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가 이달 초 전기차 콘셉트 i4와 함께 브랜드의 새 커뮤니케이션 로고를 공개한 지 20일 가량 지났다. BMW 본사 및 BMW 그룹 코리아를 비롯한 각국 BMW 법인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로고를 홈페이지와 SNS계정 프로필에 적용했다. 그런데 웹페이지마다 로고의 생김새와 적용 방식이 다르고, 밝은 색의 배경에서 로고의 시인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가 확인되기도 하여 아쉽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검은색이 사라졌다
BMW는 지난 3월 4일 디자인을 변경한 브랜드 로고를 공개했다.
BMW의 로고 디자인은 1917년부터 겨우 다섯 번밖에 바뀌지 않았고, 몇 가지 디자인적 요소를 변함없이 유지해 왔다. ▲두 개의 동심원 ▲흰색+파란색의 4분할 무늬로 된 작은 원 ▲검은 바탕에 BMW라는 레터링이 상단에 위치한 바깥 원 등이 그것이다.
1953년에 레터링과 각 원의 테두리가 황금색에서 흰색으로 변했고, 1963년엔 레터링이 장식적인 폰트에서 단순한 폰트로 바뀌었다. 그리고 1997년부터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 로고는 조명과 그림자 효과를 통해 3D(입체)로 보이게 한 것이 특징이다.
이번 로고는 BMW가 로고를 사용해 온 103년 역사에서 가장 큰 폭으로 변화한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먼저 조명, 그림자 등의 3D 효과가 없어지고 평면으로 단순화되었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변화는 과거 모든 로고에서 언제나 바깥 원 영역을 채우고 있던 검은색을 없애고 투명한 빈 공간으로 만든 점이다. 이 부분은 새 로고가 적용되는 배경 색상에 따라 다르게 보여진다.
이 변화가 파격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단지 이 부분이 로고 전체 면적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BMW 로고는 언제나 흰색 + 파란색의 안쪽 원과 검은색 바깥 원으로 구성됐었는데, 이런 3색 구성의 원칙이 103년 만에 2색 구성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통해 새 로고 디자인은 미니멀리즘이라는 원칙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2단 동심원, 흰색 + 파란색의 4분할 원, BMW 레터링 등 기존 로고와의 공통된 기본요소 외에 어떠한 장식적인 디테일도 없이 단순하게 만든 것.
개방성 + 선명함 강조하며 ‘소통 확대’ 선언
BMW 측은 이러한 변화가 단지 로고 디자인의 변화뿐 아니라 ‘모빌리티의 미래’를 대변한다고 강조했다. 장 띠에메 BMW 고객 및 브랜드 담당 부사장은 “새로운 투명 로고는 더 많은 개방성과 선명함을 드러낼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며 더 많은 고객을 받아들이고,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는 브랜드로 다가가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 로고는 i4 콘셉트에 부착되어 공개됐지만, BMW는 이 로고가 차량에 부착되는 용도가 아니라 온, 오프라인에서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도 차량 내, 외부나 딜러사 간판 등에는 기존의 3D 효과 로고를 계속 사용하고, 새 로고는 BMW 각국 법인 홈페이지, SNS 계정, 인쇄 홍보물 등등 다양한 온, 오프라인 커뮤니케이션 포인트에 사용된다.
새 로고가 발표된 3주 가량 지난 25일(한국 시간) 기준, BMW 본사와 세계 주요 나라 BMW 법인의 홈페이지와 해당 법인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터 등 계정 프로필은 대부분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로고로 교체되었다. 특히 바뀐 홈페이지들의 경우 새로운 로고의 투명하고 미니멀한 콘셉트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이 적용되어 있다
예외적으로 아직도 기존의 ‘3D 효과’ 로고와 예전의 홈페이지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는 곳도 있었는데, 자동차 산업에서 유럽과 숙명의 라이벌로 첨예하게 맞서는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국가들이라는 점이 인상 깊다.
흰 바탕에서 안 보여 … ‘미니멀리즘’ 괜찮나?
바뀐 홈페이지에서는 화면 우측 상단에 새로운 BMW 로고가 위치한다. 메인 콘텐츠를 소개하는 이미지는 별도 프레임 없이 화면 전체를 꽉 채운 형태로 소개되는데, 이 콘텐츠 이미지 위에 얹혀 있는 새 로고는 중간이 투명하고, 작은 크기여서 이미지를 거의 가리지 않으면서도 잘 구별되어 보인다.
BMW의 유튜브 채널에 등록된 동영상에도 새 로고가 우측 하단에 워터마크처럼 적용됐다. 이 로고는 기존의 영상과 별도의 레이어로 적용되었기 때문에 로고가 발표되기 전에 게시됐던 기존의 모든 동영상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그런데 새 로고가 실제로 적용되는 방식들을 좀 더 살펴보니, 장점 못지않게 단점 및 한계도 뚜렷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단점 및 한계는 BMW가 처음 로고를 발표했을 때 일부 언론과 네티즌들이 비판하거나 우려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미국의 IT 전문 매체 ‘더버지’(The Verge)는 지난 4일(현지 시각) BMW 새 로고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며 비판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먼저 더버지는 BMW의 새 로고는 단순한 2차원 평면 형태로 변하면서 검은색 바깥 원이 투명해지고 흰 글씨와 흰 테두리가 남았는데, 이것이 흰 차체, 편지지를 비롯한 종이 문서, 고속도로 간판 등등 흰색 배경 위에서는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개방성과 선명함을 나타내기는커녕 디자인팀이 포토샵에서 실수로 배경을 누락시킨 상태로 발표한 것처럼 엉성해 보인다”라고 비꼬았다.
이 지적은 BMW의 유튜브 동영상에 이 로고를 활용한 ‘구독 버튼’에서 뚜렷한 단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로고 발표 이전에 제작된 영상에도 해당 ‘구독 버튼’이 적용되고 있는데, 흰 차를 이용해 새로운 기능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에서 이 로고는 자주 배경과 겹쳐 보이지 않는 현상을 볼 수 있다.
홈페이지에 적용된 로고는 배경 콘텐츠 이미지가 흰색이거나, 밝을 때 그 부분의 밝기를 낮추는 그라데이션 효과를 적용해 로고와 배경 이미지를 분리하고 있다.
그런데 BMW 코리아 홈페이지를 비롯해 영국, 중국, 일본 등 새로운 디자인이 적용된 홈페이지에서는 스크롤을 할 경우, 상단 메뉴 영역이 흰색 바탕의 프레임으로 변한다. 이때 흰 바탕과 로고가 겹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새 로고의 테두리와 레터링이 흰색이 아닌 회색으로 변한다. 즉, 원칙적으로 새 로고의 외부 테두리와 레터링은 반드시 흰색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새 홈페이지 디자인에서 굳이 상단 메뉴 영역을 비롯한 바탕을 흰색으로 정한 것은, 로고에 투영한 ‘미니멀리즘’ 콘셉트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존 브랜드 로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검은 바탕을 버리면서까지 ‘투명한 영역’과 흰색을 남긴 선택과 상충하여, 로고의 색을 바꾸는 모순된 결과를 낳았다.
SNS 계정마다 다른 듯 같아 보이는 로고
BMW는 새 로고의 ‘투명 영역’에 담긴 의미와 그 효과를 강조하는 홍보용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또,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협심을 호소하는 콘텐츠를 공개하면서 새 로고를 사용하는 등 ‘투명 영역’과 배경의 조화를 활용하며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SNS 계정 프로필에 사용된 로고를 보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BMW 각국 법인의 각종 SNS 계정 프로필을 보면, 새 로고의 ‘투명 영역’ 다른 배경 이미지가 함께 캡처된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계정마다 그 배경 이미지는 다르다. 하지만 각각이 해당 계정의 특징을 잘 드러내거나 하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배경은 아니다.
예컨대 BMW 영국 법인의 유튜브 계정 프로필 이미지와 BMW 일본 법인의 인스타그램 계정 프로필 이미지에는 딱히 영국과 일본을 나타내는 요소가 없어서, 서로 바꿔 사용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 정도로 차별점이 없다.
BMW에 따르면 새 로고의 투명한 특징은 어디에나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개방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다수 BMW 관련 SNS 계정의 프로필 이미지 대부분은, 단지 흰색이 대부분인 새 로고가 가능하면 잘 보일 수 있도록, 어둡고 짙은 배경만을 랜덤하게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그래서 이들 계정 프로필을 작은 크기로 보면 얼핏 다 똑같아 보인다. ▲흰색 + 파란색 사분할 무늬가 있는 안쪽 원과 ▲검은색(짙은 색) 바깥쪽 원, 그리고 ▲BMW라는 흰색 레터링으로 구성된 것처럼 보이는 것. 파격적인 디자인 변화를 적용한 새 로고를 모두가 사용했음에도, 그것들이 전부 바뀌기 전의 기존 로고처럼 보이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BMW 정체성 드러내는지 의문
스마트폰 등 다양한 디지털 소통 채널에서 젊은 고객층과의 소통을 확대하기 위해 ‘파격’을 택한 BMW의 새 로고는, 정작 젊은 고객층과 만날 디지털 소통 채널에서 이처럼 본래 의도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로고의 이러한 ‘오작동’은 앞서 더버지의 기사를 비롯한 여러 비판을 통해 예견된 것이어서 가벼운 문제로 보이지만은 않는다.
더버지는 폭스바겐, BMW 등 전통 있는 다수의 기업들을 언급하며, 이들이 최근 미래에 대비한다며 로고 디자인을 바꾸면서 “‘인스타그램 스타트업 감성의 미학’에 매몰돼 기존의 익히 알려진 이미지를 내버리는 경향을 보인다”고 비판한 바 있다.
한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도 새 로고에 대해 “왜 미래 지향적이라고 하면 반드시 디지털과 젊은 감성에 호소하려는지 모르겠다”며 “BMW가 한 세기 동안 쌓아온 신뢰가 쉽게 사라지진 않겠지만, ‘젊음’의 이미지에 치중하느라 ‘뿌리 깊은 전통’이라는 강점을 놓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기업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는 대개 호불호가 고른 비중으로 나오는 것과 달리, BMW의 이번 로고는 발표 직후 “가벼워 보인다”, “담당자를 해고해라”는 등 혹평이 유독 많이 쏟아졌다.
BMW 미국 법인 마케팅 지부장이 2주가 지나서 한 매체를 통해 로고 디자인에 대해 추가로 언급했을 정도다. 그는 “스마트폰을 통해 소통하는 비중이 커진 요즘의 소비자,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너무 복잡하거나 뭐가 많은’ 로고는 필요가 없다”고 로고가 심플해진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비판적인 의견 중 상당수가 디자인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 “굳이 왜 새로 만드는가”라는 의문을 품고 있었던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이러한 의견은 대체로 자동차 산업의 전반적인 침체에도 불구하고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벤틀리, 페라리 등 고성능, 럭셔리, 프리미엄 자동차 분야에서 BMW와 경쟁하는 브랜드 다수가 로고를 바꾸지 않으면서 각자 고유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반론으로 제시했다.
BMW 오너들 “난 반대”
특히 BMW의 ‘충성 고객’들 사이에서 이러한 비판이 집중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Reddit)에 마련된 BMW 새 로고 관련 스레드(글타래)에서 한 BMW 오너는 “BMW는 경제성, 전기차(친환경) 등 다른 것들보다도 ‘운전자 중심의 럭셔리한 고성능 자동차’를 대표하는 브랜드 아니던가? 오늘날의 BMW는 대체 뭐지?”라며 BMW의 새 로고를 비롯한 최근의 행보에 대해 “방향성이 결여되어 있고, 브랜드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또, BMW 오너이자 데이터 관리 분야 권위자인 필립 러섬 박사는 트위터를 통해 “세밀한 묘사가 복잡하고 많았던 예전의 로고가 더 우아한 것 같다. 반면에 새로운 로고는 지나치게 심플해서 영혼이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고 비판했다.
국내 BMW 오너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새 로고에 대한 반응은 부정적인 쪽이 더 많은 편이다. “시기적절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허전해서 신생 벤처기업같다”, “깔끔하지만 고급스러움은 떨어지는 느낌”이라는 의견들이 많았다.
수입차 업계에 10년 이상 몸담아 왔다는 한 관계자는 “독일차 3사 고객들은 특히 자기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도가 남다른 경향이 있다”라며 “BMW 고객들은 너무 많이 달라진 새 로고를 내놓은 것이 브랜드의 전통과 정체성을 벤츠, 아우디보다 먼저 포기한 것으로 여겨져 자존심이 상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BMW가 시대 변화에 맞춰 간다는 의도는 존중하지만, 브랜드 애착이 강한 고객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