다(Casa de Moneda) 박물관 등 이 도시의 모든 중심 시설이 모여 있다. 1547년 건립한 산프란시스코 교회와 수도원이 특히 웅장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언제 다시 와볼 수 있을까? 포토시의 풍경 하나 하나를 기억의 창고에 담는다.
따뜻한 남미 사람들
우유니(Uyuni)는 포토시에서 220km, 버스로 네 시간 걸린다. 버스는 여러 회사에서 자주 운행한다. 버스 터미널 의자에 앉았다가 바지 엉덩이에 껌이 붙었다. 당황하는 내 모습을 본 청소원 할머니가 어디선가 알코올과 헝겊을 가져왔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고마워서 인사하려다 보니 영락없는 우리나라 할머니 얼굴이다. 이 선한 사람들이 너무도 좋다. 사람들이 따뜻한 남미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도 떠나려면 발걸음이 더뎌진다.
해가 질 무렵 출발한 버스는 완전히 어둠이 내린 험한 산길을 한없이 넘어간다. 꽤나 높은 해발고도를 달리는 듯 차내가 몹시 춥다. 난방 시설이 없는 버스에서 내가 입은 옷으로는 견딜 수가 없다. 이가 갈릴 정도의 고통과 오한은 그나마 가방에서 옷들을 모두 꺼내어 여러 겹 껴입은 후에야 겨우 진정되었다. 참으로 힘든 볼리비아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