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1호 안용호⁄ 2023.07.10 16:46:44
최근 말레이시아를 다녀왔습니다. 동남아 여행을 하면 늘 공항에서 숙소까지 교통편이 걱정이죠. 우연히 관련 검색을 해보니 우리나라 카카오택시와 유사한 앱이 있습니다. 그랩(Grab)은 싱가포르에 기반한 차량 공유 및 배송, 전자상거래, 전자결제 서비스를 하는데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8개국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그랩을 이용해 호텔까지 택시를 호출했습니다. 바로 택시가 배정됐고 2~3분 만에 택시가 도착했습니다. 빠를 뿐만 아니라 미리 요금도 알려줘 바가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디지털 경제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이 발표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디지털 경제: 현황과 전망’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의 디지털 경제 규모는 2020년 114억 달러, 전년 대비 6% 성장하였고 2025년에는 300억 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2020년 3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한 이동금지명령으로 인해 이커머스와 장보기, 음식 배달, 온라인 콘텐츠, 디지털 결제 등 다양한 분야의 매출과 이용 빈도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동남아 최대 인구수와 경제 규모를 갖고 있으며 디지털 경제 규모 역시 가장 큰 인도네시아는 국내 소비가 전체 경제성장의 55%를 책임지고 있는데 이 소비행위가 온라인·디지털 기반으로 급속히 이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도네시아 디지털 경제는 핀테크 분야의 압도적 성장이 특징이면서, 앞으로도 대출과 보험 등 디지털 금융에서 성장 기회가 많다고 합니다. 특히 밀레니얼과 Z세대가 디지털 경제 서비스 주요 이용자로 소비를 주도하고 있고, 그 영향력이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호 문화경제는 최근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활약상을 특집기사로 다룹니다. 롯데웰푸드는 빼빼로와 캔햄으로 필리핀과 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베트남인들의 제사상에도 올라갈 만큼 인기입니다. 우리나라 치킨 브랜드 bhc는 말레이시아, 홍콩, 싱가포르 등에 진출했습니다. K-푸드 열풍과 함께 동남아시아를 휩쓰는 K-과일소주의 인기도 대단합니다. 한류 열풍을 타고 K푸드가 훨훨 날고 있는데 여기에는 우수한 품질과 현지화도 한몫했습니다.
최근 포스트 차이나로 떠오른 베트남에는 신한은행, 우리은행, DB손해보험 등 우리 금융기업들이 활발히 진출 중입니다. 신한베트남은행은 기업 RM 센터를 운영하며 기업금융 중심의 영업을 강화했습니다. 우리은행은 베트남에서 비대면 디지털 서비스를 강화하며 젊은 고객층을 주거래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한 DB손해보험은 성장하고 있는 베트남 손해보험 시장에 진출해 사업 기반을 확고히 해 나가고 있습니다.
인구 약 2억 7천만 명의 아시아에서 의약품 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로 손꼽히는 인도네시아는 우리 제약사들이 노리는 블루오션입니다. 2012년 현지 제약사인 인피온과 합작법인 대웅인피온을 설립한 대웅제약은 인도네시아 최초로 바이오 의약품 공장을 구축했습니다. 종근당은 인도네시아에 항암제 공장을 준공했습니다. 또한 일동제약은 인도네시아 시장 개척을 위해 할랄 인증을 획득했고, GC녹십자는 혈액제제 플랜트 건설 및 기술이전 사업권을 승인받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업종의 기업들이 동남아 시장을 중국을 대체할 시장으로 여기고 투자와 마케팅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시장은 우리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앞서 소개한 바처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디지털화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발전 중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우리에게는 큰 사업 기회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앞서 인용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디지털 경제: 현황과 전망’은 이런 기회 앞에 선 우리에게 동남아 전체 지역이 균일한 성격을 갖는 시장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동남아 1등 이커머스 쇼피(shopee)가 국가마다 다른 앱을 출시한 이유는 나라마다 소비자 성격과 시장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Glocalization이란 세계화(globalization)와 현지화(localization)란 이중의 뜻을 지닌 합성어로 전 세계적으로 개발 및 배포되지만, 현지 시장에서 사용자 또는 소비자를 수용하도록 조정된 제품 또는 서비스를 지칭합니다. 그런데 디지털 경제에서는 Hyper-Glocalization이라 하여 더 빠른 트렌드의 변화가 글로벌로 확산하며, 현지화 속도나 범위도 더 신속하고 넓게 진행된다고 합니다.
식음료·금융·제약·주류 등 다양한 기업들이 이미 동남아 시장에 성공적으로 상륙했듯 디지털 경제 영역에서도 우리 기업의 진출이 멀지 않았습니다. 특히 우리 스타트업의 활발한 진출을 정부가 도왔으면 좋겠습니다. 동남아 시장에서 제2의 그랩, 제2의 쇼피 같은 플랫폼을 우리 기업의 손으로 성공시킬 날을 기다려 봅니다.